결별을 통해 형성되는 자아
현대 치료요법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의 개인을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건강하지 않다고 본다는 사실이다.- P160
과거란 여러 가지 경험의 총체지만, 이러한 서사 형식에서 과거란 대개 가족 속에서의 경험과 동일시된다.- P161
애착과 사랑받고 자란 사람에 대한 청년문화의 집착은 이 가설이 가진 대중적 힘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한 일간지 기사는 말한다. "애착 손상 못 알아채면 ‘정서적 흙수저‘ 된다".⁶⁴- P161
64 최화진, "애착손상 못 알아채면 ‘정서적 흙수저‘ 된다", <한겨레>, 2017. 12. 4,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22019.html.- P365
그렇다면 심리적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열쇠가 과거, 특히 유년기에 있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 P162
사실 양육 가설은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게 꾸준히 비판받아 왔다.- P162
사실 사랑을 베푸는 것을 부모의 중요한 의무로 여기는 서구화된현대 사회에서 양육한 청년과 청소년이 특별히 정서적으로도 더 안정되고 균형 잡힌 관계를 맺는 성인으로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현실은 그 반대에 가까워 보일 때도 많다).- P162
‘양육 가설‘이라는 용어를 처음 제안해 이러한 믿음이 문화적 신화라는 사실을 지적한 심리학자이자 《양육 가설 The Nurture Assumption》이라는 동명의 책의 저자이기도 한 주디스 리치 해리스가 세심한 논증을 통해 보여주듯이, 부모의 양육이 성인이 되었을 때 개인의성격이나 적응 상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는 빈약하다.- P162
사회학자 라스 덴시크가 지적하듯이 유년기의 사건들, 특히 부모의 행동이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진실이라기보다는 서구화된 사회에서 통용되는 역사가 짧은 문화적 믿음에 불과하다.⁶⁷- P163
67Lars Dencik, "Growing Up in the Post-Modern Age: On the Child‘s Situation in theModern Family, and on the Position of the Family in the Modern Welfare State", ActaSociologica, 32(2), 1989, pp. 155-180.- P366
근본적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이른바 심리적 건강이 개인의 속성이라는 가설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P164
자존감이나 애착 등의 심리적 특징들이 자기 계발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것이려면 이러한 특징들이 한 개인이 소유하는 안정적인 심리적 속성, 속된 말로는 ‘정신력‘의 일종이어야 할 것이다. - P164
개인은 서로 다른 사람과 서로다른 형태의 애착을 형성할 수도 있으며, 애착의 형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그렇기에 동일한 사람일지라도 시간이나 상황, 접하는 사람별로 서로 다른 애착 유형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⁷¹- P165
71 Jennifer G. La Guardia, Richard M. Ryan, Charles E. Couchman and Edward L.Deci, "Within Person Variation in Security of Attachment: A Self-Determination Theory Perspective on Attachment, Need Fulfillment, and Well-Be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9(3), 2000, pp. 367-384.- P366
리어리와 함께 자존감을 연구해 온 심리학자인 로이 바우마이스터의 연구는 자존감을 인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개인에게 유익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⁷⁴- P166
74 Roy F. Baumeister, Jennifer D. Campbell, Joachim I. Krueger and Kathleen D.
Vohs, "Does High Self-Esteem Cause Better Performance, Interpersonal Success, Happiness, or Healthier Lifestyles?", Psychological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 4(1),
2003, pp. 1-44.- P366
(전략).
그럼에도 과거 돌아보기로 자신을 치유한다는 이 서사 형식이 특히 청년층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틀이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일종의 대안적 성장 서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 P166
사회학자 제니퍼 M. 실바는 오늘날의 노동계급 청년들이 무드 경제에서 산다고 주장한다. - P167
이미 보았듯이 부모와의 경험이라는 협소한 의미로 정의된 과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는 내가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된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어떤 이상적 모습으로 나를 빚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P167
그러나 문제는 대안적 서사가 없는 상황에서, 특히 치유문화에 익숙한 청년층이 이 서사를 자아와 정체성을 이해하는 주된 서사로 여기기도 한다는 데 있다.- P168
그 단절은 유해한 가족을 손절하는 실제적 단절일 수도 있고, 과거와 결별하는 상징적 단절일수도 있다.- P169
결국 치유문화의 대안적 성장 서사는 변화란 불가능하며 잘살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잘사는 부모 밑에 태어나는 것밖에 답이 없다는 봉건적 자본주의 시대의 운명론과 놀라울 만큼 유사한 형태의 상처를 생산해 내기도 한다. - P169
가령 우울증과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분투하는 개인의 이야기는 가학적일 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이 사회에서 분투하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와 연결되지 못한 채 너무 지나치게 통제적이고 성과 지향적인 부모, 반대로 성공을 위한 자원을거의 물려주지 않는 무관심한 부모의 이야기로 환원되기 쉽다.- P170
치료요법 문화의 성장 서사에는 최근 청년층에게 유행하는 ‘회귀물‘의 서사 형식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P170
무드 경제는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절망과 노력하면 나아진다는 잔인한 희망가운데에서 고통받는 우리의 상처를 위무하겠다고 약속하며 우리곁에 다가온다. 그리고 그렇게 상품은 인간적 유대와 연대를 대신해 우리의 자아와 정체성을 새로 쓴다.- 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