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은 그야말로 ‘세포들의 공화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말을 이런저런 형태로 접해 보았으리라. 이내 죽음 이야기도 틀림없이 듣게 된다. 어려서 듣는 죽음 이야기는 이런 식이다.- P84
그렇지만 하늘나라로 주님을 찾아간 할머니는 뭔가 이상하기만 하다. (중략). 그러니까 어제는 분명히 옆에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와 할머니의 시신을 수습하고, 목사는 하느님께 그녀의 영혼을 거두어 달라며 기도를 올린다. - P85
현실은 죽음의 자연성을 두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강요한다. 일단, 학교에서 주섬주섬 챙겨 들은 지식들로 죽음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다른 한편, 눈물 몇 방울 흘리고 나서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며, 떠나간 망자를 추억하기보다 유산이야기에 더 열을 올리는 사람들 탓에 죽음은 더없이 자연적인 것으로 포장된다. - P86
이른바 자연법칙이라는 것은 귀납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거야. 여보게들, 그러니까 자연법칙이라는것을 믿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지금까지 늘 해가 동쪽에서 떴다고 해서, 내일도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는 거니까.- P87
자유죽음을 알게 됨과 동시에 우리는 ‘에셰크(échec)‘¹¹라는 것을 경험한다(이런 앎을 두고 깨달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죽음이 무엇인지 하는 깨달음을 우리는 결코 얻을 수 없다. 혹 근접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것은 느지막한 말년에나 가능한 일이다). 왜 독일어텍스트에서 프랑스어 단어를 써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이 말은 실패한다. 좌절한다는 뜻을 가진다.
11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이 말은 체스를 둘 때 외통수에 걸린 것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한다. 돌이킬 수 없이 실패하고 만 것을 적시하는 단어다.- P89
원칙적으로 따지고 든다면 사람은 ‘에크‘ 속에서도 살 수있다. 물론 아주 치욕적인 말하자면 ‘비자연적‘인 꼴을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 - P90
. 사람들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마치 무슨 수치스러운 짓을 입에 올리기라도 하듯 자살이라고 부르는 자유죽음을 그는 감행했다. 그래도 ‘에셰크‘를 끌어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이제 ‘에셰크‘는 당사자의 등 뒤에서 상존하는 위협이다.- P90
이런 자연성은 할머니의 죽음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것이다. 끊임없이 ‘에크‘의 위협을 받으며 사는 사람은 많기만 하다. 수험생, 파산자, 평론가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긴 작가, 창작력의고갈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화가, 병자, 눈물로 아무리 호소해도 대답이 없는 사랑, 돌격 명령을 앞두고 덜덜 떨고 있는데 장교에게서 질책을 받는 군인 등등. 이들에게 자유죽음은 구원의 약속이 된다.- P92
인간성과 존엄성, 이게 바로 그 두 개념이다. 자유죽음은 인간의 특권이다.- P93
자유죽음을 구하는 사람은 상대가 신뢰를 가지고 접근할때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숨김없이 드러낸다는 사실을 아는가!- P93
‘자살의 철학‘이라는 제목의 두쪽(책의 전체 분량은 650쪽이다)에 걸친 짤막한 글에서 배슐러는 자유죽음이야말로 인간의 조건이 갖는 본질적인 측면이라고 강조한다.- P94
그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자살은 자유와 존엄성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행위라는 점을 나는 사실을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인간은 바로 인간성과 존엄성을 방패 삼아 ‘에크‘에 맞선다(여기서 아직 자유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물론 자유도 앞으로 다루겠다).- P95
주관은 ‘에셰크‘를 당했음에도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품처럼 때만 되면 먹고 싸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거부한다.- P96
자살을 감행하는 사람에게 있어 자유죽음이란 모든 죽음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것이지만, 자유죽음은 지극히 자연적이다. 그것도 드높은, 유일하게 우리 손으로 설정한 기준, 즉 존엄성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죽음이다.- P97
. 별로 원하지 않는것, 거리, 얼굴들, 풍경 등 정말 볼썽사나운 것들을 보고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에 치를 떠는 인간에게 제발 사교성 좀 가지라고 준엄하게 타이를지도 모른다.- P98
먹고 싸고, 죽이고, 쾌락에 몸을 떨며, 죽임을 당하는 존재. 그저 무서움에 부들부들 떨 뿐이다. 도대체 왜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그저 아무것도 아닌 없음으로 돌아가면 왜 안 되는 것인가? - P98
. 에로스는 살아 있는 자들의 논리, 즉 종족 보존이라는 논리와 맞아떨어지지만, ‘구토는 종족 보존 본능에 충실한문명 패거리가 아우성을 치며 부정하는 것이다.- P99
내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지금 내가 확인하고자 하는 점은 다만 다음과 같은 것일 따름이다.- P99
자살을 이미 감행했거나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 자유죽음이란 언제나 지극히 자연적이다. 그들이 느끼는 치욕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P100
자살자는 완벽한 없음 앞에서 부들부들 떤다.- P100
자신의 존엄성으로 모순을 품어 안았으면 그만 아닌가?- P101
‘자살학‘의 최신 연구 성과들이 신빙성을 갖는다면(여기서나는 수없이 쏟아져 나온 자살 연구들의 극히 일부밖에 모르기 때문에 정말 믿어도 좋은지 판단을 유보하겠다), 자유죽음은 우리에게 알려진 거의 모든 형태의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P103
인생 논리는 본능일 뿐 아니라, 내가 앞장에서 보여줬듯, 논리라는 원칙에 들어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 곧 존재와 인생의 이성은 도무지 없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P104
A=A라는 동일률은 있음의 근본 경험을 담아낸 논리다.²⁰
20 형식 논리의 최고 원칙. 같음과 다름을 구분하는 게 앎의 출발점이라는 플라톤의 근본사상에서부터 출발한 원칙이다. A는 A인 동시에 B일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확장 해석으로 동일률은 논리학의 기둥이 되었다. A는 B가아니라 A라는 점에서 동일률은 인식론의 근본 원리기도 하다. 이로부터 유추해 ‘있음‘은 ‘있음‘으로만 생각할 수 있을 뿐, ‘없음‘과 동격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존재론의 근간이기도 하다. 여기서 아메리는 죽음을 ‘없어짐‘으로 놓고 논의를 풀어가려고 시도한다.- P104
결국 자유죽음이란자기 부정으로 존재한다. 자유죽음은 긍정인 동시에 부정이다. 바로 그래서 어처구니없는 모순이다. 자유죽음은 이 모순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이중의 모순‘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P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