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딴 곳에 살 집을 찾아보라고 말하지 그러세요"
"내가 말하자 어머니는 큰 소리로 웃으셨다.
"절대 안 나갈걸. 되레 우리를 강제로 쫓아내려고 할 거다. 잠자는 개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걸 배운지 오래다."
‘크리스토핀도 가라고 하면 갈까? 나는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말을 하기가 무서웠다.- P34
나는 낯선 흑인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미워했고 흰 바퀴벌레라고 불렀다.- P35
크리스토핀이 내게 반짝이는 새 동전을 몇 개 준 적이 있었다. 그것을 나는 호주머니에 간직했다. 어느 날 아침 동전이 주머니에서 떨어져 나오자 나는 그것들을 돌 위에다 올려놓았다.- P36
나는 찢어진 타월로 몸을 감싸고 티아에게 등을 돌린 채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추웠다. 햇볕도 나를 녹여주지는 못했다. 나는 집에 가고 싶었다.- P37
손님들은 아주 세련돼 보였고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P37
"그런데 네가 왜 티아의 옷을 입고 있니? 티아가 누구지?"
부엌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크리스토핀이 냉큼 나오자 어머니는 깨끗한 옷을 찾아다 입히라고 말씀하셨다.
(중략).
"애가 제멋대로 야생마처럼 돌아다니고 쓸모없는 애로 자라고 있으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야. 원, 애한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P38
"저희들 말로는 러트렐 가의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영국 사람이건 아니건 우리가 알던 러트렐 씨 같지는 않더구먼. 그 사람들이네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모습을 러트렐 씨가 보았더라면 그것들 얼굴에 침을 뱉었을 거다. 문젯거리가 오늘 그 집으로 걸어들어온 게야. 골칫거리가 걸어 들어왔어."
크리스토핀이 내가 전에 입던 모슬린 옷을 드디어 찾아내 내게 입히려 하자 옷은 그만 찢어졌다.- P39
"노예제도가 사라졌다고? 웃기지 말라고 그래! 새로 온 사람들이 가져온 법조문을 보라지. 아주 똑같아. 집정관이 생겼고, 벌금제도라는 걸 만들었다구. 이젠 유치장도 세우고, 쇠사슬에 묶인죄수도 생겼지. 발로 밟아 돌리는 죄수용 바퀴도 가져왔다니까. 새로 온 백인들은 전에 있던 백인들보다 더 나쁘고 더 간교해."
크리스토핀이 말했다.- P39
어머니가 스패니시타운에서 메이슨 씨와 결혼식을 올릴 때 내가 들러리를 섰다. 크리스토핀은 내 머리를 곱슬거리게 해주었다. 나는 손에 부케를 들었고, 몸에 걸친 모든 것은 빠짐없이 새것이었다.- P41
"정말 환상적인 결혼식이지요? 그러나 메이슨 씨는 후회하게 될 거예요. 왜 저렇게 돈 많은 남자가, 아마도 그 정도 재력이면 영국 여자나 서인도제도의 어떤 여자도 자기 맘대로 골라잡을 수 있었을 텐데."
"‘아마도‘ 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어느 여자건 골라잡을 수 있지요."- P42
그랬다. 어머니는 정말 기가 막히게 춤을 잘 추셨다. 트리니다드로 신혼여행을 갔다 돌아온 날 어머니와 메이슨 씨는 테라스에서 음악도 없이 춤을 추었다. 어머니가 춤을 출 때는 음악도 필요없었다.- P43
‘영국 사람들 중 어느 누가 우리 문제를 이해하겠어.‘ 나는 생각했다.- P44
내가 돌아왔을 때 쿨리브리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단지, 아주 깨끗해지고 정돈되었으며 길에 깐 판석 사이로 비집고 나왔던 풀들도 다 정리되어 있었다.- P44
어느 날 어머니는 단도직입적으로 털어놓았다. 그때 메이슨 씨는 못 참겠다는 듯이 껄껄대며 웃었다.
"아네트, 좀 이치에 맞는 말을 해요. 당신은 노예주의 딸이요, 노예주의 아내인데 나를 만날 때까지 혼자서 애들을 데리고 오 년 간이나 무사히 살았지 않소. 그때가 최악의 시기였을 텐데. 그때 이곳 사람들이 당신과 애들에게 해꼬지를 하고 괴롭힙니까?"- P46
"당신은 이 사람들에게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고, 게다가 그와 정반대의 기질 또한 있다는 것도 믿지 않는군요."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하도 게을러서 위험한 인간이 되기는 틀렸다는 건 내가 알지."
메이슨 씨가 받았다.
"게으르건 아니건, 당신보다 훨씬 원기왕성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 때문에 위험하고 잔인할수 있는 인간들이고요."- P47
시간이 꽤 늦었기 때문에 나는 늘 혼자서 저녁을 먹던 버릇 대신 어른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새로 들어온 하인 중 하나인 마이라가 식탁 옆에 서서 접시들을 새로 바꾸어주었다. 우리는 이제 영국 음식을 먹었다.- P50
우리 집은 여러 층으로 되어 있었다.- P53
내가 응접실로 들어가자 "놀라지 마라." 하고 메이슨 씨가 말씀하셨다. "한 떼의 술 취한 검둥이들이야." 메이슨 씨는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서는 "왜들 그러는 거야?" 하고 소리치셨다. "너희들이 원하는 게 뭐야?" 무시무시한 아우성이 들렸다.- P54
고개를 든 매니가 소리쳤다.
"하느님 맙소사, 저놈들이 집 뒤편을 공격하네요. 뒤쪽에다 불을 질렀어요."
매니가 내 방을 가리켰다. 내가 나오면서 문을 닫았는데도, 연기가 문 아래 틈새로 뭉게뭉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P55
"피에르의 침대가 불타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이모에게 말했다.
"그 방에 불이 났다니까요. 그리고 마이라는 없었어요. 가버린거예요."
"그랬을 거다. 놀랄 일도 아니구나."
이모가 말했다. - P55
목소리가 끊어지고 갈라졌지만 어머니는 쉬지 않고 소리쳤다.
"내 말은 전혀 듣지 않으려고 했지. 당신은 나를 비웃었어, 이 위선자야. 만일 피에르가 죽는다면 당신도 살아 있어서는 안 돼. 이곳 사람들에 대해 그리도 잘 아는 체하더니, 왜, 밖에 나가서 당신은 아무 죄도 없으니 당신 하나만은 좀 보내달라고 그러지 그래. 당신은 항상 저놈들을 믿어왔다고 말해 보시지."- P56
우리 집 초록 앵무새의 이름은 코코였다. 코코는 말을 잘 못했다. 앵무새는 "거기 누구예요? 거기 누구 있어요?"라고 말하고는 제가 제 물음에 대답했다. "사랑하는 코코예요. 사랑하는 코코."- P58
누군가가 소리쳤다.
"영국인들에게 빌붙어 아부하는 영국 검둥이 놈들아!"
"저 백인 검둥이들을 봐라!"
그러자 폭도들이 함께 소리쳤다.- P58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저희들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기도가 끝났다. 하느님께서는 정말 신비로운 분이시다. 자고 있는 피에르를 저들이 불태우려고 할 때는 전혀 아는 체도, 작은 천둥 소리 한마디도, 희미한 번갯불 한 번도 번쩍 하지 않으신 분께서 메이슨 씨의 기도는 즉각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다니. 폭도들의 아우성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다.- P59
"어린애가 많이 다쳤어요. 의사의 도움을 못 받으면 이 애는 죽을 겁니다."
"검둥이나 흰둥이나 결국은 지옥 불에서 타게 되는군."
사나이가 말했다.
"그리 되겠지. 여기서 불타건 죽어서 지옥에서 불에 타건, 금방 알게 될 걸세."
이모가 말했다.- P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