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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을 정도로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수학자들도 4차원 이상의 공간을 제대로 머릿속에 그려내지 못한다. 조각가와 마찬가지로 수학자도 3차원은 잘 다루지만 4차원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P86
4차원을 비롯한 고차원 기하학이 실제 세계와 관계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기에 앞서서 2차원 혹은 3차원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해 유사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P87
(전략). 하지만 유클리드 기하학은 매우 유용하며, 실제 세계를 기술하는 물리학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을 폐기하지는 않는다.- P87
수학을 실용적으로 응용할 때 고차원 기하학은 매우 유용한데 그것은 해결하려는 문제에서 각 변량은 특정한 자유도를 지니고 있고 그 자유도는 차원의 크기를 늘리기 때문이다.- P87
대학에 자리를 잡고 난 뒤에 리는 연구에 몰두했다. (중략). 그의 연구는 순조로이 진행되었고 곧 ‘유한 연속군‘ 이라는 개념을 얻게 되었다. 연속이라는 말은 군 안에 있는 변환이 연속적으로 바뀌어나갈 수있다는 의미였고, 유한이라는 말은 자유도가 유한하다는 뜻이었다.- P88
리와 클라인이 기하학을 사용했지만 그들이 기하학을 시발점으로삼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 클라인은 어느 수학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기하학적 배치를 염두에 두고 나서 변환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먼저 변환 계를 생각하고 그다음으로 기하학적 배치에 대해 묻습니다."²¹- P89
21 이 장에서 인용된 서신문은 T, Hawkins, Emergence of the Theory of Lie21) 01  918Groups Springer, 2000  1+2+- P307
한편 노르웨이에 있던 리는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을 떨치지못했다. 1884년 9월에 클라인은 어느 젊은 독일 수학자를 노르웨이로 보내 리를 돕도록 했다. 라이프치히에서 온 젊은 독일인의 이름은 프리드리히 엥겔(Friedrich Engel, 1861~1941)이었다(칼 마르크스의 동료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혼동하지 말 것). (중략). 그 다음 해인 1886년에 클라인은 라이프치히에서 괴팅겐 대학 수학과 학과장으로 옮겨갔고 (클라인은 괴팅겐 대학 수학과를 세계 최고로 키웠다) 리는 노르웨이를 떠나 클라인의 후임으로 라이프치히 대학 수학과 학과장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P90
킬링은 독일 북서부(뮌스터)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중략). 킬링은 뮌스터 시절을회상하며 당시 동료 학생들을 이렇게 평했다. "그들은 과학 자체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극소수를 제외하면 나머지 대부분은 단지 시험만을 위해 공부할 뿐이었다."- P92
컬링은 리 군의 ‘주기율표‘를 발견했다. 킬링은 리 군을 A에서 G까지 일곱 가지 집합으로 나누었다.*


* C1. D1, 02, D3를 적어 넣지 않은 이유는 단순군이거나 혹은 이미 표에 등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D3는 A3와 동일하다.- P93
 A집합이 가장 단순하고 B, C, D는 좀 더 복잡하지만이들 네 개의 집합족은 비교적 서로 유사하다. A. B. C. D 네 집합족을 고전적(classical) 집합이라고 한다.- P93
킬링은 매우 빠르게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해석학적 이론이 일부 불충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P94
킬링의 연구 결과가 지니는 중요성을 리는 곧 간파했다. 리는 "모든것이 올바르다면 획기적인 결과임에 틀림없다."라고 썼다. (중략).
불행하게도 킬링은 사제를 양성하는 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연구진행을 보조해줄 학생이 없었다.- P94
한편 자신의 증명에 확신을 갖지 못했던 킬링의 우려는 공연한 것이 아니었다. 결과는 옳았지만 첫 번째 논문에 오류가 있었고 이 때문에 나머지 두 논문도 타격을 받았다.- P95
킬링은 무대에서 퇴장하면서 두 가지 문제를 남기고 갔다. 킬링의연구 결과는 옳았지만 확실한 증명이 되려면 이론 전개에 사용된 해석학을 제대로 손질할 필요가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킬링이 분류한 집합족 안의 모든 군들을 구성해내고 또 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점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이 과제는 파리에 있던 젊은 대학원생인 엘리 카르탕(Élie Cartan, 1869~1951)의 몫으로 남겨졌다. - P96
카르탕은 타고난 수학자였다. 그는 구조를 파악하는 뛰어난 추상적추론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이런 능력 덕분에 킬링의 아이디어를 명료화하고 또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기술적인 세부 사항 가운데일부를 다시 손질했으며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를 현재는 킬링-카르탕 분류 이론이라고 부른다.-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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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군과 물리학


수학은 경험과는 무관한 인간 사고의 산물인데 물리적 현실속의 대상물들과 완벽하게 합치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리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에 고전물리학은 여전히 건재해보였다. 하지만 그 건재함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리가 사망할 무렵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고전물리학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P100
리 이론의 독창성 덕분에 수학에도 새로운 분야가 생겨났다.- P100
리 이론이란 리 군뿐만 아니라 리 대수(Lie algebra), 그리고 킬링-카르탕 분류 이론과 관련된 여러 연구 성과를 포괄하는 이론이다. 20세기가 지나면서리 이론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 P101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상대성 이론은 19세기 말에 전기와 전자의 연구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상대성 이론은 전자기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전자기는 파동으로 퍼져나가는데 전파, X선, 빛 등이 그 예이다.- P102
특수상대성 이론에 거대 천체의 중력 효과를 가하여 세운 이론이일반상대성 이론이었다. 일반상대성 이론은 수성의 공전 궤도에서 나타나는 이례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 P103
전자는 다른 소립자와 마찬가지로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인 성질을 갖고 있다. (중략).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는 실험적 증거에 부합되도록 이러한 원자 모델을 고안해냈다. 이 모델은 매우 훌륭했지만 한 가지 결함이 있었다.- P104
즉, 점진적으로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적은 덩어리로 된 특정 양의 정수 배만큼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가정이었다. 전자의 에너지나 궤도가 연속적으로 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항상 양자 뜀 (quantum jump)이 일어나게 된다.- P104
양자 뜀을 도입하면 연속성이라는 개념을 파기해야 한다. 따라서 양자 이론에서 리 군은 쓸모가 없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입자는파동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에 리 군은 양자 이론에서 매우 유용하다.- P104
위에서 리 군의 응용을 한 가지 언급했지만 양자 현상에 관여하는또 다른 리 군이 있다. 물리학자들은 이 세상에는 네 가지 기본 힘이‘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즉, 중력, 전자기력, 약핵력, 강핵력이다.- P106
1925년 양자 이론이 처음으로 학술지에 등장했을 때 이 새로운이론의 발전은 주로 독일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에 독일은 수학과 물리학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런 위상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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