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편 권태와 인간의 본질적 특성
157-(152) 자존심. 호기심은 허영일 뿐이다. 대개의 경우알려고 하는 것은 단지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다를 건너 여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여행에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이야기를 나눌 희망도 없이 단지 보는 즐거움만을 위해서라면,- P92
160-(131) 권태. 열정도 할 일도, 오락도, 집착하는 일도없이 전적인 휴식 상태에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 참기 어려운일은 없다. 이때 인간은 자신의 허무, 버림받음, 부족함, 예속, 무력, 공허를 느낀다. 이윽고 그의 마음 밑바닥에서 권태, 우울, 비애, 고뇌, 원망, 절망이 떠오른다.- P93
162-(94) 인간의 본성은 전적으로 자연이다. omne animal.¹
인간이 자연적인 것²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없애지 못하는 자연적인 것도 없다.
1) <모든 짐승들> 창세기 7: 14와 『구약 외전』. <벤시락의 지혜> 13:18을 참조
2) 여기서는 <천성적인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자연>도 인간을 비롯한모든 피조물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천성(적인 것)>이라는뜻으로 쓰인다.- P93
167-(323) 나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행인들을 보기 위해 창가에 서 있는데 내가그곳을 지나간다면 그는 나를 보기 위해 창가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는 유독 나만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그 사람의 미모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다. 만약 천연두가 그를 죽이지는 않고 그 사람의 아름다움만을 죽인다면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테니까.
만약 나의 판단력, 나의 기억력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나자신을 잃지 않고도 이 특성들은 잃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육체 안에도 정신 안에도 있지 않은 이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 특성들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므로 그것들이 나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특성들에 의하지 않고 어떻게 육체나 정신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한 인간의 영혼의 실체를 추상적으로, 그 안에 있는 특성과는 상관없이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있을 수도 없고 또 옳지도않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특성만을 사랑한다.
그렇다면 지위나 직책으로 인해 존경받는 사람들을 경멸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단지 빌려온 특성들로 인해 사랑하므로- P94
168-(118) 다른 모든 재능들을 규제하는 주된 재능.- P95
169-(147) 우리는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고유의 존재 안에 지니고 있는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관념속에서 하나의 상상적 삶을 살기를 바라고 이것을 위해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상상적 존재를 아름답게 꾸미고 보존하기에 힘쓰며 실제의 존재는 소홀히 하는 것이다. (후략).- P95
제5편 현상의 이유
171-(299) 보편적이고 유일한 규칙은 일반적인 일에 있어서는 한 나라의 법이고, 그 외의 일에 있어서는 다수이다.
이것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다수 안에 있는 힘으로부터이다.
그리고 다른 데서 힘을 얻는 왕들이 대신들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것은 여기서 비롯된다.
아마도 재산의 평등은 옳다. 그러나 정의에 복종하는 것을힘으로 강요할 수 없었으므로 힘에 복종하는 것을 정의로운것이 되게 하였다. 정의를 힘있는 것으로 만들 수 없었으므로힘을 정의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정의와 힘이 결합하여 평화를 이루게 하였다. 이 평화야말로 최고선이다.- P96
172-(271) 지혜는 우리를 어린이로 돌아가게 한다. Nisiefficiamini sicut parvuli.¹
1) <만일 너희가 마음을 돌이켜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 18:3).- P97
175-(878) Summum jus, summa injuria.²
다수(數)는 최선의 길이다. 다수는 명백하고 복종시킬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무지한 사람들의 의견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었다면 사람들은 힘을 정의의 손에 맡겼을 것이다. 그러나 힘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분명한 특성이기 때문에 마음먹은 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데 반해, 정의는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정신적 특성이므로 사람들은 정의를 힘의 수중에 넘겼다. 이렇듯 사람들은 따르지 않을 수없는 것을 정의라고 부른다.
(후략).
2) <극도의 권리는 극도의 불의(義)이다.) 샤롱이 테렌티우스, 자학하는 자, IV, 5에서 인용한 것을 재인용했다.- P98
176-(297) Veri juris³
우리는 이제 진정한 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그것이 있었다면 그 나라의 풍습을 따르는 것을 법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의를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힘을 발견하였다 등등.
3) <진정한 법>(키케로, 『의무론 De Officis』, III, 17). 몽테뉴, Ⅱ, 1에서 인용된 것이다.- P99
179-(315) 현상의 이유. 이것은 희한한 일이다. 비단옷을입고 일고 여덟 명의 하인을 거느린 사람을 내가 존경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내가 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면 그는 나를 매질할 것이다. 저 옷차림, 이것은힘이다. 훌륭한 장구를 걸친 말이 다른 말과 비교될 때와 마찬가지이다. 몽테뉴가 거기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보지 못한 것은, 그리고 사람들이 그 차이를 발견하는 것을 이상히여기고 그 이유를 알려고 한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는 말했다. <참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P100
181-(336) 현상의 이유. 배후의 숨은 생각을 가져야 하고, 설사 민중처럼 말은 하더라도 이 생각으로 만사를 판단해야 한다.- P100
182-(335) 현상의 이유.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환각 속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 민중의 의견은 그 자체가 건전하다 해도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리가 있지 않은 곳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리는정녕 그들의 의견 안에 있지, 그들이 생각하는 곳에 있지 않다. 귀족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출생이 실제적으로 우월하다는 등등의 이유에서가 아니다.- P101
186-(329) 현상의 이유. 인간의 결함은 사람들이 수많은미(美)를 만들어내는 원인이다. 가령, 비파를 잘 연주할 줄[모르는] 것은 단지 우리의 결함 때문에 불행이 된다.
187-(334) 현상의 이유. 정욕과 힘은 우리의 모든 행위의 원천이다. 정욕은 자발적인 행위를, 힘은 타의적인 행위를하게 한다.- P102
189-(536) 인간은 바보라는 말을 되풀이해서 들으면 그렇게 믿도록 되어 있다. 또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도 스스로 그렇다고 믿는다. 오직 인간만이 내적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화를 올바르게 규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Corrumpunt mores bonos colloquia prava."우리는 될 수 있는한 침묵해야 하고 또 우리가 진리 되심을 아는 신과 대화해야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를 스스로에게 확신시킨다.
5) <악한 교제는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고린도 전」, 15:33).- P103
193-(322) 귀족 신분은 큰 이득이다. 열여덟 살에 성공의길이 열리고 이름이 알려지고 존경받는다. 다른 사람 같으면쉰 살이 되어서나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수고없이 30년을 덕본다.- P105
197-(303) 세계를 지배하는 여왕은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힘이오 그러나 생각이 곧 힘을 사용하는 여왕이오 힘이야말로 생각을 만들어내오 우리의 견해로는 유연함은 좋은 것이오 왜냐고? 줄 위에서 춤을 추려는 사람은 혼자일테니까. 그런데 나는 이것을 좋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모아 더 강한 당파를 만들 것이오.- P107
200-(311) 사람들의 생각과 상상(想像) 위에 세워진 권력은 한동안 지배하며 또 이 권력은 온화하고 자발적이다. 힘으로 세워진 권력은 항상 지배한다. 이렇듯 사람들의 생각은 세계의 여왕과 같지만 힘은 세계의 폭군이다.- P108
204-(306) 공국(公國), 왕국, 행정직은 실제적이고 필연적인 것이므로(힘이 모든 것을 재배하기 때문에) 어디서나, 어느때나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사람을 그 지위에 오르게하는 것은 사람의 우연한 생각에 의한 것이므로 그것은 영속적인 것도 아니고 변하게 마련이다 등등.- P109
208-(320) 세상의 가장 불합리한 것이 인간의 착란으로인해 가장 합리적인 것이 된다. 한 나라의 통치를 위해 여왕의 장남을 선택하는 것보다 비합리적인 것이 어디 있는가. 배를 지휘할 사람으로 가장 훌륭한 가문의 사람을 선택하지는않는다. 이 법은 우스꽝스럽고도 부당하다. 그러나 사람은 지금도 그렇고 항상 그럴 것이므로 이 법은 합리적이고 정당한것이 된다. 왜냐하면 누구를 선택한단 말인가. 가장 덕 있고가장 학식 있는 사람인가? 그렇게 되면 우리는 즉각 난투극을 벌일 것이다. 누구나 이 덕 있고 학식 있는 사람이 바로자기라고 주장할 테니까. 그러니 이 자격을 무엇인가 이론의 여지 없는 것에 결부시키자. 그것은 왕의 장남이다. 이것은 명백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성(理性)은 이보다 더 잘할수가 없다, 내란이야말로 최대의 재난이므로.- P110
제13편 이성의 복종과 이용
352-(269) 이성의 복종과 이용, 참된 기독교는 이것으로성립된다.
353-(224) 성찬 등등을 믿지 않은 이 어리석음을 나는 얼마나 혐오하는지! 복음이 진실되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신이라면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P190
356-(696) Susceperunt verbum cum omni avididate, scrutantesScripturas, si ita se haberent.¹
1)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사도행전』17:11).- P191
359-(270) 성 아우구스티누스: 이성은 마땅히 복종해야할 경우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 한 결코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P191
362-(384) 반론(反?)은 진리의 나쁜 표시이다.
어떤 확실한 것들이 반대되는가 하면,
어떤 허위의 것들이 반대 없이 받아들여진다.
반론이 허위의 표시가 되지 않고 또 무반론이 진리의 표시가 되지도 않는다.
363-(747, 2) 영속성의 장 속에서 두 종류의 인간을 보라.- P192
366-(255) 신앙심은 미신과 다르다.
미신에 이르도록 신앙심을 고수하는 것은 그것을 파괴하는것이다.
이단자들은 우리에게 이 미신적인 복종을 비난하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비난하는 바로 그것을 그들이 행하는 것과 같......
성체(聖體)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체를 믿지 않는rar-불신.
명제들³을 믿는 미신, 신앙 등등.
3) 얀센의 저서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추출된 5개 명제를 가리킨다. 예수회는 이것을 이단으로 규정함으로써 이들 사이의 갈등은 더욱 격화되었다.- P193
368-(253) 두 극단: 이성을 배제하는 것과 이성만을 인정하는 것.- P194
373-(267) 이성의 최후의 한걸음은 자기를 초월하는 무한한 사물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데까지 이르지 않는다면 그 이성은 허약할 뿐이다.
자연적 사물들도 이성을 초월한다면 하물며 초자연적 사물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것인가.- P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