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앞서 걷던 초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맞아 스승님은 나한테 은인이나 다름없는 분이서 스승님을 만나기 전에...... 일곱 살까지는 쭉 보육원에서 지냈거든."
건방이는 말문이 막혔다. 어색함을 풀어 보려다가 도리어 분위기만 더 썰렁하게 만들어 버렸다. 건방이는 자신의 가벼운 혓바닥을 저주했다.
"아이고, 괜한 얘길 꺼냈구나‘- P113
11. 금강산에 가다
오방도사와 건방이는 꼭두새벽부터 부산을 떨고 있었다. 오늘 드디어 금강산에 가기로 한 날이다.
도시락이 든 괴나리봇짐을 떼면서 건방이가 물었다.
"진짜 돈 안 갖고 가도 돼요? 대체 거기까지 어떻게 가려고요?"- P114
"흐흐, 내가 오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 둔 것이니라"
"팔면 무지 비싸게 받을 수 있을 텐데."
(중략).
"약효가 여섯 시간뿐이니 어떻게든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하느니라. 꼭꼭 씹어 먹고 나서 몸에 뜨거운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기러기‘를 세 번 외치거라."- P115
"자부만 폼 나는 걸로 변하고・・・・・ 나도 매가 좋은데!"
송골매가 된 오방도시는 꿀밤 대신 부리로 건방이의 머리를콕 쏘았다.
"이놈아! 다 너를 위해 그런 거야! 장거리 비행엔 기러기 같은철새가 제일 편해"
"그럼 사부는요?"
송골매로 변한 오방도사가 흠흠, 헛기침을 했다.
"나 같은 고수한텐 품위 유지란 게 필요한 법이야 잔말 말고어서 따라와!"- P116
오방도사와 건방이는 유유히 휴전선을 넘어 북한 상공으로 들어섰다.- P117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따라오는 건데."
건방이는 말할 기운도 없어서 죽어 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엄살 그만 부리고 밥이나 먹자"
오방도사는 한 삼십 분 가볍게 조깅한 사람처럼 쌩쌩해 보였다. 건방이는 녹초가 된 몸을 억지로 일으켜 도시락을 풀었다.
처음에는 별로 생각이 없던 건방이도 일단 밥이 입 안으로 들어가자 입맛이 돌았다.- P117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더니 밥을 다 먹고 나서야 금강산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4월의 금강산은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는 중이었다. 봄꽃은 아직 만개하지 않았지만 기이한 바위며 흰 물보라를 일으키는 폭포, 깎아지른 듯한 봉우리까지.- P117
"봉우리를 잘못 선택한 거 아녜요?"
건방이가 슬슬 오방도사를 탓했다.
"이 이놈아! 너도 일만이천 개 봉우리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고 생각해 봐라! 그게 쉬운가!"
오방도사는 민망한 마음에 되레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봉우리를 잘못 선택했다고 느끼는 건 오방도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P118
"우리보다 먼저 신통풀을 캐 간 놈이 있구나"
"여긴 사람 출입이 통제된 곳이잖아요."
"사람이 아니야"
오방도사는 주변의 풀을 뒤적여 푹 파인 발자국 하나를찾아냈다.
"이 정도 크기라면 아마…………… 곰 비슷한....."- P119
오방도사는 주변에 둘러보았다. 마침 근처에 사람 머리통만한 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오방도사는 그 돌을 주워서 곰을향해 휙 던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곰이 돌을 앞발로 탁, 잡아 버린 것이다. 오방도사와 건방이는 입이 떡 벌어졌다. 흑곰은 가소롭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돌을 두 앞발로 짓이겼다.- P120
"이럴 줄 알았으면 진짜 안 따라오는 건데!"
흑곰은 절대 곰 같지 않은 속도로 둘을 따라왔다. 신통풀을먹고 자란 곰이라 그런지 반쯤은 영물(靈物, 신령스러운 짐승)이 된 것 같았다. 정신없이 뛰던 건방이는 앞서 가던 오방도사가보이지 않자 소리를 질렀다.
"사부! 어디 갔어요!"
잠시 후, 건방이의 발밑이 훅 꺼졌다.- P121
주위를 살펴보니 먼저 도착한 오방도사가 낙엽을 털털 떨어내고 있는 게 보였다. 다행히 곰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골짜기였다. 나무가 우거진계곡 사이로 푸른빛이 도는 맑은 물이 졸졸 흘러가고 있었다.
대낮인데도 골짜기 안은 물안개로 자욱했다.
산세와 지형을 살피던 오방도사가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몇 백 년간 사람 발길이 전혀 안 닿은 곳인 것 같구나"
건방이는 계곡물부터 조금 떠 마셨다. 계곡물은 얼음처럼 차갑고 달아서 정신이 번쩍 났다.- P122
오방도사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제자야! 회춘풀이다, 회춘! 아무리 못 돼도 이백 년은 묵은 회춘풀이야!"
간신히 오방도사의 품에서 빠져나온 건방이는 일단 함께 기뻐하며 외쳤다.- P123
"돌아올 회(回)‘, ‘봄 춘(春) 이게 바로 젊어지는 신통풀이란 말이다! 이 정도면 이십 년은 젊어지겠구나. 이걸 사려고 갑부 무술인들이 억만금을 싸 짊어지고 올 거다. 우린 한마디로...."
건방이의 얼굴도 흥분으로 달아올랐다.
"대박난 거네요!"- P124
12. 납치
(전략).
"회춘풀을 캤다면서?"
건방이는 화들짝 놀라 초아에게 목소리를 죽이라는 시늉을했다.
"뭐 어때? 아무도 없는데."
초아는 청개구리처럼 목소리를 더 높이며 아예 건방이 옆의자에 앉았다.- P125
"그냥 대단한 게 아니라 엄청나게 대단한 거야. 회춘풀은 단순히 겉모습을 젊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몸을 과거의 상태로 돌리는 신통풀이거든. 이를테면 되돌린 시간 이후에 얻은 병이나 상처 같은 것도 다 사라지는 거지. 점박이 아저씨 말로는 최근오백 년 동안 회춘풀이 세상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 아저씨가 살 사람을 물색하고 있다니까 곧 연락이 올 거야. 아마 엄청난 가격으로 팔릴걸?"
건방이는 약간 빼기듯이 말했다.- P126
사실 건방이의 꿈은 따로 있었다.
노인들을 위한 무료 병원을 세우는 일. 그게 바로 건방이의 오랜 꿈이다. 그래서 돈이 없어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 죽음만 기다리는 노인들을 공짜로 치료해 주고 싶었다.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허망하게 세상을 뜨는 사람이 없도록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얘기하자니 너무 멋쩍어서 엉뚱한 너스레만 떨고 말았다.- P127
건방이와 초아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면상이가 눈앞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P128
점심시간이 끝나가는지 애들이 교실로 하나둘 들어왔다. 초아가 면상이의 뒷모습을 쏘아보다가 건방이에게 속삭였다.
"야, 쟤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아?"
"뭐가?"
"나도 몰라. 콕 찍어 말은 못 하겠는데, 그냥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
건방이는 초아의 말을 들으면서 곁눈질로 면상이를 흘깃 바라보았다.- P128
요즘 오방도사와 설화당주는 핑크빛 열애 중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건방이와 초아가 닭살이 돋아 괴로울 정도로,
"근데 둘이 결혼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초아랑 나는 대체 무슨 관계가 되는 거야?‘
건방이는 복잡한 생각을 떨어내듯 머리를 흔들며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회춘풀은 대체 어디다 둔 거예요? 잘 있는 거죠?"- P130
"떡! 그걸 갖다 준다고 해도 꽃님 소저가 냉큼 받겠느냐? 꽃님 소저라면 혼자만 젊어지는 건 싫다면서 그냥 사이좋게 늙어가자고 하고도 남지!"
당황해하는 오방도사를 보고 건방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갖다 주긴 했단 말이군. 설화당주님이 거절한 거고 그럼 그렇지, 어쨌든 다행이다‘- P131
건방이가 거실로 막 들어선 순간이었다. 누군가 창문에서 휙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눈만 뚫린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키가 작은 걸로 봐서 건방이 또래인 것 같았다.
"거기서!"
건방이는 서둘러 복면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복면은 순식간에 담장을 넘어 자취를 감추었다. - P132
집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도둑맞은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책상 위에 놓아 둔 지갑도 그대로였다. 돈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찾으려다가 그냥 도망간 것 같았다.- P132
양말에 도꼬마리 열매가 하나 붙어 있었다. 건방이는 도꼬마리 열매를 떼어 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영락없이 작은 고슴도치 모양이었다.- P133
‘진짜 도꼬마리가 왔다 간 걸까? 아님 면상이가?‘
건방이는 슬쩍 뒤를 돌아 면상이 자리를 바라봤다. 면상이는 벌써 자리를 뜬 뒤였다. (중략).
"설마... 아니겠지. 그나저나 그 도둑놈을 대체 어떻게 잡지?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고‘- P134
호길이가 계단 아래쪽을 한 번 더 확인한 다음, 소리를 죽여 말했다.
"너 좀 싸우는 거 알아. 지난번에도 나한테 일부러 맞아 준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면상이한테는 알아서 기는 게 나을 거다. 니가 주먹을 얼마나 쓰는지는 몰라도 그놈은 달라. 갠・・・・・ 진짜 무서워."
호길이의 표정에 불안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면상이랑......."- P135
"이거 진짜 미친놈 아냐?"
건방이가 하도 기가 막혀서 중얼거렸다.- P136
하지만 옆에서 어깨너머로 편지를 훔쳐본 호길이는 엉뚱한 대목에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이럴 수가...... 너……… 초아랑 사귀는 거야?"- P137
13. 봉화대 결전
‘역시・・・・・・ 면상이가 도꼬마리인 게 틀림없어!‘- P138
웃음기가 전혀 없는 면상이의 얼굴이 딴 사람처럼 낯설어 보였다.
"일단 초아부터 풀어 줘. 니가 잘 모르나 본데, 재네 사부가얼마나 무서운......
면상이 건방이의 말허리를 싹둑 자르며 말했다.
"알아. 그 악명 높은 설화당주지. 하지만 지금 여기 달려올 정신은 없을걸? 네 사랑 꽃구경하며 희희낙락 놀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건방이는 흠칫 놀랐다.- P139
"오방도사 제자랍시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대던데, 죽기싫으면 당장 회춘풀부터 내놔"
건방이는 이상한 걸 느꼈다. ‘오방도사 제자랍시고‘ 하는 말투에서 뭔가에 비비 꼬인 듯한 심사가 느껴진 것이다.
‘사부랑 아는 사이인가? 눈치를 보아하니 무슨 원수라도 되는 것 같은 분위긴데……………‘- P140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건방이는 손을 타고 지잉, 올라오는 통증에 당황했다. 수석술을 썼는데도 손이 아픈 건 처음이었다. 건방이는 정신이 번쩍 났다.
‘젠장. 녀석도 수석술을 쓰는구나! 게다가 나보다 한 수 위야.‘
쉴 틈 없는 공격과 방어가 더 이어졌다. 면상이의 공격은 점점 날카로워지는 반면, 건방이의 방어는 눈에 띄게 힘을 잃어갔다. 언뜻 보면 비등하게 싸우는 것 같았지만 두 사람의 실력차이는 확연했다.
‘이대로 가면 지겠어‘- P141
"면상인지 낯짝인지, 이젠 나랑 한번 붙어 볼까? 아깐 기습으로 어이없이 당했지만 이번엔 쉽지 않을걸?"
초아가 연검을 휘두르며 매섭게 공격했다. 잠깐 당황했던 면상이가 곧 냉정을 되찾고는 착착, 연검을 막아 냈다.
"계집애라고 봐줬더니 안 되겠구나. 너부터 없애 주지."
다음 순간, 면상이는 초아의 연검을 맨손으로 잡아 팔뚝에 둘둘 감아 버렸다.- P144
면상이가 손을 감싸 쥐며 한발 물러섰다. 건방이는 놀라서 자신의 손을 만져 보았다. 싸늘하게 날이 선 느낌이 났다.
"수검술......."
면상이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오방도사가 그런 것도 가르쳐 준 모양이지? 흥, 하나뿐인 후계자라 이건가?"
"아니, 도대체 뭔 소리야?"- P145
건방이가 수검술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걸 알아챈 면상이가 비열하게 웃었다.- P145
살기등등한 면상이의 얼굴이 마치 악마처럼 일그러졌다. 건방이는 눈을 질끈 감고 필사적으로 오방구결을 떠올렸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주의 중심인 흙의 가운, 즉나 자신을 믿는 신(信)‘의 마음가짐이다.
건방이는 오른손에 정신을 집중했다.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얍!‘
그러자 놀랍게도 손에 싸늘한 칼의 기운이 서리는 것이 느껴졌다.- P146
14. 정체가 탄로나다!
"초아야 거기까지만 하거라"
뒤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초아가 공격을 멈추고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갈참나무 그늘 아래에서 설화당주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뒤로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오방도사도 보였다.- P147
면상이가 소리를 지르며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발목뼈가 부러진 모양이다. 오방도사는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고 가만히 면상이를 내려다보았다. 면상이는 뼈가 부러졌는데도 여전히 독기어린 목소리로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흥! 그러지 말고 아예 날 죽이지 그래? 어서 죽이라고!"
면상이가 이를 꽉 깨물고 일어섰다. 한쪽 발목이 이상한 각도로 꺾였는데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방도시는 말없이 면상이 앞으로 걸어갔다.- P148
잠시 후, 면상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기 시작했다.
으헝엉엉엉.
깊은 한이 맺힌 것처럼 서럽게 소리 내어 울었다.
건방이는 일그러진 면상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어느샌가 면상이의 얼굴이 주름 가득한 노인의 얼굴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맞아 초아가 전학 온 날!‘
언뜻 면상이의 얼굴 위로 겹쳐지던 그 노인의 얼굴이 틀림없었다.- P149
이십 년 전, 변면술 때문에 파문당한 제자오방도사는 도꼬마리의 흐느낌이 잦아질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두루마리 고름을 풀고는 바지 속으로 손을 쑥집어넣었다.
(중략).
오방도사는 "어험" 하고 헛기침을 하며 바지 속에서 손을 한참 꼬무락대더니 뭔가를 꺼내 들었다. 회춘풀이었다.- P150
"사부, 미쳤어요? 저걸 주면 어떡해요!"
건방이가 펄쩍 뛰며 달려가려는데 설화당주가 건방이에게말을 건넸다.
"오라버니에게 들었을 때도 설마했는데, 진짜로 수검술을 쓰더구나"- P151
"수검술은 검으로 헤아릴 수 없이 아득한 경지에 오른 고수만 썼다는 전설의 기술이란다. 놀랍구나. 정통 수검술과는 좀달라 보이긴 하다만, 가벼이 여길 재주는 아니다. 네가 지닌 재능은 권법이 아니라 검법 쪽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시간 날때마다 나에게 와서 검법을 배워 보려무나."
건방이는 설화당주의 칭찬에 왠지 쑥스러워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술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난생 처음 들은 터라 기분이 들떴다.- P152
"흥! 그나저나 웃기는 일 아니니? 알고 보면 네가 한술 더 뜨는데 말이야. 곤경에 빠진 애들한테 돈 받고 대신 싸워 주는 거,
너희 스승님도 아셔? 말이 좋아 머니맨이지, 겁줘서 돈을 뺏는거랑 뭐가 다르단...………."
(중략).
오방도사의 눈에 화르륵 불이 붙었다.- P153
"호길아,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 서로를 위해 지켜줘야만 하는 비밀도 있고."
초아가 검지를 펴서 입에 갖다 대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략).
"그..... 그럼, 이, 이해하지. 걱정 마. 아, 아무한테도 마 말 안할게"
초야가 싱긋 웃자 호길이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 되었다.- P154
15. 돌아온 머니맨, 그리고......
희미한 가로등 아래서 고등학생 서너 명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머니맨인가 뭔가가 여기를 떴다는 거, 확실한 정보지?"
"짜식, 쫄았냐? 걱정 마셔 다시 활동을 개시한 애들 말이요즘 그놈 코빼기도 못 봤다."
"아오, 그놈 때문에 몇 달간 찌그러져 있던 걸 생각하면………"- P156
"넌 어째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냐? 엉아들 피곤하게"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뒤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니들은 어째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냐? 엉아 피곤하게."
가로등 불빛을 뒤로 하고 사내아이가 서 있었다. 푹 눌러쓴야구 모자 위로 ‘M‘ 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머니맨!"- P158
머니맨이 손을 들어 핫도그의 말을 끊었다.
"됐어. 앞으로는 안 받아 우리 사부가 곤경에 처한 사람한텐돈받지 말래"
핫도그는 멍하니 머니맨을 바라보다가 먹다 만 핫도그를 불쑥 내밀었다.- P159
머니맨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리 사부가 곤경에 처한 사람한테는 돈 받지 말라고 했어도, 곤경에 처하게 한 사람한테 돈 받지 말라고는 안 했거든. 앞으로는 너희가 비용을 지불해 줘야겠어."
머니맨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불량 청소년들 앞에서 요금을 좔좔 읊었다.
"고딩을 상대로 했을 경우 80,000원, 중딩은 90,000원, 초딩은 100,000원. 오늘은 초딩 한 명이니까 100,000원에 7시가 지났으니까 야간 할증료 10,000원 추가 합이 110,000원이야"- P160
머니맨의 형이랍시고 나타난 아이는 머니맨보다 더 작아서 초등학교 2학년이나 될까 말까 해 보였다. 아이 역시 야구 모자를꾹 눌러쓰고 있었다. 하지만 야구 모자에는 M‘ 자가 아닌 고슴도치 문양 비슷한 것이 새겨 있었다.
"아우야, 이제부터는 나한테 맡겨라"
새로 등장한 아이에게서는 음습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가 풀풀 풍겨 나왔다.- P161
한편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래, 저놈들이 오방도사의 제자들이란 말이지? ㅎㅎㅎ"
수염을 길게 기른 남자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은 채 낮게 읊조렸다.
(중략).
때마침 구름을 벗어난 달이 사내아이의 얼굴을 비추었다. 족제비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웃고 있는 아이는 바로 오지랖, 아니 오지만이었다.- P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