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어땠나?" 가장 침착하지 못해 보이는 아쓰히코가 제일 먼저 상황을 물었다. "시신을 자세하게 조사했겠지. 뭔가 알아냈나?"
질문을 받은 다카자와는 마사에와 재빨리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아까 정자에서 들려준 수준의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서 다시 말했다. 쓰루오카의 시체는 처참한 상태라는 것. 따라서 살인으로 추정된다는 것. 시체는 정자로 옮겨졌다는것. 범행은 어젯밤에 일어났다는 것 등등.- P141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뜬금없이 살인사건이라니. 게다가 평범하게 죽인 것도 아니야. 코뼈와 갈비뼈를 부러뜨리질 않나, 아주 난폭한 수법이잖아."
"정말입니다. 마치 집단 폭행이라도 당한 것 같네요."
분위기를 읽을 줄 모르는 도라쿠 스님이 태평한 어조로 콕 집어 지적했다.- P142
"여러분께 쓰루오카 가즈야가 탐탁지 못한 인물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 아닙니까. 그런 쓰루오카가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았겠죠. 아니, 거의 모두가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왜 이딴 녀석이 사이다이지 가문의유산을 축내느냐면서요."
너무나 솔직한 지적에 뜨끔했는지, 사람들 사이에서 "윽"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탐정의 말이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P142
사야카가 그런 걱정을 하거나 말거나, 다카오는 더욱 도발적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차라리 내가 쓰루오카를 죽였다고 이 자리에서 손들 분은 안 계십니까? 어쩌면 ‘우리‘라고 복수형으로 표현해야 하려나. 이번 일이 정말로 집단 폭행이라면, 범인은 한 명이아닐 테니까요. 어떻습니까, 아무도 안계세요?"- P143
그러자 3남매 중 한가운데에 앉아 있던 게이스케가 손을 드는 대신, 목소리 높여 항의했다.
"어쭙잖은 짓은 그만두시죠, 탐정님. 저희 사이다이지 가문 사람들이 합세해서 쓰루오카를 때려죽였다. 그런 말씀입니까? 말도 안돼요. 우리 가문 사람은 그렇게 난폭한 짓을 하지 않아요. 그렇지, 누나?"- P143
3남매는 하나같이 범행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들이 뭘 어떻게 호소하든, 쓰루오카 가즈야가 여러 군데 상처를 입고 참혹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때 아쓰히코가 주먹으로 손바닥을탁치더니, 새삼스럽게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렇지. 범인은 혹시 외부에서 온 것 아닐까?"
"어휴, 섬 밖에서요? 바다를 건너서 말입니까?" 다카오가 기가찬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P144
미사키는 어젯밤에 체험했던 기묘한 일을 여기서 이야기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다카오도 미사키에게 이야기하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중정에 빨간도깨비가 나타난 일은 당분간 비밀로 하는 편이상책이라고 판단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사야카도 비밀을 나불나불떠들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세 사람은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P145
그러자 아쓰히코는 자신의 ‘외부 범행설‘을 지지한다고 착각했는지 더욱 자신을 얻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면 처남은 여러모로 적을 만들 법한 성격이었잖아. 분명 우리가 모르는 부분에서 엄청난 말썽이 있었겠지. 응, 틀림없어."
(중략).
"그렇군요. 외부인의 범행이라면 이러니저러니 고민할 것 없겠죠. 선량한 시민의 당연한 의무로서,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으신 거죠? 그럼!"- P145
게이스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호소했다. "뭐, 어쨌든 좀더 생각하고 신고해도 늦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죠, 탐정님?"
"거참, 뭘 더 생각한다는 겁니까. 범인은 섬 밖에서 왔다면서요?
그럼 무서워할 것 하나 없겠네요."
‘외부인이 범인일 가능성은 손톱만큼도 안 믿는 주제에!‘
사야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한편 다카오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이었다.- P146
에이코의 재촉에 고이케 기요시는 한순간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지만, 마음을 굳힌 듯 한 발짝 앞으로 나서더니 감정이 깃들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섬에는 저희밖에 없습니다. 외부에서 누군가 침입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은 이 거실에 계신 분들과 가나에 님뿐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뭐, 그렇겠지. 그래서요?"
"모두 함께 입을 맞추면, 이 사건을 묻어 버리기는 그리 어려운일이 아니지 않을까..."-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