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적어도 내게 한 권의 책은 정보 이상이다.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 책은 한 사람의 생각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 내 생각, 대개는 엉뚱한 생각이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매개로 작용하곤 한다. 이 책, <뮤지코필리아> 역시 내게 남다른 느낌을 갖게 한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는 남들에게는 쉽게 털어놓지 못할 공포 같은 것이 있었다. 노부모와 곧 태어날 아이... 언제부터인가 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불쑥불쑥 찾아드는 생각이, 혹여라도, 정말 혹여라도 두 분 중 어떤 분이라도 치매나 그와 유사한 뇌질환이 찾아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은 생각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였다.
똥오줌 못 가리던 어린 자식을 당신들의 모든 걸 바쳐가며 옥이야 금이야 길러주셨음에도 자식인 난 부모의 다른 모습을 상상하면, 공포감밖에는 느끼지 못했다. 간혹 친한 지인들에게 “만일 내 부모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난 자신 없어... 수발들 자신도 없고.. 열심히 돈 벌래. 그 돈으로 간병인 불러서 부모 수발들게 할래....” 같은 이야기나 할 뿐....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해서도 부모님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동갑인 아내와 결혼해 축복처럼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찾은 병원에서 담당의는 노산의 위험을 이야기하며 아이가 정상적으로 태어지지 못할 가능성에 대한 경고와 함께 정밀 검사를 권유했다. 오직 축복만을 받고 태어나야 할 아이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듣는 순간, 처음에는 의사에 대한 노여움으로 마음이 가득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정밀 검사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하며 아이가 잘못되어 태어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밤잠을 이루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결국 며칠간의 고민은 아이를 믿고 정밀 검사를 포기하는 결정으로 정리되었지만, 솔직히 그 어떤 가능성도 열어놓은 채 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뮤지코필리아>에는 수많은 뇌질환 환자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중에는 치매를 앓는 노인이나 뇌질환을 안고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어 있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의 뇌를 향한 한 노인의 40여년 열정이 담긴 연구 성과가 이 책에 오롯이 드러난다. 하지만 내게 이 책이 준 선물은 그러한 연구 성과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며 내 마음속 공포가 치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사그라드는 것을 느낀 점이다.
올리버 색스 박사는 내게 뇌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 역시도 존엄성을 간직한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일깨워주었다. 그의 환자들을 향한 따듯한 시선은, 내게 이전과는 달라 보이는 부모일지라도, 자식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여전히 존엄한 인간이며, 나를 위해 당신들의 살점을 내어주었던 그분들과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해주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 그 행위가 물 밑에 가라앉아 있는 거대한 삶 통째가 아닌 빙산의 일각을 읽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해도, <뮤지코필리아>를 읽으며 한 노인의 인간을 향한 따듯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으로, 그 시선이 한 남자의 어찌해볼 수 없던 공포감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끔 해주었다는 것으로,
그를 알게 된 느낌이다....
고마워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