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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ol님의 서재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 신경숙
  • 14,850원 (10%820)
  • 2010-05-17
  • : 17,503
전화는 핸드폰과 다르다. 정윤과 미루와 명서가 서로의 허공을 채워주기 위해 걸었던 전화는, 연락두절인 애인에게 수십통을 쏟아붓게 되는 지금의 핸드폰과 다른 매체다. 소설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마종기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소박하지만 마음에 들어 나의 '갈색노트'에 옮겨 적었던 것이다. 제목은 <전화>.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이 소설의 배경은 1980년대로 추정된다. 내가 막 태어나기 전후를 배경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핸드폰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청춘을 과거의 정서로만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발적 외톨이인 정윤, 정윤을 연모하는 오래된 친구 단, 언니의 비극적 죽음을 목격하고 끔찍한 상처를 입은 미루, 그런 미루를 보살피지만 정윤을 사랑하게 되는 명서. 그리고 이들에게 크리스토프의 존재를 알려주는 윤 교수. 이들은 서로의 외로움과 슬픔을 들여다보고 서로가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서울의 거리를 걷고 또 걸으며 서로의 무거운 삶을 밀고 이끌며 지속시켜 준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이미 너무 무겁고 힘겨웠다. 살얼음 위를 걷듯 위태롭게 지속되던 시간은 곧 비극의 결말로 순식간에 빠져버린다.

잘못된 예상이었다. 이 책을 읽던 그 새벽, 나는 생전 처음으로 책의 낱장 하나하나를 손으로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운 독서를 해야 했다. 황종연 선생님의 말이 정확했다. 엄청난 눈사태가 몰아쳐 감정이 따라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미루와 단을 영원히 기억하며 평생 그들을 애도하는 윤과 명서가 되어 있었다.  

청춘. 이것은 지금의 청춘들이 입 밖으로 내기에는 민망한 단어다. 지금의 청춘들은 이 단어에 냉소를 지니고 있다. 모두가 찬란하다고 말하는 이 청춘이, 사실 너무나 힘겹기 때문이다. 푸르고 아름다운 청춘이란 누구의 청춘인가. 누군가는 지금의 이십대에게는 청춘이 없다고도 한다. 오직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젊은이들이라고 개탄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성공 지향적인 태도로 무장한 젊은이의 가슴 속에도 쓰린 청춘이 있다고 믿는다. 다만 입 밖에 내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청춘은 비극이다.

그들이 걷던 서울의 한 동네에서 나도 홀로 청춘을 살고 있다. 걷고 또 걷고 먹고 마시고 웃고 울며 지금의 이 시간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이제는 그러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가슴이 시리고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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