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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배와 혐오
  • 재클린 로즈
  • 16,200원 (10%900)
  • 2020-08-20
  • : 595

이 책의 저자는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그리고 문학을 아우르는 페미니스트 학자로 영어권에서 명망이 높은 재클린 로즈다. 『숭배와 혐오』는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첫 번째 저술로서 원제는 『Mothers: An essay on love and cruelty.』 (2018)이다.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모성의 개념을 탐구하거나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등을 밝히고 비판하는 페미니즘 이론서가 아니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중점을 두고 연구해 온 정신분석학과 페미니즘, 그리고 문학의 영역에서 모성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에세이다.

 

저자 로즈는 <들어가며>에서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와 목표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서구 담론에서 모성이란, 우리 문화 속에서 온전한 인간이 무엇인지를 둘러싼 갈등의 현실을 가두거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현실을 감추는 장소라는 점이다. 모성은 우리의 개인적·정치적 결함, 다시 말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잘못된 일에 대한 궁극적 책임을 떠맡은 희생양이며, 그 결함과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어머니에게 부여된 - 당연히 실현 불가능한 - 임무였다. [...] 이런 익숙한 주장과 더불어 이 책은 하나의 관점 내지 질문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과 관련해 생각하기조차 힘든 일을 모두 어머니에게 떠넘기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일까. 우리는 어떤 사회적 약속이나 내적 삶 또는 역사적 불의 따위를 외면하려는 것일까. [...] 우리가 어머니를 공인된 잔혹함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세계의 불의에 눈을 감고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장이다.”(p.6-7)


 

1장에서 저자는 최근 영국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통해 어머니 혹은 모성이 제도적으로 별로 존중받지 못하면서도 온갖 사회적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어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는 모성에 대한 사회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추적해 내려온다. 이때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모성이 어떻게 인식되고 인정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문학 작품들이 근거로 제시된다. 2장에서 저자는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의 과정에서 자녀에 대해 가지는 양가적 감정, 즉 ‘사랑하기’와 ‘증오하기’가 실제로 어떻게 표현되었고 어떻게 왜곡됐는지를 역시 다양한 문학 작품 속에서 찾아내 제시한다. 이 장에서는 특히 엘리자베뜨 바댕떼르, 위니콧, 에이드리언 리치, 에스텔라 웰던,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의 페미니즘 이론가들의 모성 개념이 소개되는데, 저자는 “모성의 깊은 양가성”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 것이 어머니뿐 아니라 아이의 행복에도 방해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3장에서 저자는 “21세기 유럽에 등장한 가장 중요한 문학적 현상 가운데 하나”(p.190)인 엘레나 페란떼의 작품 속에서 독특하게 형상화된 모성의 개념을 소개한다. 저자가 볼 때 페란떼는 “어머니 심리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갈아엎어 그 누구라도 응시하기 쉽지 않은 인간됨의 양상을 공포이자 미래의 전망으로 제시”(p.226)할 뿐 아니라 “이러한 전망을 정치적 현실과 뒤섞는다”.(p.226) 저자는 어머니라는 주제에 대한 페란떼의 “거리낌 없는 태도”(p.231)가 그의 작품들이 거둔 놀라운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엘레나 페란떼는 “모든 어머니를 대신해 비밀을 누설했”(p.234)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열렬한 여성 지지층을 확보했다고 보는 것이다. 3장의 후반부인 <뒤집어보기>에서 저자는 전쟁이나 경제적 위기 등이 닥쳐오면 우리는 어머니들이 일체의 절망감은 감추고 용기를 가지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길 기대한다면서 이런 “이상화의 악순환”(p.241) 속에서 어머니들에 대한 처벌이 더 강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저자는 어머니가 스스로의 육체와 마음에 대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세계”(p.267)를 종말에 이르게 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어머니에게 역사의 과오와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길 기대하고 그들의 필연적인 실패를 질책하지 않는다면, 대신 어머니가 스스로의 육체와 마음에 대해 꺼내놓아야만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그렇게 되면 우리가 아는 세계는 종말에 이르게 될 텐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결코 나쁜 소식이 아닐 것이다. (P.266-267)

 

이 책은 모성이라는 개념의 역사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하는 독자에게는 결코 친절한 책이 아니다. 저자 재클린 로즈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전제로 하고 있는 정신분석학과 페미니즘 분야에서 이루어진 모성에 대한 논의를 개략적으로라도 알고 있다면,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되는 문학 작품들의 상당수를 읽어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은 내용 면에서나 서술 방식 면에서 매우 흥미진진한 책이 될 수 있다. 특히 저자가 다양한 학문 영역과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는 문학작품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면서 서로 연결하고 대비시키는 솜씨는 읽는 내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책을 가볍게 읽을 수 없는 또 다른 원인은 저자의 서술 방식 때문인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옮긴이의 말>에 잘 설명돼 있는데, 저자가 논의를 수렴해가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를 쌓아서 확산해 가는 방식”(p.283)으로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우 독특한 만큼 낯설고 그래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모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굳이 개념화시키고 논리적으로 정리하려고 하지 말고 저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 가다 보면 지금 우리가 모성에 대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중요한 단서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는 엘레나 페란떼의 작품에 대한 저자의 분석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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