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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님의 서재
  • 사회적 농부
  • 정기석
  • 15,300원 (10%850)
  • 2022-03-25
  • : 322

 

우리는 도시에서 살고 노동하면서, 늘 자연을 꿈꾼다.

자연 안에서 풍요롭고 만족하는 농촌 생활, 흙을 만지며 살아가며 소박하게 차린 유기농 밥상과 함께 피어나는 이웃과의 수다 같은 여유로운 삶을 말이다.

농촌으로 가족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이상한 풍경과 기분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농가의 빈곤화와 귀촌 저택의 사이의 담, 농촌 주변이 공업화 된 풍경, 이제는 거의 만날 수 없는 아이들, 밭이나 과수원 어디서도 직거래할 수 없던 지역 농산물, 오일장이나 지역장터에서 살 때에도 유기농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의심들이 한 데 뭉쳐져 갔다.

 

우리가 농촌의 풍요를 함께 누리던 삶이 농촌 사회의 도시화로 점점 멀어져가는 것 같은 괴리감 속에서 정기석 님의 ≪사회적 농부≫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동안 느꼈던 수많은 고민들에 대해 왜 그랬는지 이해하게 되고, 어떻게 해야 농촌을 살릴 수 있는지, 왜 농부를 살리는 일이 농촌과 모두에게 삶의 질을 한껏 높여주는 일인지

글쓴이가 직접 농부들을 만나고 소개해준다. 마치 여행을 다니며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신나게 책을 읽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 가서 다양한 유기 농가를 만나고,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독일의 녹색 계획(green plan)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농민과 일반 국민의 동일한 삶의 질을 위해 동등한 소득 정책을 실행하고, 질 좋고 건강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자국에서 먹을 것은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생산하며, 자연과 농촌 경관을 보존하고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하는 일은 국민이 누릴 권리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지켜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한국에선 머나먼 미래처럼 느껴졌다.

 

누구나 ‘사회적 농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중등 교육부터 마이스터까지 농업 과정을 수료한 뒤, 농부 자격고시에서 합격한 농업 전문가만이 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학자나 교수가 될 텐데, 독일에서는 농부가 되려고 이렇게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기본기가 놀라웠다.

 

농부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연과 상생하고, 생명을 헤치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엄격한 농사를 지어 좋은 농산물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농업회의소에서 1차 생산 – 2차 가공 – 3차 유통까지 농민이 끝까지 책임져서 기업에 통제권이 넘어 가지 않도록 하고, 유전자 변형이나 항생제 농산물 수입을 막고, 국민과 국가에 안전한 식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농업회의소가 먼저 기반을 만든다. 당연히 정부에서는 농부를 더욱 신뢰하게 되고, 시민들에게는 신뢰와 사랑을 받는 ‘자랑스러운 농부’가 되는 것이 그들이 묘비에 새기고 싶은 명칭이라고 한다.

이렇게 ‘사회적 농부’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정부의 정책과 법이 뒷받침되기 때문이었는데,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정부로부터 ‘농민 기본 소득세’와 더불어 ‘문화경관 직불금’으로 농가 소득의 80퍼센트를 받는다고 한다. 가장 부러운 점은 소규모인 가족농이나 영세농에게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직불금의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이 있으니 자연스레 대를 잇는 가족농이 늘어나고, 어릴 때부터 농부가 되고 싶은 꿈을 꾸고 진로를 결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농부들이 앞장서 땅과 숲과 물을 보호하니 농촌 경관이 아름답고, 지역에서 열리는 장터에 가면 농산물뿐만이 아닌 지역 예술가, 기업가들과 협동해 지역의 다양한 제품을 구경하고 살 수 있어 즐겁고, 거기에 근사한 농가 민박까지 있으니 긴 휴가를 농촌에서 보내고, 자주 찾는 선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책에서는 더욱 다양하게 화훼, 농업, 축산 농가들을 방문해서 만나고, 유럽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시도되고 있는 농촌자치공동체의 아름다운 연대의 모습들도 이야기해준다. 한국에서도 사정에 맞게 변화시켜야 하겠지만, 이런 윤리적인 농업 정치가 가능한 것은 법과 정책, 제도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농정을 바라보는 철학과 교육, 기본기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을 새롭게 가슴에 새긴다.

 

‘자랑스러운 농부’는 농업으로 농촌을 지키며 살아가는 ‘농부의 나라’를 꿈꾼다. 이것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정부의 지원과 시민의 신뢰, 농부의 협동을 통해 연대하면서 ‘모두의 농부’가 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회적 농부≫의 책 씨앗이 멀리 멀리 퍼져나가서 지구인 모두가 땅과 숲을 살리고, 동물과 사람을 살리는 지속가능한 ‘농부의 나라’를 꿈꿀 수 있기를 정말로 바라게 된다.

넷째,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한다. 농촌의 자연, 문화경관은 모든 국민이 즐길 권리다. 국도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 P14
독일에서는 농부가 되려면 농업학교부터 다녀야 한다. 아무나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국민의 생명, 국가 식량 주권을 지키는 국가기간산업인 농업을 아무한테나 사사롭게 맡길 수 없다는 정신과 원칙이 있는 탓이다.- P66
일단 독일에는 농촌관광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관광이 아니라 ‘휴양‘이나 ‘치유‘라 부른다. "농촌은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옷깃을 여미고 쉬러 오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169
그래서 독일에는 한국 농촌 어딜 가나 눈에 거슬리는 ‘농공단지‘라는 을씨년스런개념이나 정책 자체가 아예 없다. 공장은 오직 도시 지역에만 건설할 수 있다. 도시 지역이 끝나는 지점에는 어김없이 담처럼 울창한 숲으로 가로막힌다.- P213
중요한 것은 직불금 예산이나 지원 규모 같은 양적 성과가 아니다. 직불금을 지원하는 이유이자 철학이다.
"기후변화와 토양 침식과 오염을 방지하고, 생태계 다양성을 유지하며, 문화 경관을 보전하고, 윤리적 사육을 실천하는 농가를 지원한다"-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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