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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可無不可
  • 장서의 괴로움
  • 오카자키 다케시
  • 11,700원 (10%650)
  • 2014-08-18
  • : 2,025

사람들은 익숙하고 길들여진 것이 편안하기 때문에 웬만해선 거기서 탈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걸 두고 점잖은 말로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편견이나 선입견 따위를 극복하라고 하기도 하지만,

나이가 먹어 자아(ego)라는 것이 성립된 연후라면 그런 말 따위는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너나 할것없이 다 그런 습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고,

변화를, 오히려 변절이나 변덕이라고 하면서 하면서 폄하하고 두려워들 한다.

하지만 '느리게 또는 빠르게'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세상은 지금 이순간에도 변하고 있다.

 

언젠가도 얘기한 적이 있는 듯 한데,

우리가 살고 있는 하루 하루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오늘이지만,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다고 하여 '어제'는 아닌 것이다.

 

똑같은 패턴의 무수한 반복인듯 하면서도,

미세하고 미미한 변화의 순간들이 존재하는,

이 순환을 한 발자국 떨어져 관조적으로 바라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 슬쩍 맞물리는 듯도 하지만,

속도의 느리고 빠르기의 차이에 따라,

점점 크거나 점점 작은 포물선이 그려지기도 할 것이며,

너무 느리거나 빨라서 솟구치거나 누운 직선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그러고보면,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눈에 아무리 느리고 더디게 흐르는 것 같은 시간 들일지라도,

신들의 그것을 기준으로 봤을때는 눈깜짝할 새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우리에겐 짧게만 여겨지는 하루살이의 일생이,

(원래 하루살이의 수명은 일주일 정도란다, ㅋ~.)

하루살이의 삶에서는 '평생이고 영원히'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때,

이 책 장서의 괴로움은 백해무익百害無益까지는 아니어도 백해소익百害少益한 책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여기서 장서는 '책을 소장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겠는데, 

독서에 관한 많은 정보를 이분의 라디오 방송에서 얻는다고 할 수 있는 이권우 님의 말씀에 따르면,

자기가 소장한 책을 다 읽을 순 없고 소장한 책의 1/10을 읽으면 많이 읽는것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동안 난 이분 방송을 들으며 기죽지않고 위안을 받으며 많은 책을 쟁여올 수 있었다.

많이 쟁여두면 쟁여둘수록, 비례하여 읽을 수 있는 경우의 수가 한권이라도 늘어난다는 생각으로 뿌듯했었지만,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같이 사용하는 남편과 아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급기야 얼마전부터 남편은 책장에 꽂히지 않은 내 책들을 어디론가 내다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다른 가구는 찾을수도 없고 사방 팔방 벽이란 벽은 빈 공간만 있으면 책장이 들어서는 우리집의 속성상,

책장에 꽂히지 못하고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책들은 다 읽었으리라 생각했나 보다.

읽은 책은 다른 사람들과 나눠 읽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했을테고 말이다.

 

넘쳐나는 장서를 줄이기 위한 가장 지혜로운 방법으로 지은이는 '올바른 독서'를 권한다. 마키아벨리의 아버지처럼은 못하지만, 500여 권 정도로 책을 엄선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시도야말로 독서가나 장서가가 염원하는 이상일 것이다. 지식도 수집도 질이지 양은 아닌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러 '양서란 대체 어떤 것이냐'라는 논의를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이 문제는 워낙 간단치 않기도 하거니와, 발문을 쓰기로 수락하면서 '이런 논의는 피해가야지'하고 마음먹었던 나 같은 작자에게 답이 있을 리도 없다.

  ㆍ ㆍㆍ ㆍ ㆍ ㆍ500여 권 혹은 100여 권의 조촐한 장서를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면 그게 양서가 된다! 책은 한 번 읽고 마는 게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얘기요, 무작정 많이 읽는다고 지혜가 늘지는 않는다는 당연한 결론이다.(13쪽)

위 글은 '장정일'이 쓴  이 책의 발문 중 일부이다.

난 그동안 장서가냐 독서가냐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책욕심이 많은 것으로 묶어 말하곤 하였다.

어차피 우리나라 출판시장의 여건 상 장서가와 독서가를 구분할 만큼의 수요가 충족되긴 힘들거라고 생각하였었고,

무엇보다도 나부터가 책을 어떤 목표나 기준을 갖고 들이는게 아니었다.

 

책에 관해선 팔랑귀라고 할만큼 남의 말에 잘 현혹되었고,

관심 분야도 어떤 특별한 분야가 있는게 아니라 완전 잡식성이다 보니,

그때그때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 충동구매를 했었다.

그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서평집에 의지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아무 책이나 고르는 실수를 할 확률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책을 들이는 속도에 읽는 속도가 한참 못 미친다.

 

책 중에는 시노다 하지메 의 '5백 권의 가치'를 빌어,

세상사람들은 하루에 세 권쯤 책을 읽으면 독서가라고 말하는 듯하나, 실은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독서가다.(150쪽)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 내용대로라면 난 독서가엔 한참 못 미칠 뿐더러,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권이라도 가졌는가 자문해 보자면 글쎄올시다~(,.)이다.

난 하루에 세 권은 고사하고,

일주일에 세 권쯤 읽던 것도 지금은 더 더뎌졌다.

뭐 예전에 비해, 유독 어려운 책을 읽는 것도 아닌데, 책을 곱씹어 읽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지는 않더라도 소가 되새김질 하듯,

군데군데 무작위로 반복하다보면 물리가 트이듯, 자연스럽게 깨닫는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다읽은 책을 좋다는 이유로 보관하지는 않는다.

세상은 넓고 책들은 많다고 좋은 책들이 얼마든지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만일 좋은 책들이라면,

내가 소장하고 있지 않더라도

세월이 가면 또 다른 기획과 편집으로 출간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처분하고 정리한다.

그러니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은 내가 읽은 후, 누군가에게 가기전에 잠시 동안과,

아직 읽기 전의 책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러니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많이 소유하였다고 하여, 없애거나 팔아버리거나 처분하기가 쉽지 않다. 

ㆍㆍㆍㆍㆍㆍ책마다 제각각 추억도 있다. 결코 고서 목록에 죽 나열된 책을 남아도는 돈으로 한꺼번에 주문한게 아니다. 텅빈 책장이 그대로 내 마음의 공허함을 드러내는 듯하여 쓸쓸함이 자근자근 밀려왔다. ㆍㆍㆍㆍㆍㆍ '장서의 괴로움'은 처분하고 난 뒤에도 느껴지나 보다.ㆍㆍㆍㆍㆍㆍ 바로 전날 겨우 1천2백 권을 처분한 주제에 여기저기 마음이 이끌려 헌 책을 열일곱 권이나 사버렸다.ㆍㆍㆍㆍㆍㆍ 열일곱권의 책 무게로 손가락이 아플 지경이 되니 그제야 우울한 마음이 가라앉았다.ㆍㆍㆍㆍㆍㆍ 나머지는 생각날 때 또 사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누그러졌다.(35~37쪽)

 하지만 아직 안 읽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안 읽게 될 책이라면,

과감하게 처분해 버리는 장서술이 필요하다.

우선순위에서 매번 밀려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관심도와 신선도에서 밀려난다는 의미이다.

지금 당장 꼭(here right now) 필요한 책들이라도 양조절에 실패하게 되면,

순위에서 밀려나게 될것이고,

그 밀려난게 쌓이다 보면,

순환이 이루어지지 못해 정체와 적체가 반복되어 과부하가 걸리고 말것이다.

 

우리는 책을 많이 소장하는 것만으로 지식 또한 쌓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책을 소장하기만 해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읽고 체득하여 내것으로 만들어야 지식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 올바른 책읽기는 독서도 장서도 아니다.

독서와 장서의 적절한 조화가 근간이 되어야 할 것 같고,

그보다 우선하여, 책에서 배운 것을 머리로 알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는 깨달음과 실행력이 병행하여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난 책을 읽었다는 행위만으로 만족하는 독서가는 아니었나?

책을 소장하고 쌓아놓는 것으로 뿌듯해 하는 보여주기 위한 소장가는 아니었나?

책은 물론 보이지 않는 정신적 소산을 표현해 내는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깨달음이 있고난 연후래야 행동에 변화가 생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행동의 변화를 가지고 깨달음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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