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반야심경을 쓴다.
소리내어 읽기도 하지만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흥얼거림은 소리를 잃는다.
제목까지 쓰고 270자를 채워갈 무렵이면
뭔가 뿌듯한듯 하면서 공허하기도 하다.
반야심경에는 없을 무無 자가 21번 나오고,
빌 공空 자가 6번,
아닐 불不 자가 8번 나온다.
삶은 결국 별것 없고,
텅빈 것 같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부정의 언어 같지만,
지금 여기 내가 숨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오롯이 느낄 때에야 그런 부정을 마음 깊숙이 담아 둘 수가 있다.
요즘 읽은 책의 흐름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시리즈 4권이랑,
'총알 개미 시리즈'를 읽다가 돈아까워 죽는 줄 알았고,
내용도 내용이지만,
요렇게 성근 책을 이~렇게 비싼 가격에 팔다니 하고 한번 툴툴거려주시고,
'이정호의 새롭게 보는 사주이야기'를 읽다가 육친의 내용이 없어 중간에 어버버버 하다가 집어던지고,
이 책 '명리명강'을 집어들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사주 명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 봐도 좋겠고,
수양을 하는 사람이 봐도 좋겠다.
이 책이 좋았던 것은 무조건 외우라고 하는게 아니라,
원리를 설명해주고 외우라고 하고,
사주에 적용하면 신기할 정도로 잘 맞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는 것(180쪽, 신살)은 언급하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사주 명리 관련 책을 읽으려고 시도했던 사람이라면 경험해봤을텐데,
저자가 육친에 자신이 없으면 육친은 언급하지 않고 지나가고,
12운성이 자신 없으면 12운성은 공부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이 글을 읽은 지인이 육친이나 12운성에 자신 없는 사람은 없다고함.
인정을 하지 않는 분위기이고, 그러다 보니까 깊이 연구하지 않는다고 함.)
그런데 명리에서 육친과 12운성이 명확하지 않으면 사주를 풀어나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철학을 전공하신 분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주를 누구에게 사사하신게 아니라 스스로 독학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책들과는 접근 방법이 좀 달랐고,
그런 것들이 내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사주 명리와 윤회를 연결시켜 얘기하는 것이 특히 흥미로웠는데,
부분은 전체를 대표한다는 프랙탈이나 역사의 반복 현상 이 모두가 되풀이이고 어찌보면 윤회이니까 말이다.
이런 당부도 위로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명리를 익히는 독자들은 명심하길 바란다. 명리를 알면 알수록 인과응보의 고리가 아주 질기고 처절하게 얽혀 있음을 깨닫곤 한다. 그러니 명리를 통해 좋은 것을 찾아가고 나쁜 것을 피해갈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여 수행으로 극복해야 한다. 내 운명이 이 삶을 택했다면 그것을 아름답게 승화시켜야 다음 생에서 현재의 삶을 반복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181쪽)
아들이 그렇게 되고 가장 괴로웠던 건 사람들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만 하는 것이었다.
상황은 이미 벌어졌는데,
이미 벌어진 이 상황들을 내 잘못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접어서 한쪽으로 치우고 할 순 없었다.
부정하는 순간 이 땅에서 존재했던 것마저 잊혀질까봐 힘들었다.
수행으로 극복하든지 승화를 시키든지,
일단은 인정을 하고 받아들이는 것(지금 여기 내가 숨쉬고 있을 뿐이라는 것)에서 출발을 할테니까 말이다.
이생에서 비극은 이미 경험했고,
다음 생에서 이 생에서의 삶을 반복한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간혹 다른 누군가의 사주를 봐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사주 명리'에 매달리냐고 하는데,
내가 사주명리를 공부하는 이유는 마음의 평수를 좀 넓힐 요량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서 쉴 곳이 없다.
지금까지 2번을 읽었고 앞으로 여러번 더 읽을 것이다.
마음의 평수를 넓힐 요량으로,
내지는 삶에 위로가 필요할때,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