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의 두 번째 작품집이다. 첫 단편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읽어서 더 기대하며 읽은 그의 두 번째 책이다. 책에 나오는 첫 번째 소설인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부터 역시 테드 창이구나라는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예전에 <백 투 더퓨처>를 보며 진짜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면 과거로의 여행이 현재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했었다.
이야기에 하산이라는 청년이 나온다. 미래로 가서 부유하게 살고 있는 나이 든 하산을 만나는데 나이 든 하산은 젊은 하산에게 자신도 젊었을 때 나이 든 나 자신을 방문했다고 이야기한다. 즉, 현재 하산이 미래 하산을 만나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미래 하산에게 기억으로 업데이트되는 것이다. 젊은 하산은 나이 든 하산으로부터 여러 조언을 듣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고 조언 덕분에 많은 난관을 헤치게 된다. 또 다른 청년 아지브도 미래로 가서 미래의 자신을 만난다. 그런데 20년 뒤에도 여전히 자신은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즉,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집 열쇠도 20년 전이랑 똑같았다. 집에 들어가 금고를 열어보니 놀랍게도 금화가 가득했다. 젊은 아지브는 그 금화를 가지고 현재로 돌아간다. 그리고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데 어느 날 아내가 납치되고 그는 가진 전 재산을 갖다 바쳐 아내를 돌려받는다. 그다음부터 그는 미래에 젊은 자신이 훔쳐 갈 돈을 금고에 차곡차곡 모아가게 되는 것이다.
시간 여행에는 원칙이 있었는데 바로 일어난 일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시간 이동을 하며 현재와 미래의 내가 만나는 것이 상호작용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 없고 다만 회개가 있고 속죄가 있고 용서가 있으며 단지 그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도 설정 자체가 기발하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디지언트는 로봇 애완동물인데 가상 세계에 아바타도 있다. 동물처럼 긍정 강화를 통해 학습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디지언트를 빠르게 성장시키려고 밤에 재우지 않고 성장 속도를 높이기도 한다. 그런데 살아있는 애완동물처럼 디지언트도 유기되어 보호소에서 관리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잠깐 놀다가 싫증 나면 버리는 것이다. 디지언트는 학습을 통하여 언어를 습득하며 사고가 가능해지게 된다. 디지언트들은 자기 주인이 자신을 정지하는 것이 싫다는 표현도 하기에 이른다. 디지언트들은 감정을 가지고 고통도 느끼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디지언트들을 섹스 목적으로 이용하고 싶어 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여 이윤을 남기려는 것이었다. 이들은 디지언트를 2년 동안 훈련시킬 계획이라고 디지언트 유저 그룹에 제안하기도 한다. 합의되지 않은 성적 행위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지침도 알려준다.
인공지능 기술로 인간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판단하는 로봇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영화처럼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지는 않겠지만 사람과 유사한 로봇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 로봇은 디지언트처럼 사람과 우정을 맺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위험한 상황에서 인간을 도와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기서 생각을 그치지 않는다. 항상 모든 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돈을 벌려고 한다. 특히, 성적인 산업은 탐욕적이고 노골적으로 접근한다. 이러한 사람의 본성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 담겨 있다.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는 아기를 기른 부모라면 한 번은 생각해봄직한 기계이다. 이 기계에 달린 두 팔은 평소에는 아기를 흔들어주는 요람 형태를 위한다. 그리고 지정해둔 시간이 되면 고무젖꼭지를 물려 분유를 주고 자장가를 재생하는 기능도 있다. 아래에 달린 페달을 밟으면 고무 기저귀에 연결된 호스에서 오물을 빨아들여 요강을 배출시킨다. 즉, 아기를 먹이고 재울 뿐만 아니라 대소변까지 처리해주는 기계식 자동 보모인 것이다. 모든 부모가 갖고 싶은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인간의 모든 기억을 저장하는 장치인 리멤에 대한 이야기이다. 리멤은 1년 전에 갔던 그 식당이라고 말하면 그 당시의 영상을 불러온다. 이 모든 기억 자료를 라이프로그라고 하는데 소송에서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낼 때 매우 유용했다. 그러나 인간이 도구를 항상 옳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부부 관계가 굳건하다면 리멤은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자기는 옳고 배우자는 틀렸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어 하는 유형이라면, 리멤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그 결혼 생활은 삐끗거리겠죠."
즉, 리멤은 상대의 흠을 기억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다. 정확한 기억이 잃으면 누가 옳고 그른지 더 이상 싸우지 않을 것처럼 보이나 관계라는 것이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정확한 사실은 뒷전으로 밀러 난 채 감정적인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왜 의심을 하고 과거 기억을 끄집어 내려고 하느냐고 서로 달려들 것이 뻔하다. 모든 것이 기억되고 저장된다면 세상은 더 각박해지고 사람은 더 피곤해질 것이다. 지금처럼 적당히 잊히고 적당히 기억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고 관계와 사회에도 오히려 긍정적이다.
물론, 리멤을 통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이 얼마나 왜곡되고 편집되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오랜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친구의 기억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고 놀랄 때가 있다. 인간의 기억은 그만큼 믿을만하지 못하고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리멤 같은 장치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믿을만하지 못한 지는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하여 알려진 상태이다.
이 외에도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소설 하나하나가 특색 있고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