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시절이었다.
길은 두갈래였고 길 위의 사람들은 모두 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단호했고 열정적이었으며 헌신적이었고, 젊었다.
그 시절 내 책꽂이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는 구호같은 제목의 소설들과 '분석'과 '시대'에 대한 책들이 꽂혀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책꽂이 어두운 자리에 꽂혀 있던 <깊은 슬픔>을 꺼내 읽었다.
가끔 몇 개의 문장을 소리내어 읽기도 했고, 은서가 이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책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제까지 같이 술을 마신 선배는 무슨 이유인지 차를 몰고 목숨을 끊었고, 군대에 간 선배는 탱크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으며, 전부터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까마득한 선배도 약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들은 술에 취해 주먹다짐을 하고 어두운 골목에 주저앉아 흐느끼거나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대부분은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참 이상한 시절이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라는 긴 제목의 소설을 나는 굳이 피했다. 여기저기서 눈에띌 때마다 고개를 돌리고 책이 출간 되었을 때도 나는 며칠을 버텼다. 그리고 책을 사자마자 내가 읽은 것은 작가의 말이었다. 작가의 말을 읽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며칠을 펼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루만에 읽어버렸다.
읽는 내내 나는 슬펐다. 미루와 단의 죽음이 슬펐고 상실의 아픔을 견디어야하는 명서와 윤이 안타까웠고 끝내 윤교수가 세상에서 사라진 것도 슬펐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이 청춘이 인생의 맨 끝에 놓이게 된 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명서의 말처럼 누군가가 내게 약속해주었다면, 의미없는 일은 없다고. 언젠가는 다른 것들이 온다고 말해줬다면 슬프지 않았을까? 윤교수가 강의실에서 젊은 크리스토프들을 향해 말했듯이 누군가 우리에게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히 여기라고 말해주었다면, 그들은 청춘을 지나 아직도 살아있을까?
나는 알 수가 없다.
"살아가는 게 슬픈 생각이 든다. 슬퍼도 당신은 그에 버금가는 힘을 지녔으면 한다."
십년도 훨씬 전부터 지금까지 이 말을 했었나 보다. 발그레한 볼로 웃으며 뛰어가는 청춘의 뒷모습을 보며 부디 그러기를 바래왔나 보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갖가지의 슬픈 마음들이 변화의 힘이라고 했다.
이제 그 말을 믿고 싶어진다. 그러면 조금은 사랑에 가까워지며 낙관에 한쪽 손가락이 가닿을 수 있으리라.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의 고단한 청춘들에게도 위로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