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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읖님의 서재
  • 수녀원 이야기
  • 깊은굴쥐
  • 13,500원 (10%750)
  • 2021-07-26
  • : 430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제목이 심플해서 맘에 들었다.


수녀원 이야기라니. 


종교는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다. 


무엇보다 신앙심 하나로 긴 역사를 갖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는 자체도 흥미롭지만, 


수녀들의 이야기는 흔히 다루지 않는 소재라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종교에 귀의한 이들의 삶은 나와는 조금은 다른 양상 일 것이나,  그들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같고 다른지 궁금했다.


특히, 소제목을 참 잘도 뽑았다. 


춤과 반려동물과 패션을 금지해도 마음의 불꽃은 꺼지지 않아 


깊은 굴쥐의 '수녀원이야기'


중세 수녀들의 이야기가 춤과 반려동물, 패션 얘기 라니 너무너무 흥미롭잖아!


나이도, 사는 시대는 물론이고, 얼굴 조차 모르는 그들에게 막연한 동질감이 들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들이 가진 마음의 불꽃은 무엇일까. 





왜 당연히 저자가 수녀님이거나, 적어도 종교에 관련된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지.


나의 편견이 고스란히 드러난 첫 페이지.


소프트웨어 개발외주업에서 동질감을 느꼈다가 본업 외에도 이렇게 역사 관련 책 까지 저술 (심지어 그림도 직접 그리시고)하다니 동질감 취소.


읽으면 읽을수록 도대체 이런 디테일한 내용들은 전문가가 아닌 이상에야 어떻게 아시게 된걸까 의문이다.


혹시 전생에 중세시대 수녀님이셨다거나 그런게 아닐까.


아니 우리나라엔 천재가 참 많아. 다들 숨겨둔 재능 쯤 가지고 사는 재야의 고수 인걸까.




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으로 콜렛, 아델, 이디스, 마틸다 


책 도입부에 그려진 귀염뽀짝 수녀님들이다.


첫 챕터에서 이 수녀님들이 수녀원에 들어오게 된 사연들이 소개된다.


수녀를 주님의 신부라고 표현을 하는데, 나는 당연히 남다른 신앙심으로 종교에 귀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토록 다양한 이유로 수녀가 되는지 몰랐다. 


마더 아그네스와 책임수녀님의 대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저 아이들은 이미 주님의 신부로 남은 인생 전부를 바치겠다고 서약했는데 이 이상의 고귀한 신앙심이 어디 있겠어요?" 


"...신앙심이 있어서 평생을 서약한 것이 아니라 평생을 서약했기에 신앙심이 필요하달까나."


깊은굴쥐의 '수녀원이야기' 중 (22p)


이 대화 이후에 각자의 사연들이 소개되는데, 때문에 이 뒤에 나오는 각 에피소드들 마다 우리가 수녀라면 무릇 이럴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을 와장창 깨주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아주 먼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요즘 것들은 예의가 없고, 글러먹었다고 표현했듯, 아무리 중세시대의 수녀님들이라도 그들 또한 수녀이기 전에 평범한 여자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책장을 넘겨가면서 선명해졌고,


덕분에 '종교'나 '수녀'의 이미지가 주었던 등장인물과 나의 간극이 점점 좁혀가며 이야기의 배경이 중세라는 사실은 반대로 흐려져갔다. 


(이건 아마 작가님의 재치가 더해져서 그런듯ㅋㅋ 깨알 웃음 코드들이 많아서 시트콤 보는 기분임) 


생각지도 못할 만큼 아주 재기발랄하다 못해 익살스러운 수녀님들은 종종 나의 중고등학생 때를 떠오르게 했다. (tmi. 여중여고 출신)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하려고 잔꾀를 부리고(복장규정 어기기,땡땡이 치기), 혼도 나지만 절대 기죽지 않고 명랑하고 엉뚱한 그들을 보면 웃음 밖에 안나온다.




그렇다고 마냥 웃기기만 한 건 아니다.


역사 만화인 만큼 굵직한 역사적 사실도 함께 더해져있고, 가끔 뼈를 때리는 일침(?)들도 녹아있다.


(가장 뼈 아픈 얘기는 그 시대의 여성들이 겪었던 차별이 몇 백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것이다. - 여성의 사제 서품이 불허하다는 사실 포함 -)




아래 내용은 그 이야기들 중 하나이다.



(본문 195 page에서 발췌)


레이디 에블린(수녀복을 입지 않은 노란 머리 캐릭터, 마지막 컷 왼쪽에서 두번째)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설정 상 레이디 에블린은 원래 수녀이지만, 집안문제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수녀로만 자라왔으니 세상 물정 모르는 그를 위해 수녀원에서 신부수업을 받게 된다.  


(그 신부수업 이라 함은 귀부인이 갖춰야 할 덕목들인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로맨스판타지 속 귀부인의 우아하고 품위 있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길 권하며 생략ㅋㅋㅋ)



앞서 나온 온갖 신부수업의 이야기의 마지막은 우리의 마더 아그네스 님의 일침이다.


"너희는 결혼의 화려함에 빠져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빠뜨리고 있어!" 



바로 이혼이다.


모두 알다시피 교회에서 신의 이름으로 하는 결혼은 신성하므로 이혼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결혼 이야기와 함께 이혼 이야기를 다루는 건 지극히 현실적이다.


남은 평생을 함께 하자 약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신중해야 할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분명있기 마련이다.


그 예로, 배우자의 외도, 가정폭력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그럼 정말 어떤 경우에도 이혼이 되지 않는걸까?



죽기전까지 살아야한다니까 좌절하는게 아니고ㅋㅋㅋㅋ맞기 전에 때려야지, 죽여야지 하는게 너무 유쾌함ㅋㅋㅋㅋ


몇몇 경우에는 교회에서 별거 명령을 내리기도 하나, 그럴 경우 정식이혼이 아님으로 평생 수절해야 한다.


그럼 진짜 이혼 할 수 있는 방법은?



(꼭지 제목 = '우리는 해답을 찾아낼 것이다')



1. 배우자가 친족관계인지 경우 : 가까운 혈족간의 결혼은 교회법상 인정이 안됨  


2. 성(性)적 문제를 가진 경우 : 책에서는 '성불구' 혹은 '발기불능'으로 표현함 


3. 그 외 : 결혼 후 서로 성관계가 없거나 배우자가 결혼전 수도서원을 했을 경우



(2번의 경우 증명방법이 아주 기가 막히다. 촙햄의 토머스라는 신학자가 개발한 판별법을 따랐다고 함... 자세한 내용 역시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



tmi. 레이디 에블린은 마더 아그네스의 동생이다.


워낙 앞에 기상천외한 얘기가 쏟아져서 혼을 쏙 빼놓더니, 이런 마더 아그네스의 일침이란.


명심해야 할 건 네가 어떤 선택을  하건 


그게 네가 평생을 불행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야


깊은굴쥐의 '수녀원이야기' 중


결혼의 현실적인 단면을 무시무시하게 알려줘놓고 이런 얘기라니.


너무 스윗해서 내가 감동받았다.



옛날에 읽었던 먼나라 이웃나라라던가 만화 삼국지, '~해서 딱좋아' 시리즈 이후 이런 식의 만화는 오랜만이라 새롭고 종종 위로도 받고 무엇보다 재밌었다. 이번 수녀원 이야기를 시작으로 비슷한 시리즈의 책을 계속 내줘도 좋을 것 같다ㅎㅎ 유익한데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나!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도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둘 다 아니더라도 추천한다. 




기억에 남는 작가의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의 지면을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으로 채울 수 있게 나눠야 한다는 것이죠. 그 이유에는 우리를 위해서 인 것도 있지만 후세의 역사 마니아들이 이런 고통(역사에 남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망상해야 하는)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함도 있는 거죠.


깊은굴쥐의 '수녀원이야기' 중 (293p)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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