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형 안드로이드,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은 진부해지기 쉬운 소재이다. 하지만 『큔, 아름다운 곡선』은 감정을 가진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활용해 조건 없는 이해로 쌓아 올려진 사랑을 보여준다.
김규림 작가는 로봇이 감정적으로 지치지 않는다는 점을 끊임없는 관용으로 활용한다. 큔은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제이를 미워하거나 확대해석하지 않는다. 자신의 호스트인 제이가 허용하는 것들을 하며 제이의 곁에 가만히 머무른다. 큔은 호박죽이 좋은지 브로콜리감자죽이 좋은지, 오늘 퇴근은 몇 시에 하는지 물으며 제이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별도 달도 따준다는 거창한 표현이 없어도 되는 것, 인생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옆에 있는 것, 변화하는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것이 사랑임을 안드로이드 큔을 보며 제이도, 독자도 느끼게 된다.
큔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지킬 자신이 없다는 제이에게 인간형 안드로이드 남편 휴고와 사는 정원은 말한다. "당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걸 결정하고 결론지어야 한다고 생각했군요. 그의 감정까지 말이죠."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인 큔이 제이를 사랑하는 건 큔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제이는 마치 자신이 신인 것처럼 사랑의 시작과 마지막을 모두 자신이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읽는 우리도 큔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일상에서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 않은가?
인간이 인간과 사랑을 하며 상대를 속단하는 이야기를 볼 때 우리는 '그 인물'의 탓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보며 독자는 자연스레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 인물에 감정이입하게 되고, 안드로이드를 더 완벽한 타자로 느끼게 된다. 그때 정원의 말을 들으며 제이처럼 허가 찔린 독자는 자연스레 '제이'가 아닌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다.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은 보고, 만지고, 들리고, 느끼는 전부를 사랑한다는 의미이니까.- P95
저는 당신이 그린 선의 뒤를 따르는 선이에요. 그렇지만 제 선은 삐뚤빼뚤하죠. 당신이 오른쪽으로 휘어질 줄 모르고 뛰어가다 속도를 제때 늦추지 못하고 당신의 선을 놓치기도 해요. 그래서, 당신이 말해줬으면 해요. 당신의 감정이 어디로 휘어지는, 얼마만큼의 속도로 달려가는지. 그러면 저는 당신의 선을 따라 아름다운 선을 그릴 수 있어요. 꽤 근사한 섬광을 일으킬 수 있겠죠. 당신이 기회를 준다면요. 그러니,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가르쳐줘요.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건지.- P109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건 계속해서 변화하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기 때문일 거예요.- P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