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벤트로 책을 제공받아 적는 감상임을 밝힙니다.
평범한 30대 남성의, 날것의 시선으로 들여다 보는 젠더 갈등 이야기
언젠가부터 젠더 갈등은 대한민국 사회의 큰 화두로 떠올랐다. 사회적으로 무슨 일만 터지면 성별로 나누어져 서로 공격하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페미니즘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누군가한테는 여성 인권의 신장을 위한 지상 최고의 가치이며, 누군가한테는 사회의 암적 존재를 키워내는 정신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후자와 같은 생각은 굉장히 극단적이라는 점에서 지양해야겠지만, 저자와 마찬가지로 30대 초반 남성인 필자의 경험상 주변의 또래 남성 친구들은 대체로 페미니즘에 부정적이었던 것 같다. 대놓고 비하까지는 안 할지라도 굳이 우호적으로 볼 이유도 없는 그런 것?
솔직히 밝히자면 필자 역시 페미니즘에 그리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단순하게는 트위터 등지에서 대놓고 남성혐오를 하는 레디컬 페미들에대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되는 부분이 있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필자가 몇 권의 소위 페미니즘 서적을 통해 들여다 본 페미니즘의 논리가 굉장히 폐쇄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남성을 기득권으로, 여성을 약자로 규정하며 오직 여성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만' 역설하는 페미니즘은 일부 소재에서 유효한 지점이 있을지언정, 복잡한 세상을 오직 하나의 투쟁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모순들을 그저 '기득권의 저향'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는 편협합을 보여준다. 페미니즘이 사회를 바라보는 기능론적 관점을 도외시하고 오직 갈등론적 관점에만 천착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필자가 공감하는 이유다.
저자는 <82년생 김지영>, 여성할당제, 성매매, 설거지론 등 젠더갈등에 얽힌 주요 소재에 대한 스스로의 의견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친페미, 반페미를 막론하고 젠더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을 많이 나왔고 지금도 나오고 있으며, 위의 소재들은 이제 지겹다 못해 사골과 같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들에게 던지는 치사하고 쪼잔한 질문>을 한 번은 읽어보는 걸 추천하는 것은 저자의 기본 관점이 이론이나 정치가 아닌 '진화'나 '번식'과 같은 인간 본성에 관한 부분에 방점을 두고 있으며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성찰해 볼 지점이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저자가 지적하듯, <82년생 김지영> 등으로 촉발된 페미니즘 열풍 및 젠더 갈등은 여성이 그간 겪어야 했던 불행을 재조명하고 남성의 가해자성을 부각시킨다는 점, 그리고 그 반작용으로 일부 남성들 역시 군대 등의 스스로의 불행을 강조하며 역차별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불행 배틀'의 성격이 다분하다. 사실 이런 불행 배틀은 저자의 말마따나 일률적 비교가 굉장히 곤란하다. 임신, 군대, 경력단절 이니 뭐니 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바도 다른 것이고, 애초에 딱 통일된 지표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고와닿다 보니 남의 고통에 잘 공감하기 어렵고 그런 지점에서 겪은 감정적 서운함이 등이 쌓여서 지금의 불행 배틀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싶다. 불행 배틀의 끝은 결국 참가자 모두의 불행일 뿐일 것이다.
저자는 많은 이들이 겪는 내면적 불행의 근원을 오랜 세월 동안 구조적, 문화적으로 고착화된 전통적 성역할과 현대사회의 현실적 여건의 불일치에서 찾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강함과 진취성, 좀 더 현대적으로는 막강한 경제력 등이 남성에게 기대되는 덕목이며 남성은 평균적으로 이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대다수의 남성들은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없다. 반대로 조신함과 온화함, 순결함 등이 여성에게 기대되는 전통적인 덕목이었지만 이는 능력있는 여성들의 진취를 막는 기제로도 작용하였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문화적 코드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강해지는 듯 하다.
전통적 성역할의 고착화를 기본적으로 부정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전통적인 여성성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와 일견 통하는 바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여러 진화의 끝에 선택된 남성과 여성의 유전적 본성을 무시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신체적으로 강인하다는 특성, 남성은 어디서나 비교적 쉽게 스스로의 씨를 뿌리고 다닐 수 있는 반면, 여성의 난자는 그 생성에 남성에 비해 제약이 크며 임신 및 출산이 몸에 부담이 많이 된다는 특성. 그러다 보니 남성들은 자연적으로 속칭 상위 티어가 아니면 번식하지 못 하고 도태되어 왔으며 그런 오랜 세월의 일련의 과정을 거쳐 타고난 남성과 여성의 본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일례로 저자는 주식 투자 스타일 등의 통계 자료를 인용하며, 남성이 여성에 비해 좀 더 위험선호적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보다 심층적으로는,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 등을 근거로 고안되는 여성할당제가 이런 성별 간 위험 선호도 차이 등의 변수를 누락하고 입안될 경우의 피해를 경고하기도 한다. 단순히 기업이 여성을 차별해서가 아닌, 대기업 임원까지 가는 여정에 있어서 겪어야 할 수많은 위험을 감당하고자 하는 의지의 성별 간 차이가 대기업 내 낮은 여성 임원 비율의 원인일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순힌 수치의 단순 비교를 통한 차별의 성토가 아닌, 보다 근원적인 성별 간 차이를 들여다 보자는 것이다.
저자가 제기하는 성별 간 차이 중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남성의 성욕이 여성의 그것보다 훨씬 강하다'라는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연애, 소개팅 등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왔을 때 남자들은 기꺼이 더 많은 금전적 부담을 지고자 하며, 거시적으로는 남성이 여성보다 위험선호적이 될 수 있는 이유 중 '높은 성취를 이루어 아름다운 여성들을 거느리자'라는 유전적 본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일본의 버블 붕괴로 시작된 불경기에 등장한 소위 초식남들이 사회적 성취에 무관심해진 이유 역시 결혼 시장에서 보다 나은 매력을 표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물론 남성이 성욕만으로 움직이는 존재는 당연히 아니겠지만, 성욕이 인간 보편의 욕구라는 점에서 성욕이라는 누군가한테는 조금 불쾌할 수 있는 지점을 과감하게 집어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남성의 성욕이 여성의 그것에 비해 훨씬 강하며 행동 동기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 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의 성욕을 일견 '무절제한 것'으로 간주하며 적대시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n번방 사건 등으로부터 더욱 강력하게 촉발된 '모든 남성은 잠재적 성범죄 가해자다'라는 슬로건 역시 '남성의 무절제한 성욕'애 대한 혐오가 밑바탕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통념상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보다 적극적인 행동은 보통 남자가 취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서로 오해하고 상처를 주는 일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데이트 폭력 등으로 불리는 범죄 행위야 당연히 엄격히 근절되어야 하지만, 지극히 개인사적인 부분이 법으로 잘못 걸려서 처벌될 가능성 역시 과거에 비해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 비해 경제력을 갖추기도 어렵고 이성을 유혹하는 과정에서의 리스크가 커진 상황. 이런 속에서 나온 게 '설거지론'이다. 저자는 자신이 과거 출연한 바 있는 '나는 솔로다' 프로그램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고백 등의 과감한 리액션을 취하지 않고 포기해버리는, 다시 말해 가능성 낮은 이성에게 배팅하지 않는 남성의 비율이 늘어났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를 남성이 전통적 성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점에서 일견 긍정적으로 보는 듯 하다. 분명 그런 지점도 있을 것이다. 다만 성욕이 그토록 강한 남성이 이성을 유혹하고 결혼에 골인하는 것에 이전처럼 적극적이지 않다면 성욕을 풀 대체안이 필요한데, 그 중 가장 흔하게 거론되는 사회적 소재가 성매매 일 것이다. 저자는 성매매를 바라보는 몇 가지 관점을 소개하며 성매매 합법화가 남성과 여성의 행복의 총량을 증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핸 논한다. 필자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본 지점인데, 성매매 시장을 건조하게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본 것이 좋았다. 아무래도 '성'에 대한 과도한 신성시 및 보수적 관점이 개입되면 사안을 제대로 보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다만, 저자는 성매매 합법화 필요성에 대해 모르겠다고 결론을 내린다. 솔직히 고백하면 필자는 과거에는 성매매는 무조건 나쁜 것으로 바라보았지만, 현재는 성에 대한 터부시를 줄여가면서 양성화를 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고 보고 있다. 단순히 남성의 성욕 해소를 위한 차원뿐만 아니라 여러 사정으로 인해 그 쪽에 종사하는 이에 대해 보다 제대로 된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양성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성문화로는 성진국이라 불릴 만큼 개방적인 일본과 달리, 합법적인 연애 및 결혼이라는 루트 이외의 성욕 해소를 죄악시하는 한국적 풍토에서는 성욕 해소를 위한 루트를 찾지 못한 남성들이 설거지론에 잉태된 기존 관념에서의 탈피를 이루지 못하고 회귀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 필자는 이 지점은 조금 회의적이다. 일단 설거지론의 근원을 따져 보자면 '스스로의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성취를 이루지 못한 비루한 자신에 대한 분노'가 일정한 부분을 차지한다 할지라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보다 스스로의 삶의 자유를 더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의 변화라던가 그 외 여러 가지의 요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가 꼭 성매매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도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성인웹툰, 성인소설 등 철저히 성욕해소에 초점을 둔 컨텐츠들이 발전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의 인식에서는 음지 문화일지 어떨지 모르지만 탑툰, 노벨피아 등의 약진에서 알 수 있듯 그 시장성은 꾸준히 증명되고 있다. 물론 저자가 남성과 여성의 본성적 차이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하다 보니 성욕에 초점을 둔 것이겠지만, 설거지론에서 시작된 태동이 단순히 성욕 해소의 대체안 모색 실패라는 이유로 좌초될 것이라는 건 남성을 너무 일률적으로 분석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와 별개로 남성의 무분별한 성욕 억제 등의 여러 미사여구를 통해 러브돌 등의 도구 수입까지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의 행태는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한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통해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성의 성욕이 강한지 어떤지를 떠나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는데, 사회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이념을 가진 많은 이들은 '강제로라도 상대를 바꿔야 한다'라는 생각에 경도된 경우가 많다. 페미니스트가 사실 딱 그런 경우의 표본이 아닐까 싶다.
여러 논의 끝에 저자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여자던 남자던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는 페미니스트가 될 이유가 크게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분명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남녀의 사고 방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사람에게 각인된 본성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며, 동시에 누군가에 대한 증오나 미움은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이 요지다. 페미니즘이 근본적으로 기득권으로 상정한 남성이라는 집단에 대한 적개심을 기반으로 움직이며 이 지점이 결국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필자는 완벽하게 동의한다. 다만, 남녀의 본성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연애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인용하여 논리를 전개하는데, 필자의 연애 경험이 일천해서인지 모르지만 남녀의 사고방식이 변화해감에 따라 사회 통념상으로 굳어진 연애 관습도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은 근 100년간 아마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국가 중 하나일 것이며, 이 속칭 젠더 갈등이라는 게 부상한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 여러 과정을 겪으며 소위 남성성, 여성성 이라는 게 형성되어 왔듯 지금 그 규범이 나름대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녀의 본성에 초점을 둔 관점도 하나의 의견으로서 당연히 필요하고 성찰할 지점이 있지만, 지나치게 그 곳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결국 '어차피 남자는~, 어차피 여자는~'와 같은 구태적 주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이런 모든 논의 끝에 결국 젠더 갈등에 몰입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갈등 장사꾼의 배를 불려줄 뿐이고, 나가서 사랑받고 젊음을 즐기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본인 역시 이 젠더 갈등을 이용해 돈을 번 수혜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꼭 젠더 갈등만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종류이건 갈등 및 증오에만 몰입해서 좋을 것은 당연히 없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젠더 갈등은 사회에 엄연힌 존재하는 현상이고 자신의 일상과 연결될 수도 있는 사안인 만큼 관심을 끈을 놓지 않는 것은 필요하다 생각하며, 그렇기에 저자 스스로가 제목에서 '치사하고 쪼잔하다'고 말한 질문들을 던지는 이 책 역시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저자의 모든 논지에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양 성별의 솔직한 의견을 담은 책들이 많이 나와서 서로의 보다 나은 이해를 도울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여 본다.
다시금 좋은 책을 기꺼이 보내주신 저자 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