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저자가 사회 도처에 있는 남성 중심적 권력 구조를 비판하며 기존 남성성으로부터의 탈각 및 남성들의 페미니즘 운동 연대를 호소하는 에세이집이다.
여성들이 취업상에서 겪는 차별, 최근 있었던 정치인 성추문에서 행해진 2차 가해, 여성들의 높아진 의식 수준에 비해 더딘 사회 변화로 인한 젊은 여성들의 자살율 증가 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특히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그 자체로 권력이다' 및 '피해자에게 실명/얼굴을 공개할 것을 강요하며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 피해자들이 더욱 나서기 어렵게 만든다'와 같은 저자의 지적은 내가 잘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라 공부가 되었다.
다만 동시에 저자를 통하여 소위 페미니스트들의 한계도 볼 수 있었다. 페미니즘 에세이를 표방해서일까? 상당히 폭넓은 최근 사회 이슈를 다루면서 그 모든 것을 남성 중심적 권력 구조 및 여성혐오적 관점으로만 해석하려 하는데 분명 그게 맞는 부분도 있겠지만, 리얼돌, 게임, 개인방송 등 제법 많은 부분에서 지나치게 경직된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특히 '리얼돌 자체의 존재 양태가 남성 중심의 왜곡된 성 관념 및 강간 문화의 체현'이기에 리얼돌 수입을 반대한다는 저자의 논지는 궁극적으로 현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문화 검열적 태도와 직결되는 부분이기에 수용하기 어려웠다. 형태를 막론하고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으며 혼자 즐기는 요소가 검열의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건 그리 좋은 사고방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본인이 페미니스트로서는 출신성분상 약점(?)을 가지는 남성이기에, 남성들에게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에 맞추어 특권을 버리고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동참할 것을 권한다. 그런데 저자는 20대 남성이 페미니즘적 가치를 수용하고 있다는 긍정적 측면을 조금씩 말하면서도, 자꾸만 '나는 아니야'라는 식으로 '잠재적 가해자'로서의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개탄스럽다는 둥의 서술을 반복한다. 저자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면 '속죄 의식'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속죄가 남성으로서의 스스로를 비판하고 죄책감에서 기인한 조신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는 잣대를 정하고 선을 긋지 말고 좀 더 많은 남자 페미니스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결론을 낸다. 그런데 젊은 남성이 많이 즐기는 게임, 야동, 인터넷 방송 등의 요소를 전부 '여성 혐오'라고 싸잡아서 비판하고 젊은 남성이 아직 사회 경험이 없어서 여성 차별을 보기 어려웠고 '일부' 극렬 페미니스트의 인터넷 공격을 직격으로 받을 때라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 식의 다분히 얕보는(?) 느낌의 글을 쓰면서 페미니스트가 되는 데 선을 긋고 싶지 않다는 것은 모순 아닐까?
전체적으로 필자가 잘 몰랐던 여러 이슈 및 페미니스트의 생각을 아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동시에 모든 것을 구조적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성차별에 대해 아직 큰 부채 의식이 없을 젊은 남성에게까지 '일단 반성해'라는 식의 속죄를 강요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사고방식과 화법의 한계도 잘 볼 수 있었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 준동을 부리는 속칭 꼴페미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그저 일부의 활동' 뿐이라고 넘기거나 아예 언급도 하지 않는 등 스스로가 속한 진영에 대한 반성을 전혀 볼 수 없다는 다른 페미니즘 서적과의 공통점을 여기서도 볼 수 있어서 아쉬웠다. 20대 남성이 페미니즘적 가치를 어느 정도 내면화한 세대라는 걸 인정하는데, 20대 남성이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가진다?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메갈리안에 빚을 졌는데 그 메갈이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오염됬다? 이런 건 최소한 홍보 차원에 있어서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분명히 책임이 있을 텐데 이런 점에서 그저 남성 권력 구조의 탓만 하는 것은 확실히 실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