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칼부림 사건, 정유정 살인 사건, 학부모 민원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교사... 흉흉한 범죄 뉴스가 끊이지 않는 요즈음 이 책을 읽어서인지, 나쁜 행동을 하면 업보처럼 얼굴에 나타나게 되는 <푸른 살>의 설정이 현실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소설에서, 외계기생생물 푸른살에 의해 인류는 낯선 사람을 보아도 그 사람이 착한지 나쁜지 단번에 알게 됩니다. 흉악범죄가 뉴스를 장식하는 요즈음, 나쁜 사람일수록 징그러운 푸른 살이 크게 달려서 미리 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 알아서 우리가 피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것은 모두의 공감을 사기도 해야 튀어나오는 말 같습니다. 이태제 작가는 작가의 말에 어떻게 이런 소재를 구상하게 되었는지 적어두었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낙인 같은 게 찍혀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하지만 그런 사회가 정말 유토피아일지,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스포일러 주의)이 책의 최대 빌런 '아이버스터'는 수억 명의 인류를 학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버스터는 이 책 속의 어떤 인물보다도 인류를 가장 사랑했던 인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를 사랑했던만큼 인류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사상 최악의 빌런이 된 그가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습니다.
300쪽 분량으로 매우 컴팩트하게 상당히 많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너무 전개가 빠르거나 생략이 많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말을 보니 요즘 소설 트렌드는 속도감과 가독성이라는 점을 고려해 부러 생략이 된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책이 영상화가 된다면 원래는 있었을 인물의 서사를 대부분 살려서 미니시리즈 같은 걸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매체의 특성에 맞게 각색을 하는 것이지요. <컨택트(Arrival)>처럼요. 생략이 많아서인지 ... 여운과 미련이 남습니다. 저도 이 공모전에 참가를 했던지라 이 책이 어서 나오기만을 고대했는데, 어째서 대상 수상하시고 오랜 기간이 지나서야 출간이 된 것인지 약간은 이해가 되네요.
<푸른 살>은 블록버스터급으로 파워풀한 책이지만, 깊은 메시지도 담고 있습니다. SF소설이기는 하나, 미스터리 추리 요소가 강하고 SF요소는 배경으로서만 존재하는 느낌입니다. SF를 아주 효율적인 도구로 삼아 스토리는 말 그대로 질주합니다.
이태제 작가님은 어느날 갑자기 공모전 대상을 타시며 깜짝 등장을 하셨죠.(검색을 해봐도 예전에 따로 활동을 하신 것 같지는 않은데..) 데뷔작이 이토록 강렬하다니 인상적입니다. 이 책으로 팬이 되었습니다. 홍보문구대로 무시무시한 신예가 등장한 것 같습니다. '푸른살2'도 기대해봅니다. 이태제 작가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