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내게 첫 번째로 생각나는 작가는 로맹 가리이다. 예리한 통찰력, 특유의 유머, 투덜리지만 결국 희망을 얘기하는 츤데레(?) 같은 면모 모두 좋다. '여자의 빛'은 아직 읽어보지 못한 그의 작품을 찾아보던 중에 알게 된 책으로 로맹 가리에 대한 팬심이 더 높아지게 만든 작품이다.
항공기 조종사인 미셸 폴랭은 마흔다섯 살로 그의 아내 야니크는 불치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당신 자신을 경박함에 내주지마, 미셸. 나 때문에 다시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지 마. 죽음은 이미 충분히 치사해. 난 죽음에게 더 보태주고 싶지 않아. 나는 사라지겠지만, 여자로 남고 싶어”라고 말하는 야니크가 자살을 결행하는 날, 미셸은 아내의 죽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줄 작정을 하고 알리바이가 만들기 위해 카라카스행 비행기를 타려 한다. 하지만 그는 차마 떠나지 못하고 아내 곁으로 돌아가려고 택시를 탄다. 마흔 셋의 리디아 토바르스키는 6개월 전에 교통사고로 어린 딸을 잃었다. 딸을 뒷좌석에 앉히고 자동차를 서서히 운전하던 남편 알랭은 자동차를 제어하지 못해 사고를 냈다. 딸을 잃은 충격에 남편은 실어증에 걸렸다. 10년 동안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리디아는 자신이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한다. 카라카스로 떠나지 못하고 아내에게로 돌아가려던 미셸이 택시 문을 열고 내리다가 리디아와 우연히 부딪친다. 흐트러진 물건을 주워 주던 미셸은 택시 기사의 요금 재촉을 받지만 달러밖에 없던 그는 리디아에게 돈을 빌리게 되고, 돈을 갚는다는 핑계로 카페에 들어갔다가 그는 그녀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얻게 된다. 그날 밤 리디아의 집으로 찾아간 미셸은 리디아와 사랑을 나누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두 사람의 인연은 하룻밤으로 끝이 난다.
극단적이고 대범한 상황이 꺼려지긴 하지만 그 이면에는 죽음을 가까이 둔 아픔을 가진 두 사람의 위로가 존재한다.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삶의 빛을 찾을 수 있게 도움이 된다. 로맹 가리의 책 '자기앞의 생'에서도 느낀 거지만 작가는 현실에 조소를 날리지만 결국은 희망을 얘기한다. 사랑이 힘겹게도 하지만 그래도 사랑이 필요하다. "여자없이 자신이 완전하다고 느끼는 '장애인' 남자들도 있고, 남자없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느끼는 '불구' 여자들도 있소. 나는 지금 당신에게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오. 사랑없이 살 수 있소. 다만 그게 몹시 지루하다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