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은 잘 손이 안 간다. 잘 읽히지도 않을 뿐더러 허무맹랑하게 느껴져 공감이 안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잡지에 소개되어 있는 글에서 "철학적 사유"를 하게 한다는 대목에 이끌려 구매하게 되었다. 그저 상상력에 놀라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 종교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도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놀라운 대목이 많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상상 역시 마찬가지 일까? 책에 수록된 단편들 대부분이 어렵지만 흥미로웠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단편은 "바빌론의 탑"이다.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바빌론의 탑"은 탑이 미완성되지 않고 신이 탑을 무너뜨린 게 아니라 인간이 수십년에 걸쳐 탑을 완성하여 신이 있는 하늘에 도달한다면? 이라는 상상으로 시작된다. 광부를 주인공으로 하여 땅 끝부터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 인간들의 여정을 그린 단편이다. 생생한 탑의 묘사, 탑에 사는 인간들의 삶의 방식, 탑에 사는 인간들의 사고 등은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그러나 성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만심과 욕망은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결론에서 보여준다. 끝없는 욕심으로 같은 인간들을 희생시키는 잔인한 모습에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욕심은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친 욕심은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게 되어 자기 자신을 망치게 하는 것 같다. 어떤 책에서 읽었던 샤워할 때 따뜻한 물을 맞으면서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며 행복이란 소박한 것이며 일상에 감사해야 한다는 얘기가 기억난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
테드 창의 새로운 단편소설집이 올 해 출간된다고 들었는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