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게, 많이 말할 것
8152323 2020/11/2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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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번방 이후, 교육을 말하다
- 김동진 외
- 23,000원 (
690) - 2020-10-26
: 346
내 아이가 4살이었을 때 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여느 때처럼 아빠와 목욕을 하던 아이는 아빠와 자신의 몸이 왜 다른지 질문했고, 자신의 몸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해주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아빠에게 있는 게 너에겐 없다'는 식의 말은 다행히 하지 않았다. 앞으로 더욱 질문이 많아질 아이에게 어떤 말들을 해주면 좋을까 고민했다. 성교육 책에서 속시원한 해답 대신에 '나 먼저 다시 배워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기대보다 더 커다란 수확이었다.
스스로 다시 배우며 성교육이 페미니즘과 연결됨을 알았다. 최근에 포괄적 성교육에 관한 강의를 들었는데, 생물학적 성을 가르치는 성교육에 머무르지 말고 성평등교육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사실이 거듭 강조되었다. 페미니즘을 가르쳐야한다는 말이었다. 이 책을 기획한 김동진은 머리말에서 "이 책의 지향점은 결국 우리 사회 전반을 페미니즘으로 나아가게 하는 교육" 이라고 말한다. 사회변화를 위한 교육에 관심이 많은 페미니스트로서 끝까지 읽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지향점이 같더라도 그것을 향해가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다양한 입장의 페미니스트 이야기를 들어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어린이집부터 대학까지 각기 다른 교육 현장에 있는 교육자들 뿐만 아니라 연구자, 출판사와 책방 대표, 활동가, 문화예술인 등 학교 밖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더 나은 삶을 가르치고 배우는 이야기를 했다. 타인의 삶을 짓밟지 않는 삶. 이야기를 따라가며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위태로운 기분이었지만 밑줄 그은 수많은 문장들을 돌아보니 그래도 희망이다. 이런 책이 있음이 희망이다.
좌담회의 대화 내용을 옮겨놓아 옆에서 얘기를 듣는 느낌으로 집중할 수 있었다. 다자간의 대화 형식이다보니 때론 내용 정리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좌담의 끝에 담긴 패널들의 개별 에세이는 앞선 대화를 정리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페미니즘을 여러 방면으로 더 알고 싶은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가 곳곳에 있었다. 나는 음악가 '이주영'과 페미니즘 책방 '달리, 봄'을 진하게 표시해 놓았다.
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을 꿰뚫는 듯한 내용이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긴 이야긴데 책에서 배운 언어로 간단히 정리가 되니 신기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성차별적 태도를 발견해 내가 문제제기를 했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문제제기를 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제기된 문제가 집중받기 보다 갈등의 진원지가 되어 내가 주목받는 상황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고민하는 동안 이 책이 함께 해주었다. 타이밍 절묘하게 나타난 고마운 책이다.
뭐라고 끝을 맺을까 모르겠어서 책을 다시 들춰보니 어떤 이들에겐 425쪽의 넘치는 이야기들이 자칫하면 숨막히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말들에 목말랐던 나에겐 따끔하고 따뜻한 언니와의 대화 같았다. 중학교 2학년 국어 수업 시간에 <바그다드 카페>와 <컬러 퍼플>을 보여주신 선생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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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성 활동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경찰, 페미니스트 변호사, 페미니스트 판사와 검사,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 여러분도 지금 있는 자리에서 페미니스트로서 할 일을 해 주시면 된다" 113쪽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향한 '그렇게 살면 힘들 텐데, 안타깝고 어리석다'는 시선이 변해야 한다. 나는 현실이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그러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한 반드시 변화는 이루어진다. 이런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257쪽
아이는 나의 뽀뽀가 불쾌해도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 엄마가 주는 사랑을 거부할 힘이 없었던 것이다. 힘을 가진 쪽에서 더 낮은 자세로, 더 적극적으로 상대의 감정을 살피고 물어야 하는 이유다. 368쪽
내가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지는 못하겠지만, 한 사람이 꽁꽁 숨겨 두었던 이야기를 해도 된다고 느끼게 만든 것 같아 너무 좋았다. 403쪽
"해당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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