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식민지 조선인은 일본인에게 노예처럼 사육되고 때리면 맞고 뺏으면 뺏기는 그런 무기력한 민족이었는가.
대학시절 사학과 수업들을 들을 당시에도, 이영훈 교수는 이미 식민주의 사관의 대표자로 찍힌 사람이었고, 이 교수의 논문을 읽고 열심히 반박하는 리포트를 몇 번이나 적어내야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의견에 조금이라도 찬동하는 내용을 적으면 어김없이 체크표시가 달리고 교수의 친절한 정정문이 달리던 생각도 난다. 하지만 이미 그 때도 이영훈 교수의 논문들에는 쉽게 반박하기 어려운 설득력이 있었고, 이에 대한 반박의 내용은 그저 반박을 위한 반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그 때도 했던 것 같다.
이후 오랫동안 한일관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왔지만, 근래 들어 점차 가중되는 일본에 대한 편집증적인 증오와 난무하는 선동적 행태들을 바라보면서, 여러 의문을 가지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초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의 일부를 민족사관으로 습득한 사회적 경험, 일정을 겪었던 나의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에게 들었던 증언이라는 개인적 경험,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논리의 근거 및 객관성과 정합성, 흐름 등을 총체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나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에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기존 사학은 일본이 우리를 침탈하지 않았다면 우리 스스로도 뭔가를 해낼 수 있었다는 가정법에 기초한 주장을 하면서 우리 민족을 일방적 피해의 민족, 일본에게 수탈당한 노예의 민족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들이 식민주의 사관이라고 비난하는 이 학자들은 정확한 사료의 채집과 분석을 통해 망국의 민중들이 강제로 일본의 식민체제에 편입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그들은 노예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삶들이 있었고, 제한된 상황에서도 먹고 살기 위해 나름의 선택을 통해 치열하게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만 고대적부터 이어진 한반도 특유의 샤머니즘이 엉터리 민족주의, 그리고 물질주의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피해망상에 찌든 종족주의가 국민의 사고를 지배하게 된 것이 문제이므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패배의 역사관일지는 이 책을 직접 읽어보고 판단해 보는 것이 어떨까.
우리 사회와 역사에 만연하고 있는 날조와 선동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일침이야말로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념에 기초한 이분법적 매도, 당시 상황과는 유리된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짜집기하는 편취 행위,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내어 이를 민족 전체의 피해망상으로 부풀리는 그야말로 저열한 종족적 행위를, 이 책은 명백한 사실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시대상황에 근거한 해석을 통해 깨부수고 있다. 특히나 조선의 기생제-일본의 공창제-일본군의 위안부-해방 후 기지촌의 위안부-현대의 우리안의 위안부로 이어가는 위안부에 대한 분석은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논리전개와 통찰력, 체계적인 근거 자료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반드시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이 책을 읽더라도 공감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여전히 민족변절자 토착왜구 사사카와 재단 운운하면서 매도해 댈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찬반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평생에 걸쳐 주변 모두에게 비난받는 연구를 하면서도 사실에 기초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역사의 틀을 마련했다는 업적은 존경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국민들을 이념의 늪에 빠뜨리는 것이 아닌, 사실을 냉정하게 제시하고 국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이러한 연구자들이 보다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선입관에 얽매여 이영훈 교수를 저주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사실에 의한 반박과 토론으로 한국의 편협한 역사학이 좀 더 건강한 정반합을 이루어 내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