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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꺼니님의 서재
  •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
  • 한혜진
  • 13,500원 (10%750)
  • 2020-10-21
  • : 443
마흔이라는 나이, 제게는
10대 때는 부모님의 나이였고,
20대에는 나와는 상관없는 나이였고,
30대에는 가깝고도 먼 나이입니다.

이 책은 엄마가 되고 나이 앞자리가 바뀐 그 '변화'에 주목해요. 저자는 이를 쓰는 과정에서 본인만이 아는 자신에 대해서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는지 고민할 정도로 쓰기 어려웠다고 해요.

"이 책에는 내 남편도 내 부모도 모르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오직 내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에필로그에서 이 문장을 접하고 마흔에 대한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안고 읽어나갔어요. 이제는 저에게도 머지 않은 마흔을 프리뷰하는 기분으로요.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한 생각, 그리고 여자로서,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마흔의 나이를 살아가는 저자의 생각이 담겨있어요

<마흔, 이런게 마흔이었어요?>

자식키우기

저자는 자식으로서 5~7단계이고, 저자의 자식은 2단계에 들어섰다고 했어요.

저는 자식으로서 7단계이고, 저의 자식은 1단계에요.

결혼하고 나서 급속도로 부모님과의 시간이 줄어들어 부모님과의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 알았다면 결혼을 더 늦게 할 걸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쉬운 마음이 커요.

반면 자식은 아직 7살, 4살이니 그저 엄마를 사랑한다고 하는 천사표 그 자체지요.

엄마가 짜증난다는 아이에게 저자는 이제 마음을 단단히 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해요.

너는 말하는 화초다. 나는 하숙집 아줌마다. 나는 귀만 있고 입은 없다.' 내가 너를 얼마나 애써서 키웠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러냐고, 속으로 눈물이 나오지만 도를 닦고 또 닦는단다


이 문장을 보니 우리 엄마가 나를 이렇게 키웠겠구나 싶어요. 저에게도 머지 않아 펼쳐질테니 이 자기암시문구는 마음속에 꾹 저장하게 됩니다.


나 키우기

직장을 다니는 것과 상관없이 일에 대해 고민하는 엄마들이 많다고 해요. 직장을 다니는 저같은 사람은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가정주부들도 역시 육아와 병행하여 나만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저자가 '세바시'에서 본 <직장 다닌다고 직업 생기지 않는다 - 김호 대표>는 강연을 소개하는데요. '직장이란 20여년간 다니면서 자기 직업을 만들어서 나오는 곳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나는 직장/일터를 다니는 동안 나만의 직업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나만의 직업으로 독립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잘하는가?

이를 수백번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네요. 저자 역시 30대 후반 쯤 자기만의 길을 찾게 되었다고 하구요. 반면에 저는 30대 후반을 달려가면서 이제 길을 찾았고, 앞으로 쭉 닦아나가야 하는 입장이에요.

꼭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결혼과 육아 경험을 통해 블로깅을 하고, 책을 쓰며 새로운 직업을 찾은 사람도 많지요. 우리 모두 저 세가지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변화를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마흔, 여자이니까>

나는 내가 규정한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엄마라는 사람은 여러가지 역할을 부여받고 살지요.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되고 이리오고 저리오라 할 때 말 잘들으면 만만이가 되고, 이것저것 따지고 들면 싸가지가 돼요.

결혼하기 전에는 그저 당당한 사람으로 살았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시댁에서도, 가정에서도 부당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구가 훅훅 들어오죠. 그 때 나를 제대로 규정하지 않으면 삶이 흔들리게 됩니다.

여자니까, 여자라서, 여자이기 때문에, 삶이 흔들린다. 성별로 비하당하기도 하고, 여자니까 아이를 잘 키우고 살림을 잘해야 한다든지 여자니까 정숙하게 살면서 남편 내조나 잘하라든지 하는 낡은 멘트를 수시로 듣는다. 여자니까 예뻐야 하는데 살찌고 볼품없어지니 여자 취급도 못받고, 엄마가 된 이상 외모나 애교로 대충 넘기긴 글렀으니 아이를 잘 키우는 것으로 능력을 증명하라 한다. 여자는 능력이 있어도 육아와 가사가 우선이고 돈은 남자가 벌어오는 것이 마땅하며, 맞벌이를 한다면 일·육아·가사를 모두 잘 해내야 진정한 엄마라고 한다.

결혼하고 첫 명절 때가 생각나요. 우리집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그 어떤 것도 금지된 적 없이 컸는데 차례를 지내며 음식준비는 모두 여자들이 하더라구요. 그리고 기껏 고생한 여자들이 막상 식사할 때는 작은 상 하나 따로 놓고 먹는 것이 저를 너무나 우울하게 했어요.


가정에서만이 아니에요. 혼자 택시 탔을 때 전혀 느끼지 못했던 멸시를 아이들과 타면 느껴요. 버스도 마찬가지에요. 남자승객들에게는 말한마디 못하는 기사들이 '아줌마' 승객한테는 벨을 누르고 안내리는 등 조금만 잘못하면 온갖 짜증을 내는걸 많이봐요.

이것만 써도 포스팅 하나 할 수 있을 만큼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던 차별, 비하발언, 멸시하는 눈빛 등이 많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겨내야하지요.

나도 안다. 나는 여자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만 할 수 있다. 모유는 여자만 먹일 수 있다. 하지만 타고난 생물학적 특성이 '여자이고 엄마니까 사회적 약자로 살아도 된다'는 이유가 될수는 없다. 여자인 것이 삶을 흔들면 안된다.


미셸 오바마는 자서전 비커밍에서 남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높은 산을 올라서서 사람들의 호감을 얻어야 했죠. 그런 처지가 되자 마음속에서 오래된 질문과 응답이 되살아났다고 해요.


나는 충분히 훌륭할까?
그럼, 물론이지​



<마흔, 자식이니까>

모든 딸들의 몸에는 엄마의 말이 새겨진다

딸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 문구가 너무 공감됐어요. 이 말은 일본 정신병리전문가 사이토 다마키의 말이라고 해요. 저자는 이 문구를 "모든 딸들의 인생에는 엄마의 인생이 새겨진다"라고 바꾸어 말했어요.




딸에 대한 엄마의 '지배'는 억압, 헌신, 동일화라는 세가지 양상을 띤다고 해요.

억압 : 주로 말을 통해서 이뤄지는데 가장 노골적인 지배방식. '너 잘되라고', '너를 위해'

헌신 : 엄마의 헌신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죄책감이 밀려오는 경우. 아들은 엄마의 헌신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이런 유의 지배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

동일화 : '딸이 자신의 인생을 다시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여기에는 억압과 헌신이 모두 포함된다.



저자는 사회생활을 하며 헌신하는 엄마와 아빠, 동생을 두고 탈출하듯 독립했지만,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도 몰랐던 내 밑바닥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나처럼 자라면 아버지는 무섭고, 어머니는 불쌍해서, 결국엔 제대로 된 어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자라게 된단다. 내 성장 과정이 거칠고 외롭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에게는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고 생각해왔는데, 글을 읽고 나서 돌아보니 내 안에서 엄마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다.



저 역시도 아이를 낳고 나서야 엄마와의 관계를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 너무 공감되었어요. 아들만 둘이니까 자식에게 이런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만약 딸을 낳았다면 내 딸도 내가 엄마에게 느꼈던 헌신, 동일화같은 지배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딸이 없는게 이런면으로는 다행이라는 위로도 해보고요.



<마흔, 엄마이니까>

아이에게는 문제가 없다.

자녀의 정신발달 단계에 따라 부모가 세 번 변신해야 한다.
애정이 필요할 땐 애정을,
훈육이 필요할 땐 훈육을,
자립이 필요할 땐 자립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부모가 모드를 변경해야 하는 것
<만능양육>, 홍순범


초등학교 때 까지는 일방통행으로 가르치는 게 가능하지만 청소년기에는 가르침이 아니라 믿음, 인정, 공감 세가지가 중요하다고 해요. 그리고 여러나라에서는 10대를 어른처럼 대우했을 때 그들이 어려운 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했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언어는 관념을 지배한다고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말해요

'아이 자체를 문제로 만드는 그 순간부터,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질문은 옳다. 삶은 결국 내 삶의 질문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의 연속이니까. 문제를 찾지 말고 질문을 하자.

아이가 4~7살때 가장 편하고 행복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지금 딱 4,7세 아이를 키우는 저는 이 대목이 유독 눈에 띄었어요. 우리 아이에게 다가올 질풍노도의 시기를 슬기롭게 지나갈 수 있도록 먼저 큰 아이를 키운 선배엄마인 저자의 말씀에 귀기울여야겠다 생각했어요.



<마흔, 사람이니까>

여러가지 활동을 하며 그 기록을 글로 남기기

나에게 엄마라는 단일역할만 있다고 치면, '엄마인 나'가 무너졌을 때 대안이 없다. 그런데 내가 블로그 활동을 시작하고,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부캐릭터가 다양해질 수록 불안감이 덜해지고 삶이 풍부해지는 경험을 했다. 더 신기한 것은, 이렇게 '여러 가지의 나'로 살았더니 오히려 '모든 나'가 더 잘 되는 기분이 든다.

저자는 이렇게 여러가지의 나로 살면서 개인적인 삶을 기록하라고 해요. 글로 기록된 삶이 특별해보이는 이유는 그 삶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기록하면 특별해기 때문이라구요.



더불어 나를 알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책읽기'와 '글쓰기', '실천'을 추천한다고 해요. 저자는 이를 '책쓰천'이라고 이야기 하는데요. '책을 읽고 공부하고 글쓰면서 배운 바를 내 생각으로 흡수하고, 실천하면서 습관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우울한 감정에 이름붙여주기

내가 우울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이름 지어주지 않는 내 상태에 직접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엄마열정 신드롬', '유리천장 스트레스', '위로 갈증', '꿈병' 지금도 계속 적합한 언어를 찾고 있다. 이 병은 병원에서도 치료를 못해준다. 만약 지금 우울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당신은 환자가 아니에요. 지금 내 인생의 가장 큰 질문을 받았을 뿐이에요."

이 부분을 읽기 전에 사실 굉장히 우울한 감정이었어요. 왜이렇게 되는 것도 없이 사는게 바쁜걸까? 남편도 서운해하고, 아이들하고도 많은 시간을 못보내는 것 같고, 그렇다고 제대로 이룬 것도 없고 말이에요. 그런데 이 문장이 저를 위로해줬어요.

나는 우울한 게 아니구나.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잠시 길을 잃어 당황한 것 뿐이구나. 그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내가 육아 우울증에 '인간으로서의 방황'이라 이름 붙인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아픈 사람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 되었으니까





여자로서, 엄마로서, 자식으로서, 사람으로서 40을 막 지나간 저자가 선배같이 느껴졌던 한권의 책.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불혹의 나이 마흔을 이렇게 맞이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문장 한 문장 진심과 솔직한 일상을 꾹꾹 눌러담은 좋은 글이 선물꾸러미 처럼 모여있는 책.

30보다 40이 더 가까운 나이의 저와 동년배의 엄마들이라면 구구절절 공감되는 문장이 가득해 내 일기장을 보는듯한 착각이 들 수도 있는 책.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 입니다.



#마흔
#마흔을않다가나를알았다
#한혜진
#미세스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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