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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냄새님의 서재
  • 기획회의 627호 : 2025.03.05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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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28
  • : 188

고환율 시대에 해외 저작권을 계약하고, 번역비를 지불하고, 마케팅을 시도하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해외 유명 저자라도 재계약비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도 잘 팔리지 않아 출판사는 계약을 망설인다. 번역서는 순위권에서도 점점 밀려나는 추세다. 혹자는 한국 출판 시장이 성장하고 한국 작가들의 약진이 돋보이는 결과가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번역서와 국내서의 비중이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다양한 이야기와 의견이 자리를 잡는다. 트렌드라고 국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되레 번역서 시장이 점차 축소되는 지금 번역서의 자리를 다시 돌아볼 때다.


임프리아 코리아 에이전시 김홍기 본부장은 “2020년부터 약 3년간의 코로나19 팬데믹 시국을 거치면서, 한국 출판시장은 ‘번역서’를 제외한 채 새로운 구조로 진화하고 개편되어 가고 있다”며 “마케팅팀에서 ‘제발’ 번역서 좀 기획하지 말아 달라고 회사에 ‘하소연’할 정도로 현재 상황이 심각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출판사 편집자와 마케터는 책을 좋아하고 좋은 책을 보다 많은 독자에게 알리기 위해 기꺼이 매년 불황에 시달리는 업계에 들어왔다. 그런 이들이지만, 좋은 책이 팔리지 않을 때의 난처함은 어쩌지 못한다.


번역서가 불황에 접어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예전에는 한국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아이디어와 창작의 세계를 번역서에서만 소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국내서에서도 예전 번역서에서 읽었던 참신한 시각을 발견하기 쉽다. 장르문학의 도약과 글쓰기 플랫폼이 더욱더 확대됨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문학, 에세이, 실용서, 자기계발 분야 등 국내 출판계의 수준이 높아졌다.

둘째, 도서정가제의 영향 때문이다.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가 전면 시행되며 홈쇼핑 등을 통한 성인과 아동 전집 도서 할인이 전면 중단되었다. 그에 따라 시장이 줄었고, 인세가 추가로 발생하는 등 재계약에 어려움이 발생했다. 가격 경쟁으로 독자를 사로잡지 못하니, 저자의 유명세, 마케팅, 타깃 독자 설정 등으로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번역서의 인기가 시들한 지금에도 해외도서의 매력에 빠져 출판업에 뛰어든 이들도 있다. 윤석현 번역가 겸 레모출판사 대표와 박소정 녹색광선 대표가 그렇다. 이들은 각각 프랑스 문학과 자신이 좋아하는 해외문학을 주로 출판한다. 1인 출판사지만, 든든한 팬덤을 바탕으로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트렌드의 개인화, 취향의 개인화가 심화하면서 오히려 당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함께 좋아해 주는 독자들 덕분에 출판을 이어오고 있다. 대형 출판사가 금액적인 부분에서 번역서를 출판하지 못하고 있지만, 작은 시장에서는 아직도 애정을 나누는 이들이 존재한다.


김효근 다다서재 대표의 말처럼 “번역서는 생태계에 가해지는 일종의 외부 자극”이다. 연예프로그램에서 일명 ‘메기’의 출연이 관계와 상황에 새로운 자극을 주듯 한국 출판계에도 번역서의 존재가 필요하다. 한반도 안의 담론을 벗어나 세계적 담론을 찾아볼 수 있고, 안에서 발견하지 못한 문제와 방안을 밖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어떤 번역서가 대박을 터뜨린다면, 한국 출판계에서도 뜨거운 논쟁을 출판할 수도 있는 일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새로운 소설을 찾지 않는 지금 잘 팔릴 번역서를 출판하라고 말하는 일은 문제적이다. 출판업계에 호소하는 대신 국내서뿐만 아니라 번역서에도 조금 더 관심을 두길 바라는 일이 바람직하다. 우물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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