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이 다변화하며 지도의 양상도 변화하고 있다. 북펀딩 또한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와 비교하면 그 쓰임이 조금 달라졌다. 북펀딩으로 불리는 크라우드 펀딩은 독립출판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자본금이 없는 작가들이 자신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소액 투자자를 모으는 데서 시작했다. 독자를 미리 그러모으고 책과 함께 굿즈를 동봉하는 형식이다. 근래 북펀딩은 자본력이 있는 중.대형 출판사들도 참전하며 시장의 크기가 커졌다. 이번 『기획회의』에서는 북펀딩의 지각변동과 함께 실과 허, 시장의 면면과 그 미래를 전망한다.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가 아직 거기 있기에
온라인 서점 3사도 자사몰을 통해 북펀딩을 진행한다. “크라우드 펀딩은 점차 하나의 마케팅 기법으로 변모했다. 그것도 누구나 한 번쯤 검토하거나 실행할 만큼 보편적인 전략이 되었다. 워낙 단기간에 일어난 변화인 데다 너무나 일반화된 탓에 이 간극은 지금 와서는 쉽게 체감하기 힘들다”(p.25) 출판사 입장에서도 북펀딩이 괜찮은 마케팅 수법이다. 아트북, 벽돌책, 해외 저자의 작품 등을 출판할 때 수요는 쉽게 예측되지 않는다. 펀딩을 진행할 시에는 정식 출간 전 온라인 서점 채널을 통해 한 달간 홍보할 수도 있고, 저자의 팬덤이 펀딩을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한다. 또한 모금 금액을 작게 잡을수록 초과 금액이 커지는 퍼센티지를 활용한 홍보 문구도 쓸 수 있다.
“다수가 하나의 유행을 쫓는 ‘메가 트렌드’가 아닌 개인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알고리즘이 끝도 없이 뻗어나가 다양한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마이크로 트렌드’가 유행하는 요즘”(p.35)이다. 이야기가 개인화되고, 취향도 그에 따라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 출판과 출판 마케팅 차원에서도 다수가 아닌 개인을 겨냥한다. 이에 사전 투자의 양상을 한 초기 북펀딩은 예약 판매와 프리 오더 느낌으로 변화했다.
실이 있다면 허도 있다. 분명 초기 북펀딩은 독립출판을 위한 장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작은 팬덤을 이루거나, 제도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책을 세상에 내놓는 역할을 했다. 시장이 커지고 자본이 들어오며 소수의 독립출판은 자신의 책을 홍보할 자리를 좀처럼 찾기 어렵다. 자본이 부족해 펀딩을 진행하는 것인데, 펀딩을 홍보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한 모순이 발생한다.
저작권 침해도 문제적이다. 펀딩 페이지는 그 자체로 마케팅이자 홍보 창구다. 디자인, 목차, 구성, 굿즈, 주제 등 그 자체로 저작권의 영역이다. 펀딩을 하나의 시장 상품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이들도 많아졌고, 도용과 저작권 침해도 빈번하다. 출판사, 저자, 독자가 믿고 읽을 수 있는 북펀딩 시장을 위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펀딩에 들어가는 책은 이미 출간을 확정한 책들이 많다. “사회의 관심이 부족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함께 지지하고 연대해 달라는 메시지”(p.37)이기도 하다. 북펀딩의 초기 역할을 떠올리며 자신의 이야기가 있는, 세상에 필요한 저자의 첫 책을 출판사가 북펀딩 시장에서 함께하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출판 자본이 충분한 중.대형 출판사가 북펀딩을 진행한다고 불만을 표하는 독자는 이제 없다. 그럴수록 북펀딩이 단순한 마케팅 수단이 아닌 독자들의 관심이 필요하고, 세상에 필요한 책을 알리는 창구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