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고 불황이라는 말은 출판계에 너무 익숙한 말이다. 불황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쓰는 사람은 매해 꾸준히 증가하는데 읽는 사람은 되레 줄어들고 있다. 개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수단 중 가장 빠르고 간편한 방식은 글쓰기다. 그러나 개인이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받아들이는 방법 중 독서는 꽤 어려운 편이다. 비대칭 속에서 책은 쏟아진다. 그러나 소중한 스토리의 상당수는 소리 소문 없이 잊힌다.
스물다섯 명의 편집자, 스물다섯 가지 질문
여기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좋은 책을 만난 한 명, 한 명이 모여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출판 편집자다. 퍼블리싱 매니저, 북 에디터라고도 불리는 이들의 이야기가 기획회의 623호에 실렸다. ‘나의 인생 기획’은 출판사 대표부터 젊은 편집자까지 스물다섯 가지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출판 기획에 관해 말한다. 책이라는 한 권의 물성을 빚는 일 너머 편집자의 여정과 삶을 그린다.
이야기는 세 가지 장으로 나뉜다. “출판이라는 바다, 한 권의 나침반”에서는 출판사 혹은 편집자 개인의 정체성을 만든 첫 책이나, 뿌리를 내리는 데 도움을 준 저자와의 만남 등 책과 인생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도약과 확장, 시리즈 기획기”에서는 민음사의 쏜살 문고, 사월의눈의 리듬총서, 창비의 소설의 첫 만남,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 등 출판사의 지향성과 출판 목적이 드러나는 이야기들이다. “기획 그 너머를 그리며”에서는 출판을 넘어 출판의 목적, 책의 가치, 편집자가 지운 십자가 등을 다룬다. 기획안에 담기지 못한 진심, 출판과 관계한 많은 이해관계자, 저자와 독자 등 출판과 인생의 연결고리를 담았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숱한 질문을 마주한다. ‘이 책은 독자들이 원하는 이야기인가’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있는가’ ‘유사도서와 구별되는 특별한 차이점이 있는가’ ‘시의성 있고 효용성 있는 주제인가’ 등 다양한 벽과 마주한다. 편집자는 이 질문들에 답을 찾으며 책을 만든다. 출판과 편집에 대한 질문들은 곧 인생에 대한 질문으로 읽힌다. “저자의 콘텐츠를 사랑하고 저자를 사랑하고 저자의 책을 만나게 될 독자들을 사랑할수록 책은 개인을 넘어 더 깊고 넓게 더 높이 비상할 수 있다”는 민혜영 카시오페아 대표의 말마따나 출판은 더 넓게 더 높이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팔리는 책이거나 세상에 꼭 필요한 책을 만들며 편집자의 삶 또한 그 너머에 가닿는다.
정답 없는 출판계지만, 오답은 분명 존재한다. 오답지를 피해 펴낸 책이 다른 출판사가 참고할 오답이 되지 않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분투 중이다. 그들의 삶이 변하고 곧 우리의 삶 또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