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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 Boundaries
  • 천국과 지옥의 이혼
  •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 10,800원 (10%600)
  • 2003-07-15
  • : 1,364

1. 책의 해설 부분이다. “근본적으로 루이스가 주장하는 죄의 모습은 자기집착입니다. 이러한 자기집착은 사후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 판치는 타락의 그림자입니다. 루이스 생각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집착을 하고 있음에도 자기 안에 완전히 매몰되어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될 수 없는... 것은 ‘육신’이라는 가시적 존재틀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할 수 없이 남들과 부딪히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언젠가 육신을 벗게 될 때 자기집착은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극단으로 치닫게 될 터인데, 그것이 곧 지옥의 모습이 되리라는게 루이스의 추측입니다. 끝없는 자기집착으로 인해 블랙홀처럼 하도 안으로만 빨려 들어가다 보니 결국 빗물질적인 유령의 세계인 지옥이 이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돌멩이만한 크기도 안 될 거라는 상상은 또 얼마나 흥미로운지요! 루이스가 생각하는 사후, 즉 개인의 종말은 이 세상에서 이미 겪고 있던 구원과 멸망의 갈림길이 더 뚜렷하게 구분되는 현장을 말합니다. 멸망을 자원하는 유령에게는 천국이 제시되었다 할지라도 결국 거절하게 될 것이며, 그런 논리에서 지옥의 문은 밖에서 걸어잠근 게 아니라 안으로부터 잠겨 있다는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견해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180~181)”

2. 복음은 좋은 소식이다. 기쁜 소식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악의 세력은 결정적으로 패배했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으며, 궁극적인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전하는 소식이다. 현실은 전혀 그런것 같지 않아 보여서 절망스럽기도 하다. 거대하고 구조적인 악의 문제를 비롯 개개인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악의 문제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는 누룩과 같고 겨자씨와 같아서 이미 시작되어 퍼져가고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런 이야기는 믿음과 결부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수는 선포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막 1:15)”

3. 믿음은 삶의 자리를 바꾸어 놓는다. 하나님의 나라를 살거나, 살지 않거나. 이것은 선택이다. 그런 생각을 해 본다. 하나님의 나라를 살지 않는 곳, 그곳이 다름 아닌 지옥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옥은 먼 곳에 있지 않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면, 지옥도 이미 존재한다. 다만 그곳이 지옥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다. C. S. 루이스의 이야기는 이러한 모습을 그려준다. 이 땅에서 이미 겪고 있던 구원과 멸망의 갈림길이 더 뚜렷하게 구분되는 현장말이다. 그리고 그 곳은 자기 자신으로만 가득한 곳이 될 것이다.

타고 싶어하는 사람은 다 타게 되어 있으니 걱정 말게.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어. 하나님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는 인간들과, 하나님의 입에서 끝내 ‘그래, 네 뜻대로 되게 해주마’라는 말을 듣고야 마는 인간들. 지옥에 있는 자들은 전부 자기가 선택해서 거기 있게 된 걸세.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게 없다면 지옥도 없을 게야. (95)

그 선택이 두렵다. 교회 안에서조차 이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 같아 두렵다.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완성을 향해 나아가기 보다 고집스럽게, 참으로 고집스럽게 블랙홀같은 자기 자신 속으로만 함몰되어 들어가는 것 같아 두렵다.

버림받은 영혼들의 선택은 ‘천국에서 섬기느니 차라리 지옥에서 지배하는 편이 낫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네. 사람들이 비참한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지키려고 고집하는 것들이 늘 있게 마련이지. 사람들은 기븜보다 더 좋아하는 것, 즉 실재보다 더 좋아하는 것을 늘 갖고 있다네. 미안하다고 말하고 화해하느니 차라리 저녁도 못 먹고 놀지도 못하는 편을 택하는 버릇없는 아이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나. 흔히 아이들의 그런 행동을 ‘심통 부른다’고들 하지. 하지만 어른이 그런 짓을 할 때는 수백 가지 근사한 이름들을 붙여 놓는다네. 아킬레우스의 분노라든지 코리올라누스의 위대함이라든지, 복수, 명예 훼손, 자중심, 비극적 위대함, 정당한 자존심 따위의 이름들 말일세. (91) .... 자네도 곧 알게 되겠지만 이곳의 선택에는 수없이 많은 형태가 있다네. (92)

성경에서 외치는 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나는 어떠할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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