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 책!
쩡이 2024/10/0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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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 윌리엄 해즐릿
- 15,030원 (10%↓
830) - 2024-08-30
: 22,005
윌리엄 해즐릿. 이름도 낯설고 그의 글도 낯설다. 보수주의자들의 조직적 은폐 속에서 그래도 이렇게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건 ‘버지니아 울프’ 덕분.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건가. 사장될 뻔한 그의 촌철살인 같은 글들이 아티초크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글의 서문은 장강명 작가님이 쓰셨다. 장 작가님도 한 시니컬 하신 분일텐데 역시 고수는 다 고수를 알아보는 법인가보다. 처음 그의 글을 접했을 때 지금. MZ 세대들이 열광한다는 쇼펜하우어나 니체 류인가 했다. 하지만 내가 읽었을 때는 쇼펜하우어나 니체보다는 시니컬 정도가 약한 것 같다 ㅎㅎㅎ 모범생의 시니컬 느낌. 그래서 오히려 더 차분히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쇼펜하우어나 니체처럼 오~~어쩌구 저쩌구 하며 시니컬 할까봐 ㅎㅎㅎ
‘죽음의 공포에 관하여’라는 글 중 “ 죽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없앨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삶에 대한 적절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는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통용되는 명언인 것 같다. 죽음에 대해 시니컬한 해즐릿이지만 누구보다 죽음의 아픔과 비통함을 견디며 아마도 스스로에게 했을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나의 죽음보다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고 목격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과 아픔이었을 터.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그 역시 죽음에 대한 통찰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은 죽음과 거리가 먼 듯, 예외인듯 행동하지만 결국 삶과 죽음은 하나이고 삶에 적절한 가치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웰빙)이 잘 죽는 것(웰다잉)이라는 또다른 표현인 것 같다. 1800년대 사람인데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글이다. 또한 ‘질투에 관하여’라는 글에서도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을 질투하지만 그 사람도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며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노력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우리는 천재들의 천재성을 부러워도 하고 시기, 질투도 하지만 그들은 그 분야에서만 천재일 뿐,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는 그들도 고군분투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천재들이 오히려 이중고의 삶인 것 같다. 단 하나의 분야에 우뚝 서지만 나머지에 대해선 또 나름 노력해 살아가야 하니까. 그저 평범한 우리들의 삶이 어쩌면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르니 굳이 질투하며 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렇듯 해즐릿은 사람들이 혐오하는 한 단면만을 부각하지 않고 그 이면을 보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 제목도 ‘혐오의 즐거움’인지도!
해즐릿의 글을 읽으면서 지금 현재 ‘혐오’만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 단면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가려진 무언가를 발견하고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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