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nlpurn_winter7/223126722706
“엄마, 대체 언제 죽어줄거야?”
이 무슨 미스터리 스릴러물 같은 대사인가? 엄마가 죽기를 바란다니! 동서고금에 그런 법은 없다. 하지만 이 소설 <어머니의 유산>에 등장하는 두 딸, 나쓰키와 미쓰키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가쓰라가의 여성들은 평탄한 삶을 살아오진 않았다. 게이샤였던 윗대 할머니부터 사생아였던 외할머니, 첩의 자식이었던 엄마. 늘 그게 불만이었을 엄마는 늘 높은 곳만 바라보며 화려한 삶을 살기를 욕망했고, 다른 남자를 만나고 남편을 버렸다. 엄마가 저버린 병든 아버지는 딸의 간병을 받으며 쓸쓸히 죽어갔고 그 돌봄이 이젠 엄마 차례인 것이다.
엄마는 언니인 나쓰키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나쓰키의 손가락이 곱아서 레슨 때 제대로 칠 수 없다는 이유로 언니의 가방을 동생 미쓰키에게 들게 한다든지 하며 미쓰키에게 불공평한 처사를 일삼았다. 하지만 엄마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 자식들. 엄마의 욕망대로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시키고 유학도 보냈지만 유부남과 열애하다 들켜 강제귀국 당하고 항상 제멋대로인 나쓰키. 언니 나쓰키는 엄마의 부캐같았다. 그렇게 자기에게 공을 들인 엄마지만 정작 엄마를 ‘그사람’이라고 부르며 얼른 죽기를 바란다.
동생 미쓰키는 엄마의 차별적인 처사 속에서 그래도 평범하게 자란다. 파리 유학, 대학강의, 그리고 교수 남편. 무난한 삶이었다 싶었는데 남편은 몰래 젊은 여자를 애인으로 두고 있었고, 언니는 제멋대로고 이제 남은 엄마는 미쓰키에게 돌봄을 받고 싶은 눈치다. 지긋지긋한 엄마의 굴레.
"…눈앞에 누워 뒹굴고 있는 괴물같은 어머니. 이 어머니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인생을 살아온 탓에 딸인 자신은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 P.350
"…데쓰오는 그런 어머니 밑에 태어난 미쓰키에게 가장 중요한 때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려고 하지 않았다."p.351
엄마도 남편도 모두 미쓰키에게 필요할 때만 요구하거나 묵인한다. 미쓰키는 생각했을 것이다. ‘앞으로 자기 인생은 이런 일의 반복이 되는게 아닐까’하는 그 불안한 두려움...
드디어 바라던 대로 엄마가 죽고 엄마의 유산도 물려받게 되었다. 이제 모든 굴레에서 해방인가 싶었지만 줄줄이 해결할 삶의 난제들을 떠안고 하코네로 휴가를 가서 삶을 되돌아본다.
80대 노인의 돌봄을 50대 딸이 해야 하는 이 기막힌 이야기는 비단 소설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옛날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효도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각박해졌고 자식들이 부양하기 힘든 시대가 되어버렸다. 기초연금이라하여 나라에서 조금 주는 돈이 있지만 이 돈이 돌봄을 해결하긴 어렵다. 그래서 요양원, 요양병원, 실버타운 등 있긴 하나, 아예 못살아 수급자가 되지 않는 이상 여기 들어가는 돈 역시 자식에겐 힘들지 않을 수 없다. 부모 부양, 자식도 책임져야 되는 50-60대 중장년 층은 미쓰키처럼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끝나지 않는 굴레처럼. 부모가 건강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병환이라도 들면 이중 삼중 고통이다. 다행히 미쓰키의 엄마는 돈이라도 있지. 물려줄 유산도 없는 노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딸은 그저 어머니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이 아니다. 늙음의 끔찍함을 가까이에서 직접 보는 고통-앞으로의 자기 모습을 코앞에서 보는 정신적인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게 아닐까.."p.491
이 책을 읽는 내 느낌도 그랬다. 부정한 엄마였지만 그래도 자식들에겐 최고급 교육과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 엄마인데 왜 엄마가 죽기를 바란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를 수발 하며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이젠 어머니마저 수발 하며 어머니의 늙음과 죽음을 바로 목전에서 목격해야 하는 삶이란 끔찍할 수도 있겠구나. 나 역시 엄마를 간암으로 갑자기 잃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망연자실해 있을 때 누군가가 그랬다. 자식들 고생 안시키시려고 일찍 가셨다고. 긴 병 끝에 효자 없다고 돌봄을 해서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이 그렇게 본인도 고생하고 자식들도 고생시키느니 엄마가 고생안하고 가신 것에 조금의 위로가 되었던 참 아이러니 한 상황이라니... 고통에 일그러진 엄마를 본다는 것도 너무 끔찍한 고통일 것 같다. 그러니 글 서두에 “엄마, 대체 언제 죽어줄거야?”란 말은 유산을 탐내거나 돌봄이 귀찮은 딸들의 욕망 어린 말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엄마를 바라보는 딸들의 늙음과 죽음의 고통을 대변하는 처절한 절규가 아닐까.
*출판사에서 도서지원을 받았습니다.
#복복서가 #문학동네 #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