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스토리 창작은 작가가 자신의 영혼을 깎아내어 한 세계를 구축하는 고독하고도 숭고한 작업이었다.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들이 텅 빈 백지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인간 창의성의 상징과도 같았다.
과거 바둑계를 뒤흔들었던 ‘알파고’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AI가 그저 계산과 수치, 법률처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영역에만 머물 것이라 믿었다. 기계가 인간 특유의 미묘한 감수성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의 AI에게 창작을 맡기면 돌아오는 것은 조악하고 파편화된 문장들뿐이었기에, 우리는 ‘창작은 인간 고유의 성역’이라며 안심하곤 했다.
하지만 찰나와 같은 시간이 흐른 지금,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생성형 AI는 이제 인간의 영감과 상상력을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독자의 감정을 파고드는 정교한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AI가 쓴 소설이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감행한다. 동일한 주제로 AI에게 스토리 창작을 제안하고, 1년이라는 시간차를 두어 그 진화의 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저자의 치밀한 비교 끝에 현재 스토리텔링의 승기는 '클로드(Claude)'에게 돌아갔지만, 구글의 '제미나이(Gemini)' 역시 매서운 추격세를 보여주었다. 이 두 모델을 제외한 다른 AI들이 아직은 창작의 보조 도구로서 한계를 보이는 상황에서, 저자의 기록은 AI 시대 스토리텔링의 현주소를 날카롭게 관통한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사용자가 올곧게 집중해야 할 것은 ‘후크’일 뿐이다. 스토리의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다듬고 내가 이 스토리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주제)과 카타르시스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놓치지 않도록 집중하라는 뜻이다. ‘플롯’에 대해서는? AI에게 시키면 된다. 시키는 것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AI가 내놓은 답(결과물)을 판단하고 수정의 지침을 주고 최종 결정을 하는 일은 오직 사용자의 몫이다. (…) AI가 해주는 일이란게, 사용자가 때로는 불필요하게 소모적으로 쏟아부어야 할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시켜 주는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플롯’에 관한 한 사용자가 직접 하는 작업보다 생성형 AI가 조금 더 정확한 결과물을 만들어 줄 것이다. p 029
‘프롬포트’ 사용자가 AI에게 원하는 작업이나 응답을 요청하기 위해 입력하는주문(질문)이다. 프롬프트의 품질이 결과물의 품질을 크게 좌우한다. 어떤 이는 프롬프트가 구체적일수록 좋은 결과(답변)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처음부터 구체적인 프롬프트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첫 질문과 결과에 발목이 잡혀, 스토리가 뻗어나갈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차단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한 번의 질문으로 완벽한 결과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게 좋다. 처음에는 다소 커다란 덩어리를 주고받은 후에, 한 걸음 더 깊고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하나하나 완성해나가는 방식이 바람직한 결과물에 이르도록 할 것이다. p 081
"스토리 창작의 주도권은 반드시 사용자에게 있어야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깊게 새긴 문장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가벼운 호기심으로 AI를 마주한다. '기계가 인간의 영혼을 태우는 창작을 얼마나 흉내 내겠어?'라는 의구심으로 시작하지만, 막상 AI가 쏟아내는 정교한 문장들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희망과 위기를 동시에 느낀다. 창작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달콤한 희망,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창작자로서의 위기감이다. 저자는 이 혼란스러운 지점에서 창작자가 지켜야 할 명확한 경계선을 그어준다.
창작자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핵심은 스토리의 아이디어, 즉 '후크'다. 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독자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반면, 구조를 짜고 살을 붙이는 '플롯'의 영역은 과감하게 AI에게 맡겨도 좋다. AI는 사용자가 소모적으로 낭비해야 했던 시간과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AI가 내놓은 결과물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다. AI가 제안한 길 중 어느 곳으로 갈지 판단하고, 수정 지침을 내리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디렉터'의 역할은 여전히 창작자의 몫이다.
흔히 프롬프트가 구체적일수록 좋다고 말하지만, 저자는 의외의 조언을 건넨다.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오히려 스토리의 확장성을 가로막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정답을 맞히는 수식 계산이 아니다. 처음에는 큰 덩어리의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가능성을 탐색하고, 점진적으로 깊게 파고드는 '빌드업' 과정이 필요하다. 한 번의 질문으로 완벽한 답을 얻으려는 욕심을 버릴 때, 비로소 AI와 진정한 협업이 시작된다.
창작자가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창작자의 스토리가 서 있어야 할 출발선은, 세상이 앓고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인간과 시대의 결핍에 대한 관심과 걱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결핍을 위로하고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건강한 욕망을 응원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런 위로와 응원이 스토리의 출발점이고, 기획의도와 주체를 구축한다. 사실 이 도전과제는 한순간에 뚝딱 하고 나오는 게 아니다. 창작자는 언제나 시대를, 세상을 여행하고 탐험하는 사람이다. 그 여행/탐험의 과정에서 다양한 영혼과 표정을 가진 사람들을 지켜보고 탐구하며, 우리 인간에게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모자란 것, 비뚤어진 것, 잘못된 것에 대해 생각하고 성찰한다. p 094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창작자의 출발선'이다.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지만, 시대의 결핍을 아파하거나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려는 '선의'를 가질 수는 없다. 진정한 창작물은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곳, 잘못된 것들을 성찰하는 창작자의 건강한 욕망에서 시작된다. 세상을 여행하고 탐험하며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창작자의 시선이 없다면, AI가 만든 스토리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뚜렷한 주관 없이 AI에게 끌려다니며 만든 결과물은 결코 자신의 작품이라 할 수 없다. 비록 제작 과정을 숨길 수는 있겠지만, 진정성을 고민하는 창작자라면 그 공허함에 끊임없이 후회하게 될 것이다. AI는 훌륭한 파트너이자 조언자일 뿐이다. 이 도구를 부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도구의 편리함에 매몰되어 창작자의 영혼을 잃어버릴 것인지. 그 갈림길에서 이 책 『AI시대, 스토리텔링의 재탄생』은 '인간 창작자의 존엄'을 지키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