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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RO's Library
  • 말하지 않고 말하기
  • 김정운
  • 21,600원 (10%1,200)
  • 2026-05-11
  • : 47,270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믿었던 언어의 성벽이 인공지능에 의해 허물어지고 있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매끄러운 문장을 구사하는 시대,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소통의 빈곤을 겪는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말하지 않고 말하기』를 통해 대화의 본질이 화려한 수사가 아닌, '몸의 언어'와 '정서적 조율'에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기계적 데이터가 인간의 자리를 찬탈해버린 오늘날, 이 책이 분석하는 터치와 눈맞춤의 메커니즘은 우리가 잃어버린 소통의 원형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감정은 지극히 상호적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남의 정서를 공유하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습니다. 그래서 정서를 공유하지 못할 때, 외로워 집니다. 외로움의 본질은 내 감정을 남과 공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슬픔은 더 슬프게 느껴지고, 기쁨도 슬픔으로 변합니다. 웃을 때, 옆 사람을 살짝 때리거나 건드리는 이유는 기쁨과 즐거움을 공유하자는 무의식적인 메시지 입니다. 혼자 기뻐야 아무 의미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감정 전염’ 이라고 표현합니다. ‘터치’는 감정 공유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입니다. p 026



아기가 태어나서 경험하는 상호작용의 구체적 내용은 ‘터치’와 ‘눈맞춤’입니다. 이 두가지는 다음 파트에서 설명할 ‘정서 조율’과 더불어 자아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호주관적 경험’ 입니다. 아기와 엄마 중, 그 누구에게도 환원할 수 없는 ‘공동의 경험’이라는 뜻입니다. 엄마와 아기가 ‘같은 몸’이었던 태아 때의 신체적 관계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터치의 경우 엄마가 손으로 아기를 만지지만, 아기는 자신의 몸으로 엄마의 손을 만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p 061




김정운의 <말하지 않고 말하기>는 ‘감각의 교차편집이 곧 자아 탄생이자 창조의 본질’임을 역설한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의 AI가 과연 인간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우리는 단호히 "아니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AI와 대화하며 소통을 체감한다고 믿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보와 논리의 교환인 ‘일차원적 대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통의 가장 원초적인 도구는 ‘터치’다. 물론 우리는 매일 스마트 기기를 터치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서를 공유하는 비언어적 도구로서의 터치가 아니라, 기계적 입력을 위한 ‘접촉’일 뿐이다. 본래 스마트폰을 터치했던 이유는 그 기기 너머에 있는 ‘누군가’와 연결되기 위해서였다. 전화, SNS는 소통을 돕는 매개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주객이 전도되었다. 굴러온 돌인 스마트 기기가 박힌 돌인 인간 관계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꿰차버린 것이다. 감정을 공유하고 상호작용해야 할 ‘사람’은 사라지고, 오직 일방적으로 두드리는 유리 액정과의 상호작용만 남았다.




터치와 더불어 인간 소통의 핵심 기제인 ‘눈맞춤’ 역시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일부 동물이 눈을 맞추기도 하지만, 이는 대개 위협이나 탐색 등 극히 제한된 생존 본능에 한정된다. 반면 인간의 눈맞춤은 대화 없이도 서로의 존재를 승인하고 정서를 조율하는 고도의 사회적 행위다. 하지만 소통의 자리를 기계가 대신하면서 이 눈맞춤의 규칙도 붕괴하기 시작했다. 눈을 맞추며 서로의 반응을 살피던 ‘상호주관적 브레이크’가 사라진 것이다. 시선을 매개로 한 상호작용이 사라진 자리에 사람들은 기계 속 콘텐츠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시선과 터치가 거세된 익명의 사이버 공간은 그 누구의 감시도, 수치심도 작동하지 않다. 김정운 교수가 지적하듯, 수백 년간 인류가 쌓아온 ‘문명화된 행동 규범’은 온라인에서 무력해진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통제 장치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악플, 마녀사냥,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에 매몰되며 점점 더 폭력적이고 원시적인 감정 표출에 익숙해지고 있다.




결국, AI와 스마트 기기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것은 인간의 고유한 소통 영역인 ‘정서 조율’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가 기계와 대화할수록 더 큰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곳에 내 정서를 거울처럼 비춰줄 ‘온기 있는 타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학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처럼 절제된 행동, 즉 문명화된 행동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바로 ‘타인의 시선’ 입니다. 식탁의 사례처럼, 개인 공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확보되면서, 사람들은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날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직접적인 신체 접촉은 분노나 적개심 같은 원초적 감정 표출과 쉽게 연계되기 때문이지요. 그 대신 ‘시선으로 매개되는 상호작용’이 중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p 079



엘리아스가 주장한 ‘문명화 과정’의 산물인 눈맞춤, 시선, 신체적 접촉의 원칙 등이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습니다. 수백 년에 걸쳐 강력하게 작동하는 수치와 부끄러움, 예의와 품격 같은 행동 규범이 온라인에서는 약화되거나 무력화됩니다. 익명과 비대면의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문명화 과정을 통해 구성된 ‘책임지는 개인’은 단번에 해체됩니다. 오프라인에서는 당연히 억제되었떤 언어폭력, 비아냥, 조리돌림, 집단 따돌림이 온라인에서는 수시로 발생합니다. 원시적 분노와 적개심의 표출은 더 이상 부끄러운 행동이 아닙니다. 그 결과 이제까지 공동체를 유지해왔떤 상호작용의 원칙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사회적 신뢰도 붕괴됩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일어나는 자기 통제의 붕괴, 상호존중의 약화 같은 현상을 학자들은 ‘탈문명화’로 설명합니다. p 090







결국 소통의 본질은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며 각자의 ‘자아’를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과정에 있다. 기술이 인간의 언어를 완벽히 흉내 낼지라도, 눈맞춤이 주는 정서적 조율과 터치가 만드는 상호주관적 경험은 기계가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다. 우리가 스마트 기기의 매끄러운 유리 액정 대신 거칠고 투박한 타인의 손을 다시 잡아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디지털의 파도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증명해 주는 것은 화려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내 감정에 진심으로 반응해 주는 살아있는 존재와의 감각적 공유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도구 뒤에 숨겨진 인간의 얼굴을 다시 마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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