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인문학책 『삼국지 인생공부』는 ‘삼국지’ 등장인물을 통해 그들을 재조명하고, 그들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배워야할 점은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이제 막 사회를 나온 20대 사회초년생부터 시작해서, 이제 막 회사에서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30대, 관리자가 되어 부하직원을 거느리는 40대 이상까지 모두에게 추천하는 인문학책이다.
다만! 이 책을 읽기 전 주의사항이 있다.
이 책은 제목부터 ‘삼국지’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저자가 인용한 삼국지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가 아닌, 나관중이 집필한 소설 《삼국지연의》다. 뭐, 그럴 수밖에 없다. 정사 《삼국지》는 말그대로 역사책인 반면에, 《삼국지연의》는 기존 삼국지를 토대로 인물들에 입체감을 불어넣어 집필한 역사소설이니까. 심지어 《삼국지연의》 속 인물들의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주옥같은 명대사가 즐비하는 건 물론이오(여기서 파생한 사자성어가 몇 개인가), 영화로도 만들정도로 극적인 전투장면이 몇 개인가! 그렇다보니 제 2, 3의 컨텐츠를 만드는 원본으로는 《삼국지연의》 만한게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점만 잘 이해하고, 이 책 『삼국지 인생공부』를 읽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행여나 역사 속에서도 정말 그랬을거라고 생각하는건, 명백한 역사왜곡이니 말이다(흔한 역사더쿠의 우려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인물상이 있다. 오로지 기회만 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력을 우선시 하는 사람도 있고, 내편이든 아니든 나에게 도움만 된다면 무엇이든 사용하는 실용주의자도 있다. 또 한 쪽에서는 사람의 됨됨이를 우선시하고, 도덕성을 중시하며, 사람간의 신뢰와 존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삼국지연의》 속에는 이 모든 인물 군상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속에서 내가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지 찾는 것은 다름아닌 이 책을 읽는 본인의 몫이다.
여포는 삼국지에서 가장 뛰어난 무장 중 한 명이었지만, 끊임없이 주인을 배신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엔 동탁을 배신하고, 이후 왕윤을 배신하며, 결국 조조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조조는 그의 무력을 높이 평가했지만, 배신의 전적이 많았던 그를 끝까지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포가 포로로 잡혔을 때, 조조의 부하들이 “그의 무예가 뛰어나니 부하로 삼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건의했지만, 조조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자는 절대 내 곁에 둘 수 없다.” p 054
숫한 게임 속에서도 만능캐로 그려지는 여포. 그토록 능력이 출중한 여포였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자기 성공을 위해선 끊임없이 배신을 했던 위인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기회주의자’다. 오죽하면 인재라면 적군이라도 포섭하는 실용주의자 조조마저도, 여포에게는 일절 기회를 주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단죄(또는 단절)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회사생활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그나마 여포는 능력이라도 출중했기에 여기저기서 쓰임을 받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기회주의자들은 능력조차 없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한다. 흔히 말하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족속들이 여기에 속한다. 능력없이 라인타기로 관리자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들도 그렇다.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조직은 희망이 없다.
최근 십 년 간 팀/부서 또는 회사가 발전할 희망이 없어서, 미래가 불투명하여 퇴사를 선택하는 유능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렇게 인재가 떠나가는 이유를 대다수가 알고 있다. 아이러니한건 꼭 조직의 장이나, 의사결정권자들만 그 이유를 모른다. 왜? 그들은 앞서 말했듯, 대게 능력보다는 기회를 엿보며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날 마속은 처형되었고, 제갈량은 아무 말 없이 그의 무덤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 여기서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베다’라는 의미의 고사성어 ‘읍참마속(원칙과 대의를 위해 사적인 정을 버리거 엄격한 결정을 내린다)’이 유래되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신하들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 “진정한 관계란, 감정으로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법과 원칙을 무너뜨린다면, 우리는 결국 더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p 086
삼국지를 통틀어 유비는 민심을 얻는 데 가장 탁월한 능력을 보인 군주였습니다. 조조는 강력한 군사력과 행정 능력을 바탕으로 북방을 통일했습니다. 그는 능력주의를 강조하며 신하들에게 기회를 제공했고, 실용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잔혹한 통치자’라는 이미지가 강했으며, 그의 정책은 백성들에게 강한 압박을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유비는 특정한 지역적 기반 없이 떠돌이 신세로 시작했음에도 도덕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며 군주로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유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민심’이었습니다. 그의 세력은 명문 가문의 후광이나 강력한 무력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신뢰와 충성심을 바탕으로 점점 확장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군주들과 차별화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p 075 ~ 076
제갈량은 한동안 유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유비가 단순한 야심가가 아니라, 직접 눈보라를 헤치고 자신의 초가집을 찾아와 거듭 진심으로 호소하는 정성과 인품을 갖춘 진정한 군주임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유비가 자신을 얻기 위해 세 번이나 찾아왔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마침내 제갈량은 길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습니다. “이제야 천하를 도울 때가 온 것 같습니다.” p 139
능력과 실용을 중시하는 조조의 리더쉽과, 도덕성과 신뢰, 윤리를 중시하는 유비의 리더쉽. 어떤 리더쉽이 더 좋은가? 행여나 《삼국지연의》 처럼 유비에게 몰표하는 그런 만행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시대에 따라서 바라든 리더상은 조조일 수도 있고, 유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일 좋은건 조조와 유비의 리더십이 절충되는 것이다. 유비의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그 안에서 능력과 실용을 찾는 리더야 말로 더할나위 없는, 누구나가 바라는 리더다.
하지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리더들은 말로는 유비를 따라한다고 하지만, 늘 조조의 리더십을 따라간다. 부하직원의 실수를 꼬투리잡아 끝까지 책임을 묻는 리더와 담당자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지고, 부하직원에게 다시한번 신뢰를 보이며 다시금 기회를 주는 리더. 과거에는 전자에 속한 리더도 많았으나, 최근 십 년간 후자에 속한 리더들이 넘쳐났다. 더한 리더들은 책임 묻는 것이 아니라, 부하직원이 타 팀/부서에게 공격을 당하든 말든 방관하기도 한다. 이쯤되면 조조, 유비를 언급하기 조차 미안해질정도다.
다시 말하지만 제일 좋은 리더쉽은 조조와 유비의 리더쉽이 절충되는 것이다. 거기에 더 나아가서 제갈량처럼 세워진 ‘원칙’을 준수하고, 지키는 것. 이게 바로 진정한 리더쉽의 시작이다.
장료는 합비 전투에서 손권의 대군을 상대로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습 작전을 감행하여 승리를 거두었고, 조운은 장판파 전투에서 단신으로 적진을 돌파하여 주군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단순한 복종이 아니라,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최선의 선택을 통해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p 190
앞서 리더쉽을 이야기했다면, 이번엔 조직원의 책임과 의무다. 조운의 장판파전투는 그야말로 조직원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일화다.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다닌 회사에 입사한 20대를 보다보면 혀를 차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내가 본 20대 대다수는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만을 행사하고자 했고, 주어진 책임과 의무는 다할 생각조차 없었다. 오히려 본인이 왜 해야하는지를 반문한다. 거디다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 열을 이야기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비단 이런문제가 내가 다니는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회사 커뮤니티를 보면 내가 겪은 상황과 동일한 현상이 넘쳐난다.
가뜩이나 무능한 리더도 힘든데, 책임과 의무는 개나줘버린 20대 신입사원들. 조직에서 허리역할을 하는 조직원들만 죽어나가는 상황이랄까. 맘같아서는 인간관계고 나발이고 당장 그만두고 싶은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럴 수도 없고, 하. 나는 오늘도 로또 1등을 바라며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