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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RO's Library
  •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 19,800원 (10%1,100)
  • 2024-11-01
  • : 29,801

내 책장 한 켠에는 유홍준 교수(현 국중박 관장님ㅋ)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가 꽂혀있다. 전 권을 다 모은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거의 다 모아버린 상황★ 물론 다 읽지는 못했다. 본디 책이란 모으고 나서야(?) 읽는 법이니까! 고로 이번에 리뷰하는 책은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 시리즈 중 하나인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기존 시리즈인 ‘문화유산’ 답사기 제목만 살짝 바뀐 여행에세이다. 아! 왠지 에세이라는 단어보다는 산문집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이 책은 기존에 유홍준 교수........아, 이제 국중박 관장님.... 유홍준 관장님이 써온 글들 중에서 추리고 추려서, 한 권으로 출간했다. 제목 그대로 유홍준 관장의 인생이 담긴 책이지만, 그가 걸어온 길이 문화유산 한 길인 만큼 이 책 곳곳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아니 뭐, 목차만 봐도 제 2장, 제 3장이 문화유산과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제 2장부터 펼쳤다는 뭐 그런 TMI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시각장애인들이 형상 인식을 어떻게 하는지 대략 알고 있다. 20여 년 전, 원혜영 당시 부천시장과 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관으로 ‘터치 미 뮤지엄’을 세우기 위해 많은 전문가와 함께 사례를 연구하고, 일본 도쿄에 있는 시각장애인 미술관을 현장 답사하기도 했다. 그때 추진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관은 시행 단계에 들어갔을 때 안타깝게도 미술관 부지 주민들이 ‘혐오 시설’이 들어온다며 반대했다. 이후 원혜영 시장이 부천을 떠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p 070


‘터치 미 뮤지엄’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아니 그전에, 문화를 향유함에 있어서 사각지대에 있는 시각장애인이 평면 회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포스아트 기법’). 이제 시각장애인들도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기뻐한 것도 잠시, 다음 장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부천시민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터치 미 뮤지엄’이 혐오시설이라고 단정하고, 무작정 반대하여 결국 무산되었다고.


왜 사람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를까.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촉각인지 미술관은 아주 당연히 비장애인들도 향유할 수 있다. 비장애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눈으로만 관람하던 미술작품을 만져볼 수 있는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뿐인가? 미술관은 조용하고, 작품을 만지면 안된다는 엄격한 규칙 상 미술관 경혐이 전무한 어린아이들에게도, ‘터치 미 뮤지엄’은 어린아이들이 미술작품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었다. 당연히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알음알음 찾아갈테고, 그렇게 유명세를 타며 국내 유일무이 촉감인지 미술관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터치 미 뮤지엄’ 무산은 님비현상, 즉 지역이기주의가 불러온 대표적인 폐해다. 님비현상 말나온김에! 폐기물 처리시설이나  반대라면 어느정도 이해라도 하겠다만, 이건 미술관이 아닌가. 미술관이 왜 혐오시설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그저 ‘장애인’이라는 단어만 보고, ‘혐오시설’이라고 낙인찍은 것인가. 정말 어리석다. 우리동네에 지어지면, 내가 진짜 주말마다 정문 닳도록 다닐텐데...!!!!




문화재청장으로 재임한 지 3년째 되던 해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때 느닷없이 “문화재청장을 오래 지내면서 말 못할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이때 나도 모르게 나온 것은 “100년 뒤 지정될 국보, 보물이 이 시대에 창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는 대답이었다. p 102


문제는 건축이다. 현대건축의 기술과 재료의 발달로 멀쩡한 집을 부수고 재건축하는 일이 다반사인 오늘날의 추세로는 100년을 넘길 건축이 과연 얼마나 남아있을까 싶다. (…)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을 담아낸 ‘현대주택’이 몇 채나 지어졌을까. 그동안 우리나라는 일정 규모가 넘는 집은 ‘호화주택’으로 치부하여 중과세가 부여되어왔고, 호화주택에 대한 국민 정서의 거부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100평 넘는 복충 아파트가 즐비한 오늘날, 100평넘는 저택을 짓는다고 호화주택이라고 비난의 대상이 될것 같지는 않다. 문화재란 최고 수준의 예술, 최고의 기술, 최고의 재력이 만나야 한다. 평범한 주택은 민속이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는 아니다. 사실 보물로 지정된 조선시대 한옥들도 그 당시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라 불린 호화주택이었다. p 103



백 년 뒤면 나 죽은 다음이라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유홍준 관장의 한 마디를 보고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정말 우리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백 년 뒤까지 살아남을 건물들이 없겠구나. 내가 살았던 시대를 알려줄 문화재가 없겠구나, 하고.


현재 우리나라 국보 및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유산 중에는 조선시대 목초 건축물인 ‘한옥’이 정말 많다. 이 한옥들은 조선 양반들, 궁 밖에서 살아야하는 조선 왕실 사람들, 즉 돈 많고 권력있거나, 혹은 지역 유지들이 살던 집이다. 그 뿐인가? 명승으로 정해진 정원, 원림, 별서 등도 엄밀히 따지면 조선 양반들의 별장이거나, 혹은 대궐 같은 집 터에 조성한 정원이었다. 그저 이 별장을 집 근처에 지었는지, 근무지 근처 인지, 그도 아니면 경관이 좋은 강변에 누각만 세운 건지 등으로 나뉠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 백 년 뒤에 유산으로 칭송받을 많안 건축물이나 (개인) 정원이 있는가! 아쉽게도 딱히 떠오르는게 없다. 현재 주거를 위한 건축물은 네모지고 길죽한 시멘트 건물, 아파트로 획일화 되어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단독주택들은 해마다 사라지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아파트들이 들어선다. 결과적으로 우리 시대를 보여주는 건축물이 없다. 전부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개인 정원도 없다.


자, 그럼 별장으로 가보자. 별장은 말그대로 휴양을 위한 별도의 집이다. 누구든 별장을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별장 소유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는 ‘1가구 1주택’이라는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장을 소유하게 되면 1가구 2주택이 되며 그야말로 세금 폭탄이다★ 


생각해보면 주 타겟은 부동산 가치로 현금화가 가능한 ‘아파트’ 단 하나인데, 현금화가 어려운 일반적인 주택까지 가구 보유 수에 포함하다보니 별장 문화가 발달할래야 발달할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1~2백년 뒤에 우리 후손들이 볼 문화유산은,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를게 없다. 오히려 21세기 조상들은 왜 남긴 문화유산이 없는지에 대한 의구심만 키우지 않을까?



​​


※번외편, 업무 어려움을 위트있게 표현한 청장들.


“10만은 200곱하기 500해서 나온 수치인데, 인천에서 강릉까지 동서가 약 200킬로미터, 부산에서 판문점까지 남북이 약 500킬로미터니까 (우리나라 면적이) 10만 제곱킬로미터가 되죠. (평수로 환산) 약 300억평입니다. 참고로 서울이 약 2억 평이고, 제주도가 약 6억 평입니다.” - 통계청장


​“우리나라 면적 300억평 중 3분의 2가 산이기 때문에 산림청은 200억 평을 관리합니다.” - 산림청장


​“경찰청은 에누리 없이 300억 평의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 경찰청장


​“우리나라 바다는 영토의 4배이니 해양경찰청은 1,200억 평을 관리합니다.” - 해양경찰청장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는 것은 5대 궁궐과 40개 조선왕릉이지만 전국에 산재해있는 국보, 보물뿐만 아니라 300억 평 땅속에 있는 매장문화재도 관리하고, 1200평 바다에 빠져 있는 침몰선 200여 척의 수중문화재도 관리합니다. 게다가 천연기념물로 몽골에 가 있는 검독수리, 태국에 가 있는 노랑부리저어새가 잘 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 문화재청장


“우리 기상청은 업무 면적이 평수로 계산이 되지 않아요” -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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