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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RO's Library
  • 한국 정원 기행
  • 김종길
  • 15,300원 (10%850)
  • 2020-06-01
  • : 396

오늘 읽은 인문학책은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만 있던 『한국 정원 기행』이다. 늘 답사를 표방한 여행을 추구하던 나인지라, 옛 정원 또는 별서도 찾아다니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그렇게 한 곳, 두 곳, 답사하는 곳이 늘어나다보니 정원에 대해 제대로된 이해가 필요하지 싶어서 구입했던 책이다. 이 책 속에 나와있는 정원은 50여 곳. 그 중에서 내가 가봤던 곳이 16곳이다. 


이중 경복궁, 창덕궁, 석파정, 청암정, 궁남지, 포석정, 수성동 등 대다수는 사전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갔지만 식영정이나 명재고택, 방화수류정은 정원에 대한 이해도가 꽤 부족한 상태였다. 특히 식영정은 담양에 들렸다가 우연하게 방문하게 되었으며, 방화수류정은 그저 화성에 딸린 저수지정도로, 명재고택 정원은 뭐 다른 사대부 고택에 으레 있는 그런 정원이라는 정도가 끝이었다. 그러다보니 식영정에 갔을 땐 휴대폰을 들어서 열심히 검색! 명재고택 갔을 때도 검색! 거의 그 자리에서 검색하며 배경지식을 탐구하느라 정작 정원은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고나 할까?


진작에 우리나라 정원에 대한 인문학책 『한국 정원 기행』을 읽었더라면, 적어도 검색하는 시간보다 정원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달까.



최근 우리 옛 정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원’ 대신 ‘원림’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고 있다. 그 주장의 근거로 정원이라는 용엉가 일본에서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원이라는 단어는 일본인들이 19세기 후반에 만들어낸 말로 일제강점기때 우리나라에 도입됐다. 그런데 문제는 간단치 않다. 엄밀히 따지자면 원림 또한 중국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p 014



우리 옛 문헌엔 정원이 어떻게 표현됐을까. 가원, 임원, 임천, 원림, 구원, 원정, 정원, 화원, 원 등이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원림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쓰였고, 그 다음이 정원이었고, 다른 이름으로도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소쇄원처럼 ‘원’을 붙여 쓰거나 서식지처럼 정원의 주된 구성 요소를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어느 특정 용어로 통일해서 사용하지는 않았다. (…) 게다가 우리 정원에서 별서 정원의 경우 원림으로 불리는게 타당하지만 주택 정원이나 별당 정원은 원림과 분명 다른 요소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p 016



한국 정원에는 허, 원경, 취경, 다경, 읍경, 환경 등의 다섯 가지 경관 처리 기법이 있다. 비어(허) 있는 누정에서 멀리 있는 경치를 조망하고(원경), 주변 경관을 누정에 모으고(취경), 먼 곳의 다양한 경관을 누정으로 모으거나 누정에서 다양한 경관을 보거나(다경), 누정 속으로 자연 경관을 끌어들이고(읍경), 누정 주위에 자연 경관이 병풍츠럼 둘러(환경) 있게 한다. p 027



이 책에선 정원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비롯하여, 역사 속에서 정원을 누가, 왜, 어떤식으로 조성하였는지, 또 어떤 이름으로 불리웠는지를 쉽게 설명해준다. 거기에 더해 세부적으로는 우리나라에 있는 여러 정원을 소개하며, 그 정원을 어떻게 관람하고 향유할 수 있는지도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책 속에 있는 정원 중 내가 직접 가봤던 정원 두 곳을 이 포스팅에 담아본다.




서울 석파정


흥선대원군이 탐이 나서 빼앗을 정도로 김홍근의 정원은 서울 제일의 명원이었다. 여기서 말한 김홍근의 별원이 지금의 석파정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흥선대원군과 김흥근의 질긴 악연을 엿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은 왜 이곳을 빼앗았고 김홍근은 어찌해서 빼앗길 수 밖에 없었을까. 그 내막을 좀 더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흔히 조선 말기에 세도정치를 일삼았다고 알고 있는 안동 김씨, 그중 ‘장동 김씨’에 대해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p 119



​정조 재위시절 자하동 일대에 살던 안동 김씨 중 당대를 주름잡던 5명을 자하동 김씨, 줄여서 장동 김씨라 불렀다. 장동 김씨 중 한명인 몽와 김창집의 후손이 바로 김흥근이다. 김흥근과 흥선대원군이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었다. 고종을 옹립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사이는 좋았다. 그러나 고종이 재위한 뒤에도 흥선대원군이 계속해서 정사에 참여하자, 이를 대놓고 마음에 안들어하면서 서로 척을 지게 되었다. 이후 흥선대원군은 김흥근이 소유한 땅을 빼앗기 시작했다. 김흥근은 자신의 별서인 ‘삼계동정사’ 만큼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대동하는 방법으로 빼앗고 만다. 빼앗은 ‘삼계동정사’는 ‘석파정’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다. 이 정원의 앞산과 뒷산이 모두 바위이기에 붙인 이름이다. 대원군의 호인 ‘석파’ 역시 석파정에서 유래됐다.


조금더 과거로 올라가보자. 석파정 이전에 삼계동정사, 삼계동정사 이전에는 ‘소운암’이었다. 소운암은 조선 숙종 때 문신인 오재 조정만의 별장이었다. 오재 조정만은 노론의 거두 송시열의 수재자였다. 이 별장을 김흥근이 인수하여 ‘삼계동정사’가 되었고, 이를 흥선대원군이 빼앗아 ‘석파정’이 되었다. 



석파정은 인왕산 기슭 계곡에 있다. 19세기 말 격동의 시대에 왕과 왕실 사람들, 세도가들이 찾았던 비밀의 정원이었다. 예전의 석파정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모양이다. <석파정도> 병풍을 보면 석파정이 지금보다 훨씬 큰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계류를 바라보며 들어앉은 사랑채, 안채, 별채 등은 당시 상류 계층의 정원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p 126



사랑채 옆에는 별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곳에 없다.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사들여 1958년에 자기 집 뒤뜰 바위 언덕으로 건물을 옮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석파랑’이라는 한정식집의 부속 건물로 쓰이고 있다. p 127



석파정을 대표하는 상징 공간은 계곡 깊숙이 숨어있는 정자이다.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계류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점점 깊어지는 계곡 한가운데에 들어앉은 아름다운 정자 하나를 볼 수 있다. 정자의 이름은 ‘유수성중관풍루’, 그 뜻은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바라보는 누각’쯤으로 풀이하면 될까. 가을날 온통 붉은 단풍에 둘러쌓인 이 정자를 바라보다 넑을 잃지 않을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다. p 128



n년전 가을, 엄마와 함께 석파정에 갔었다. 사계절 내 아름다운 석파정이지만, 단풍이 물드는 가을의 석파정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특히 계곡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정자에 올라서서, 단풍구경을 한다면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봉화 청암정


권벌이 청암정을 조성할 때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청암정을 처음 지었을 때에는 온돌방이었고 둘레에 연못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온돌방에 불을 지피자 바위가 소리내어 울었다. 이를 괴이하게 여겼는데, 마침 이곳을 지나던 고승이 “이 바위는 거북형상인데 방에 불을 지피는 것은 거북이 등에 불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요”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거북이를 태울 수 있는 아궁이를 막고 거북이가 물에서 살 수 있도록 바위 주변을 사방으로 파내어 연못을 만들고 물을 채웠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한다. p 264



처음 정원에 들어서면 연못 좌우로 풍경을 훑어보고 충재 쪽마루에 걸터앉게 된다. 충재는 선비의 공간인 만큼 단아하고 간결하다. 권벌은 평소 충재에 기거했는데, 평생 《근사록》을 즐겨봐서 충재에 ‘근사재’라는 현판을 걸었다고 한다. 잠시 충재에 걸터앉아 정원 안 풍경을 감상했다면 이제 연못을 건널 차례다. 연못에는 돌다리가 놓여있고 돌다리를 건너면 거북바위이고, 바위 위 돌계단을 오르면 정자 청암정에 이른다. 거북바위를 중심으로 삽아을 빙 둘러서 판 연못으로 인해 평범했던 바위 공간은 현실 세계인 인간의 땅과 구분되는 이상 세계인 무릉도원이 됐다. p 267



청암정은 봉암 닭실마을에 있는 정자다. 기묘사화 때 파직되어 귀향한 충재 권벌이 세웠다. 권벌은 귀향 후 안동이 아닌 봉화 닭실마을에 터를 잡았는데, 닭실마을이 권벌의 외가가 있는 곳이자, 어머니 파평 윤씨 묘소가 있던 곳이었다. 내가 청암정에 관심을 갖게 된건 사극에서 종종 그 풍광이 나오면서였다. 그래서 안동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봉화 닭실마을에 들렀고, 운 좋게 충재 권벌선생의 후손을 만나 연못 돌다리를 건너 청암정 내부까지 들어가는 귀한 경험까지 했으니 이 얼마나 운이 좋았던건지!



훗날 내 딸과 다시금 청암정에 들르게되면 그때 딸에게 자랑해야지. 엄마는 여기 돌다리도 건너봤다고! (※원래 청암정 내부관람은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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