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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RO's Library
  • 작전명 여우사냥
  • 권영석
  • 16,200원 (10%900)
  • 2025-08-20
  • : 370

오늘 리뷰하는 역사소설 『작전명 여우사냥』은 일제가 민비를 암살한 사건, 을미사변에 대한 소설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쓰신 임진택 연출가님 말씀처럼 읽는 내내, 꼭 2025년이 1895년의 옷을 입은 채 이야기가 진행되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님은 이런 시대상황을 고려하여, ‘을미사변’이라는 주제를 채택하고 이렇게 소설을 쓴게 아닐까?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면,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인 을미사변을 주제로한 소설이기에 당연히 실존인물들이 대거 나온다. 하지만 소설을 끌고 가는건, 민비 호위대장을 맡은 가상인물 ‘이명재 ’다. 이 인물은 동시간대에 살고 있는 개화파 성향을 다분히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덕분에 가상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실존 인물이었던 것마냥 현실성이 돋보이는 캐릭터다. 또한 실제 사건의 흐름 속에 비어있는 공간을 이명재를 끼워넣음으로서, 소설로나마 비어있는 퍼즐을 맞추며 완벽하게 만들었다.




이명재는 사실 ‘친일’, ‘친러’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외교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 아닌가. 어느 나라든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유길준과 중전 민씨가 말하는 ‘친일’과 ‘친러’는 그런 외교가 아니었다. 자주성을 결여한 사대주의에 가까웠다. 그는 믿었다. 나라를 구하고 바꿔나가고자 한다면 백성과 함께 자주적인 힘으로 이뤄내야 한다고. p 084



제목인 『작전명 여우사냥』은 일제가 민비를 암살할 때 사용한 실제 작전명이다. 




을미사변에 대한 내 생각을 잠시 말해보면, 1895년 을미사변은 일본이 민비에게 준 ‘면죄부’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하고, 우리 조상들이 ‘조국’을 잃게한 일제. 그런 극악무도한 일제가 민비를 암살했으니, 백성들 입장에선 민비가 아닌 극악무도한 ‘일제’만 보일 수 밖에 없다. 고종과 민비에게는 이만한 면죄부가 또 어디있을까?



소설은 얼핏 보면 고종과 민비, 그 수족들의 부정부패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근데 조금 다르다. 읽으면서 미묘한 균열이 느껴졌다. 저자는 모든 탐욕과 죄악을 민비에게 부여하고, 고종은 그저 민비의 말을 거스를 수 없는 ‘무능’한 존재로만 그렸기 때문이다. 민비가 쎈 여성이었다한들, 고종의 탐욕 역시 민비에 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죄를 ‘민비’에 떠넘기고, 고종은 그저 ‘무능’이라는 단어 하나로 포장된 느낌이 참 별로였달까. 분명 고종과 민비는 공동정범인데, 소설 속 이미지는 민비가 주범이고 고종이 종범인 느낌이다.



굳이 추측하자면 고종과 민비를 통해, 2025년 내란을 주도한 윤석열과 그 뒤에 있었던 김건희를 떠올리게끔 하고자 의도한 소설적 장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굳이 이미 폐기된 ‘무능한 고종’같은 이미지를 다시 가져올 필요가 있었을까. 비슷한 예로 고종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얼토당토한 이미지도 한때 유명했었다. 그나마 요즘은 고종의 탐욕과 망상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왔는지, 널리 알려져있어서 다행이랄까.



늘 강조해도 부족하지만, 고종과 민비 그리고 민씨척족들의 부정부패는 정말 끊임없었다. 이 소설 시작부터 언급되는 ‘진령군’도 그렇다. 고종과 민비가 무당 진령군에게 가져다 바친 국고가 얼마이며,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서양, 일본에 철도부설권 및 산림채굴권 등 각종 이권을 헐값에 팔아넘긴건 또 얼마인가. 동학군을 토벌하라고 지시한건 대체 누구란말인가. 



동학군을 몰아내기위해 창고에 있던 개틀링건을 꺼내어 사용하게 한 것도 고종이고, 동학군을 몰아내겠다고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한것도 고종이다.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면, 청과 맺은 조약에 따라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오는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동학군을 몰아내기 위해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한 사람도 고종이다. 고종에게 동학군은 자신이 지켜야할 백성이 아니라, 자신의 권위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역도 그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단연코 고종은 동학군을 토벌하려고 했지, 살리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중에선 고종이 동학군을 살리고자 묘사한 장면이 있다보니 어디까지를 소설적 허용으로 봐야할지 애매하다.



단연코 고종과 민비는 조선 백성 손으로 끌어냈어야 했고, 당연히 조선 백성 손에 처결되었어야 할 망국의 원흉이었다. 



‘어찌 일국의 왕비를 이토록 잔인하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분노가 치밀었다. 위쪽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많은 없었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중전 민씨의 시신을 끌어당겼다. 그렇게 중전의 머리가 지하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살리기 위해 팠던 지하통로가, 이제 시신을 옮기는 통로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p 273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처단해야만 했던 부패한 민비를 일제가 암살했다는 사실이. 우리는 암살당한 왕비를 동정하는게 아니라, 부패한 왕비를 몰아낼 정당한 권리를 빼앗아 간 일제에 분노해아한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부패한 왕비라는 사실을 떠나서 타국의 왕비를 잔혹하게 죽인 일제에 분노하는 것까지, 딱 거기까지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을미사변에 대해, 오랜시간동안 앞서 말한 분노가 아니라, ‘암살당안 가련한 왕비’에 대한 동정 여론을 호소했다. 왜? 정당한 분노를 가질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민비의 악행은 숨기고 ‘일제’와 ‘잔인함’에 초첨을 맞춰, 민비를 그저 가련한 피해자로 만든 역대 정부의 영향이 컸다. 



그렇게 정당한 분노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어줍잖은 동정심은 많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대표적인게 바로 역사왜곡이다. ‘명성황후’ 하면 떠오르는 드라마 및 뮤지컬에서 만들어진 “내가! 조선에 국모다!!” 라고 말하는 그 이미지 말이다. 지금이야 여러 역사학자들을 통해 고종과 민비의 탐욕과 욕심에 찌든 행보가 많이 밝혀졌고, 공교육에서도 일면 다루고 있다는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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