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리뷰하는 소설책은 『영이의 고독』. 오랜만에 읽는 한국 장편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역사장르가 가미된 글만 읽는 편이지만, 독서 편식은 좋지 않으므로! 취향이 아닌 책이라도 한 해에 5권 정도는 읽으려고 노력중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영이는 교실 한 켠에, 사무실 한 켠에 있을 법한 그런 여학생 또는 여성을 대변한다. 좋게말하면 착하고 온순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내성적이고 주체적이지 못하며 소극적이다. 누군가 대신 나서서 자기를 꺼내주기를 원한다. 이러한 영이의 성격(또는 성향)은 그녀의 인생은, 흔히들 말하는 그저 그런 인생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바라던 행운이 들어왔음에도, 그간의 삶에서 배운거라곤 ‘주체적이지 못한 본인’이었기에 행운을 잡을 수 조차 없는 소극적인 여성으로 말이다.
현경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아이였다면, 영이 역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주변 상황에 지나치게 긴장하고 걱을 먹고 위축되는 아이였다. 물론 영이도 걱정했던 거소가 달리 자신에게서 의외의 재능이 발현될 수도 있나는 희망을 잠깐 품긴 했다. p 028
말을 하고 보니 논리가 그럴듯하다 싶었던지 아버지는 뻥튀기 튀기듯 화를 부풀렸고 종내에는 자신이 그날 직장을 때려치우고 대낮부터 술을 먹게 된 것도 어머니의 아둔함과 교양 없음과 무신경 때문이라고 핑계대기에 이르렀다. 지난번 실직 이후로 꼬박 1년 2개월을 무직으로 지낸 뒤 옜 동료의 소개로 다시 일을 시작한 지 고작 8개월 만에 다시 일을 하지 않겠다는, 혹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선언을 그런 식으로 한 것이었다. p 047
영이의 일생은 학창시절 사격부원, 중학교 졸업 후에는 주/야간이 나뉜 상고 학생, 상고 야간반으로 변경 후 낮에는 대학교 급사(사무보조원)을 했고, 이 후에는 경리, 그리고 요양보호사로 나뉜다. 청소년기 사격부원이 되었던 그저 키가 크다는 이유로 강제 차출이었다. 총소리를 무서워하고, 재능도 없었던 영이가 사격부원을 계속 했던건 ‘하고싶지 않다’는 의사표현을 할수 없었기 때문에. 사격부 내에서 각종 폭력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영이는 그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었다.
영이의 성인기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사무보조원, 경리, 요양보호사, 그녀가 종사한 직업이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직군들은 고스펙 고임금은 커녕, 고난도의 능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소득기준으로 볼때는 하위에 속하는 직업군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회에서 없으면 안되는 직업군이기도 하다.
사무보조원이 있어야만 사무실 행정이 원할하게 돌아가고, 경리가 있어야만 회사의 자금 흐름이 원할하게 돌아가며, 요양보호사가 있어야만 노년층의 일상을 지원해줄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직업군들은 꼭 필요로 하지만, 고된 일을 도맡아야 하며, 임금은 적고, 누군가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직업군인 것이다. 슬프게도 현재 이런 직업군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이며, 영이가 해당 직업을 가졌을 때와 비슷한 연령대다. 어찌보면 영이는 희생이 당연했고, 희생을 강요당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속에서 잊혀진 그 시절 여성을 집약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성인이 되자 영이는 조금 변했다. 소심하고 주눅 들고 주변의 눈치를 보는 성정에 새로운 것들이 보태졌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으나 염증, 불안, 절망, 상실 혹은 긴장과 비슷한 감정들이었다. 그것들은 원래 있던 것들과 뒤섞여 시시때때로 영이를 괴롭혔다. 낮에는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으나 밤이 되면 미래에 대한 희망없음으로 인해 숨이 막히는 듯 했다. p 131
너는 어쩜 하나도 안 변했다. 깨순이도 영이를 신기해했다. 누군가 부르면 겁먹은 표정을 짓고, 늘 고개를 숙인 채 걷고 너무 작은 목소리로 예기하던 어릴 때와 전혀 다르지 않다며 지금도 속이 상하거나 억울한 일이 생기면 따지거나 불평하는 대신 눈물을 흘리며 눈만 껌벅이느냐고 물었다. p 177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떨어지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 불운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무보조원, 경리,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다들 영이처럼 살지는 않는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도 많다. 언젠가 찾아올 행운을 모르고 놓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기를 갈고 닦는 사람도 많다. 적어도 영이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고 살았던 사람들이, 모두다 영이처럼 사는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난 이 소설을 다 읽은 이 시점에서도, 영이의 삶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공감하기가 어렵다. 내가 살아온 환경 조건이 영이와는 너무 달라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난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기에. 어쩌면 영이에게 공감 못하는 내 자신이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끝맛이 쓴 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