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의 나라 조선. 그런 조선을 개혁하고자 뜻있는 유학자들이 새로운 학풍을 제시한다. 경세치용, 실사구시, 이용후생을 기본으로 한 조선후기 ‘실학’이다. 실학파도 세부적으로는 경세치용학파, 이용후생학파로 나뉜다. 경세치용학파는 농업 중심의 개혁론이라면, 이용후생학파는 중/상업 중심의 개혁론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론 ‘실학파’라고 하면, 중/상업 개혁을 말한 이용후생학파, 즉 ‘북학파’를 떠올리곤 한다. ‘북학파’의 대표적인 유학자는 박지원을 비롯하여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이 있다. 국사 시간에 한번 쯤은 들어봤을 이름들이다.
이렇게 북학파 이야기로 시작하는 건, 이 역사소설 『안의, 별사』 주인공이 바로 북학파의 영수였던 연암 박지원이기 때문이다. 연암은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을 연구하며 『열하일기』, 『허생전』 같은 저술을 남기기도 했다. 실력도 매우 뛰어났던 그지만, 출세에는 뜻이 없었다.
나라의 기강이 위에서부터 무너진 지 오래고, 지방관 역시 알량한 벼술자리나마 잃게 될까 제 몸부터 사린다. 아무도 이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도리어 모나지 않는 처세라 합리화한다. p 044
“공부가 과거를 보는 수단이 되는 걸 경계하라는 말이지. 사람 되기를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다. 글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해서 다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더라마는.” p 176
“우리 반남 박씨 집안은 누대에 걸쳐 청빈과 검소를 실천하며 부귀와 안일을 멀리해왔다. 이는 타고난 데다 가풍을 따른 것이다. 너희가 또 나를 보고 배울 것이니 나 또한 너희 앞일지라도 조심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 너희가 따뜻한 옷을 입고 배부르기를 바라지만 어디까지나 아비로서의 인정일 뿐이다. 인정은 자칫 의를 그르친다. 내 바람은 두 가지다. 삿됨을 분별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 사대부 집안으로서 글 읽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으면 하는 것. 그 뿐이다.” p 176
연암이 살았던18세기 조선은, 위 소설속 내용으로도 충분히 유추가 가능할 만큼 양반네들은 부패했고 백성들의 삶이 궁핍했다. 백번 양보해 모두가 잘사는 나라는 아니더라도, 백성들이 배는 곯지않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어야 할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욕심 채우기에 급급했다. 아무리 좋은 개혁안이 있다치더라도, 사농공상 및 유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모조리 차단되는 세상이었다. 이런 세상이다보니 연암은 더더욱 조정에 나갈 뜻이 없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재야에 있기엔 연암의 학문이나 능력이 워낙 출중했기에,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늦게나마 출사길을 걷는다.
연암은 여러 관직을 거쳤는데, 그 중 1792년 안의 현감을 지냈을 때가 이 소설의 배경이다.

무릇 역사소설은 사실과 허구가 혼재하여, 왜곡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설은 왜곡 논란에서 사뭇 자유롭다. 왜? 저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연암 덕후였다. 연암에 대한 모든 것을 공부하며 그의 자취를 쫓았다. 그렇기에 저자는 소설을 쓰면서, 알려진 연암의 자취를 소설 속으로 무리없이 옮겨올 수 있었다. 다만 연암의 생애 중 비어있는 구간을 허구로 채웠는데, 그 허구가 바로 연암이 안의 현감을 지냈을 시기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적 허용을 빌어 무책임한 왜곡을 저지르고 싶지 않다고. 하여 소설적 허구를 반영함에 있어서도, 밝혀진 연암의 생애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반영했다. 따라서 허구적 장치는 안의면에서 만났던, 가상의 여인 ‘은용’과 그녀의 서사 정도다. 하지만 이 조차도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게. 역시나 연암의 생애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만 활용되었다.
특히 은용의 서사는 오히려 알려진 조선 후기 첩의 여식의 삶, 과부의 삶과 비교하면 비교적 담담하고 담백하게 서술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홀아비 였던 연암의 삶과 더욱 비교가 되어, 은용의 삶이 더 처절하고 기구하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는 홀아비다. 아무도 내게 수절을 권면하지 않는다. 벗들도 집안사람들도 궁색히 여겨 볼 때마다 오히려 재혼을 권한다. 아내보다 내가 먼저 죽었다면 누구도 아내더러 개가를 권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가한 여인의 자손과 첩실의 자손이 받을 부당한 대우는 차지하고서라도, 세상은 온통 여인에게만 부부간의 신의와 절개를 강요한다. 불공평하다 못해 해괴하다.
유금과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성대중, 백동수, 이희경…. 나는 내 벗들이,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는 따돌림과 핍박을 당하며 살아온 삶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다. 그들은 그들이 저지르지 않는 죄목으로 대가를 치르며 살았고, 살아간다. 그들을 이 세상에 내보낸 그들의 아버지들조차 자식이 받는 불이익에 침묵한다. (…)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된다. 나의 적은 나의 마음이고, 욕망을 비우고자 하는 마음의 나의 것이다. 하므로 신독,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언행을 삼갈것, 이를 내 여생의 수행의 화두로 삼는다. p 330
그래서 은용이 ‘인연 없음’을 방패삼는 모습에 가슴이 아렸다. 또한 은용과는 다르면서도 같은 연암의 도리가 마음을 울렸다. 그렇다. 이 소설은 연암과 은용의 ‘단심(丹心)’을 고스란히 담아낸 소설이다.
국어사전은 ‘단심’을 이렇게 설명한다. 속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스런 마음이라고. 연암과 은용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로, ‘단심’만큼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대게 생각은 다 망상이요, 인연은 다 악연이다. 생각하는 데서 인연이 맺어지고, 인연이 맺어지면 사귀게 되고, 사귀면 친해지고, 친하면 정이 붙고, 정이 붙으면 마침내 이것이 원업이 되는 것이다. 죽음이 참혹하고 공교로우면 평생 서로 즐거워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데 마침내 재앙과 사망으로 인해 혹독한 고통이 뼈를 찔러댄다. 이것이 어찌 망상과 악연이 합쳐져서 원업이 된 게 아니겠는가. p 395, 애사
뜰을 이리저리 어정어정 걷다가 뛰기도 하고, 점잖게 걷기도 하고, 달그림자와 서로 장난을 치기도 한다. 명륜당 뒤뜰의 오래된 나무는 우거져 하늘을 덮었고, 서늘한 이슬이 동글동글 맺혀 잎사귀마다 구슬을 머금었으며, 진주 같은 이슬은 달빛에 반짝인다. 애석하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밤, 이렇게 좋은 달빛에 함께 놀 사람이 없다니. p 444, 미혹
▶『안의 별사』에서 인용한 연암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