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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RO's Library
  • 샤머니즘의 세계
  • 이상화
  • 16,920원 (10%940)
  • 2022-10-05
  • : 187

잊을만하면 읽게 되는 책 중 하나가 민속신앙(샤머니즘) 관련 책이다. 민속신앙은 거대 종교로 인해 많이 잊혀졌고,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여러나라에서 명맥이 남아,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거대한 파도가 몰아쳐 휩쓸려도, 어떻게든 살아남는 민속신앙. 역사 속에서, 구전 설화에서, 각종 유물에서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는 민속신앙. 심지어 민속신앙은 인문학적 사고의 토대가 되었다.





지금까지 샤머니즘의 원형이 잘 보존된 지역은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일대다. 학계에서는 시베리아의 정통 샤머니즘이 아시아 일대를 시작으로 세계 전역에 전파되었다고 본다. 그렇게 전파된 샤머니즘은 각 지역 특성에 맞게 변화되었고, 어떤 지역에서는 종교로 발전하기도 했다. 시베리아에서 샤머니즘이 태동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인류의 이동과 관련이 있다. 



고대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찾기 위해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이들중 일부가 시베리아로 북상했다. 그렇게 바이칼 호수에 다다랐을때, 영하 70도라는 신빙하기가 찾아왔다. 극한의 추위로 인해 더이상 이동이 어려웠던 이들은, 바이칼 호수 일대에 흩어져, 서로 무리 지어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이칼 호수 일대에는 수많은 소수민족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극한의 추위를 자랑하는 곳. 추위로 인한 굶주림과 질병 같은 고난이 따라왔다. 이들이 고난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하늘에 기도를 하는 방법밖에 없던 것이다. 그렇다. 바이칼 일대에서 샤머니즘이 태동한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놀라운 점은 바이칼 일대에 사는 소수민족들은 서로 교류가 없었기에 언어마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샤먼이 등장했다. 비단 바이칼 호수 일대 뿐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4대 문명이 탄생했다. 각 문명들 모두 하늘신이든, 태양신이든 숭배하는 신이 있었다. 이는 여러나라에서 발견되는 고대 유물인 ‘비너스상’ 처럼 ‘문화의 보편성’의 한 사례라 볼 수 있다.




샤머니즘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초자연현상을 믿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벗어나 초능력이나 초자연현상을 일으키는 신이 있으며, 살아 있는 동식물에는 정령, 죽은 자에게도 혼령이 있어서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것이다. p 016


정통 종교가 탄생하고 여러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면서 샤머니즘과 결부되고 타협했다. 정통 종교도 신을 숭배하며 사후 세계를 존중하고 강조하기 때문에 샤머니즘을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정통 종교의 기도와 샤머니즘의 주술, 예배의식과 샤머니즘의 의례의식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의 부두교와 같은 종교는 샤머니즘에서 파생됐다고 할 수 있다. p 022








여기서 책 내용과는 상관없는, TMI를 풀어보자면.


무엇보다 바이칼 호수 일대는 우리와도 어느정도 연관이 깊은 곳이다. 왜? 한국인의 직접적인 조상이 바로 신빙하기 때 바이칼 호수에 갇혀, 극한의 추위를 이겨낸 인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북방계’ 인류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화학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바이칼 호수 일대 원주민과 우리나라와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는 역사/문화적 증거로 한 바이칼 호수 일대 원주민과 우리나라와의 연관성이다. 우리나라에 세워졌던 여러 고대국가중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가 있었다. 바로 신라다. 다른 나라와 달리 신라는 황금문화(+사슴뿔모양 금관)는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출토된 유물을 확인한 결과, 고대 신라와 동일한 문화를 가졌던 곳을 찾아냈다. 바로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일대였다. 황금문화 말고 하나 더. 고대 신라인은 자작나무를 이용한 생필품을 사용했다. 남부지방인 신라에는, 추운 지역에서 자생하는 자작나무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인들은 바이칼 호수 원주민들처럼 자작나무 생필품을 사용했다. 이 외에도 문무대왕릉비에 기록된 신라 김씨 기원이라는 ‘투후’도 있다. 지금까지 출토된 이러한 유물만으로도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일대와 우리나라가 큰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샤먼의 역할과 기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신 또는 죽은 자의 영혼과 살아 있는 사람을 연결하는 중개자라고 할 수 있다. 샤먼이 인간 사회에 가장 먼저 나타났다는 시베리아, 북아시아에는 튀르크족을 비롯해서 알타이족, 야구트족, 예벤크족, 부랴트족, 몽골족 등 100여 민족이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퉁구스어로 ‘무아지경’, ‘몰아지경’, ‘망아지경’ 상태에서 지식을 얻는 사람을 ‘사만’이라고 한다. 샤먼은 이 ‘사만’에서 유래했다. 물론 샤먼이 인도 고어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 여러 견해가 있지만 퉁구스 토착어라는 견해가 가장 지배적인 학설이다. p 040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는 18개의 섬이 있는데, 그 중 유일한 유인도가 ‘올혼 섬’이다. 한 때는 러시아 정치범 유배지이기도 했던 올혼 섬은 아주 오래전 부터 샤먼의 고향, 신들의 고향이라 불렸다. 올혼 섬에는 샤머니즘 유적이 곳곳에 있는데, 일부 유적은 우리나라 솟대와 서낭당과 비슷한 형태도 볼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위에서도 말했듯 샤머니즘의 기원이 바이칼 호수 일대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파된 샤머니즘이 각 나라 특색에 맞게 변형되었고,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서낭당이나 솟대 역시 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올혼 섬에선 매년 7월이 되면 ‘국제샤먼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이렇게 샤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할라치면 대체적으로 발원지인 시베리아를 비롯한 아시아 일대 사례가 나오곤한다. 그러다보니 샤머니즘이 아시아권의 고유 민속신앙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절대로 아니다. 역시나 위에서 언급했듯 시베리아에서 발원한 샤머니즘은 아시아를 비롯해 유럽 권역까지 전파되었다.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이 직접적으로 전파되지는 않았더라도, ‘문화의 보편성’에 따라 동 시간대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같은 여러 신앙이 나타났다. 그 중 대표적으로 켈트족 신화가 있다. 켈트족은 게르만족과 함께 유럽인의 뿌리다.








켈트족의 드루이드는 사제, 교사, 법관 등의 역할을 한꺼번에 담당했다. 그만큼 존경받는 최고의 계급이었다. 드루이드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모든 제사를 주관했고 젊은이들에게 교사로서 모든 지식을 가르쳤다. 그뿐만 아니라 갖가지 분쟁을 심판해 처벌하는 재판장이었다. 드루이드가 내세우는 삶의 철학은 ‘영혼불멸’이었다. 영혼불멸은 그들이 신봉하는 믿음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관이었으며 신앙의 교리라고 할 수 있다. 켈트족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의 문화는 드루이드의 구술로 계승되고 전해졌다. p 064


드루이드는 고대 유럽에서 샤먼의 역할과 기능을 했다. 온갖 질병을 고치기도 했으며, 의례/의식을 통해 죽은 자의 영혼과 소통하면서 살아있는 사람과 중개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고대 유럽의 종족들에게 샤머니즘은 절대적으로 삶을 지배하는 신앙이었으며 종교였다는 사실이다. p 066


*‘나무를 보는 사람’이라는 뜻의 드루이드. 지식을 기록하지 않고 말로만 전했기 때문에 그들의 행적이 기록된 문헌은 드물다. 기원전 2세기 무렵 그리스의 소티온이 그의 저서에 이들을 드루이다이로 표기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한마디로 샤머니즘은 시베리아, 아시아를 넘어 동시간대 유럽권역까지 널리 전파되어 있었다. 하지만 불교와 기독교 등 신흥종교가 나타나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샤머니즘은 그 입지가 빠르게 좁아졌다. 이들 신흥종교들은 샤머니즘을 ‘미개하다’는 이유로 탄압하거나, 반대로 신흥 종교를 빠르게 전파하기 위해 샤머니즘을 ‘흡수’했다. 예컨대 기독교는 샤머니즘을 탄압했고, 불교는 샤머니즘을 흡수했다. 


샤머니즘을 흡수한 불교의 대표적인 사례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불교는 민속신들을 불교신으로 포용하여, 사찰에 그들을 위한 법당을 만들었다(칠성각, 산신각 등). 반대로 샤머니즘을 탄압한 기독교의 대표 사례는 중세시대 유행했던 ‘마녀사냥’이 있다. 대대적인 탄압으로 인해 서양에선 샤머니즘이 그 씨가 말랐지만, 아직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다. 바로 10월 31일 핼러윈이다. 핼러윈은 원래 켈트족의 축제였다. 


켈트족은 10월 31일에 지하세계에 있는 저승의 문이 열려 죽은 자의 영혼과 악령이 이승으로 올라온다고 믿었다. 하여 조상들과 죽은 자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사람들을 괴롭히려고 나타난 악령이 자신들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분장을 했다. 뿐만 아니라 순무를 귀신형상으로 파내어, 그 안에 초를 넣고 밝혔다. 제 아무리 샤머니즘을 탄압한 기독교일지라도, 모든 이가 참여하는 축제만큼은 없애지 못했던 것이다. 없앨수 없었기에, 그들은 핼러윈을 기독교로 흡수했다. 




여기까지! 킬링타임용으로 읽은 인문학책 치고는 꽤 내용이 풍부하여, 킬링타임이 아니게 되었..지만. 가끔 생각나면 읽을 책 리스트에 포함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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