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서 ‘취향’ 뜻을 찾아보면 이렇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취향’의 뜻을 알았으니 이제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바로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왜? 자신의 취향을 바로 설명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본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뜻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취향을 바로 대답한다. 그 누군가는 연예인, 가족, 친구 등 모두다.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바로 대답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잘 모르는 모순을 안고 있다. 타인에게는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무관심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에세이 『취향껏 살고 있습니다』를 추천하고 싶다.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 ‘취향’ 덕분에 금방 회복한다. 위에서도 말했듯 취향은 본인이 하고 싶은 무언가(또는 좋아하는) 이기 때문에, 취향에 맞는 무언가를 하다보면 점점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취향이 있다는 건, 그만큼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좋다는 이야기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취향을 모르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그때마다 내가 느낀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나만의 시간을 얼마 보내지도 못하고 잠든다는 게 억울해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오기를 부리며 매일 늦게까지 시답잖은 일로 시간을 보내다 잠들었고, 아침이면 피곤해서 오늘은 진짜 진짜 일찍 잘 거라고 울먹이며 다짐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점점 흐려지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자기 일에 불평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p 026
차오르는 감정을 다 쏟아 내고 싶은 날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 앱을 연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의 소리를 뭉뚱그리지 않고 직시하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내 마음을 마주하면 감당하기 힘들어서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다 쓰고 나면 마음이 정리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기에 계속 썼다. 하루는 마음이 울적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는데, 문득 내가 ‘쓰는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다. 쓰면서 풀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평온해졌다. 내 머릿속 생각을 씀으로써 나와 떼어 놓을 수 있다는 건 나만의 피난처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이었다. p 047
현재 ‘취향껏 살고 있다’는 저자는 처음부터 취향이 확고했을까? 아니다. 저자도 그랬다. 시련에 맞닥뜨렸을 때, 훌훌 털어내지 못했다.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니, 뭘 어떻게 해야 내 감정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지 몰랐던거다. 그래서 주저 앉았고, 치열하게 고민해고, 찾아냈다.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힘든 상황에서도 헤쳐나갈 수 있는지를.
‘이 정도면 괜찮다’와 ‘여기라서 행복하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나의 돌파구가 이 지점에 있는 것은 아닐까.
취향껏 살고 있습니다. p 112
저자가 찾아낸 자신의 취향은, 본인이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을 바꿔나가는 것. 한마디로 살고 있는 집 인테리어다. 마음속 여유가 없을 때마다,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저자는 자신이 사는 곳을 조금씩 꾸미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인테리어! 저자는 인테리어를 하며 안정을 찾았다. 그 결과물이 바로 에세이 곳곳에 멋진 사진으로 실려있다. 흡사 ‘오늘의 Home’에서나 볼법한 멋진 인테리어 사진들. 저렇게 멋진 집으로 꾸며낼 수 있었던 건, 저자가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나는 내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까? 과거에는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 ‘취향’을 물어보면 즉답할 정도로, 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비교적 빠르게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요즘은 그냥 안으로 눌러담고 있다. 언젠간 이마저도 무뎌질 날이 오길 바라며.
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고요하게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잠시 할 일로부터 떨어져 말랑해질 시간이 꼭 필요했다. 멍하니 있는 시간에는 과거의 일에 집착하지도, 오지 않는 미래를 꿈꾸지도 않았다. 그저 현재에 머물렀다. (…) 한때는 그런줄 모르고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수없이 자책했다.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해서 잠시 멍하니 있었을 뿐이라는 걸 알게된 지금은 오히려 나에게 시간을 쥐여 주려고 노력한다. p 153
아이들은 세상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처음 경험하는 것투성이라 두려워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배워 나간다. 누구에게나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그 때의 마음을 쉽게 잊곤 한다. 여러 번 해 본일은 쉽게 지루해지기 마련이고, 현실의 중압감에 시달려 어린 시절에 무엇을 좋아했는 지 떠올릴 겨를조차 없다. 나 역시 세상이 놀이터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거 간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정작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 채, 바쁘다는 걸 위안 삼아 살아가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무감각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세상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마음을 잃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p 170
에세이 『취향껏 살고 있습니다』, 하루가 견디기 버거워진 사람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