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이 한창 난리였을 때는 한국 영화가 칸 황금종려상이나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한 논평들이 많았던 것 같다. 비평이 아니라 기사로 소식을 많이 접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전문가들이 으레 그렇듯 나도 영화를 줄거리나 연기에 집중해서 볼 때가 많다. 연출이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영화는 재미가 없고, 상업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내 눈으로 봐도 비평할 만한 지점이 얕아서 영화 비평글은 항상 어려웠다. 봉준호 감독은 재미로 보나 예술로 보나 흠잡을 데가 없어서 책 읽는 것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디 가서 말하기도 좋고.
좀 더 심층적이고 영화 간의 유기적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 감독의 영화 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단행본이라는 점이 좋았다. 이 책을 읽고 이상용 평론가의 글을 몇 편 더 찾아봤는데, 너무 어렵지 않은 언어로 해석을 풀어내서 앞으로도 작가의 이름이 보이면 찾아 읽을 것 같다. 영화를 깊이 읽는 데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봉준호 감독 역시 이를 충분히 다루면서도, 이야기 속에 상반되거나 길을 잃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삽입해놓는다. 그것은 한 편의 영화가 오로지 하나로 완성되는 이야기의 길이 아니라 수많은 길이 교차하는 장소임을 보여준다.- P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