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수록된 열여덟 편의 시와 스물 한 편의 산문(그 중 헤세가 아닌 제 지은 시가 아닌 것도 있지만)이 모두 나무라는 하나의 소재에서 나왔으며 어느 정도 비슷한 색감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제각기 조금 씩 다른 빛을 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헤세의 시는 은은하지만 강렬한 감정을 품고 있다.
그 감정은 잎 빨간 너도밤나무, 밤나무숲의 5월과 같은 에세이에서도 느껴지지만, 조금 더 절제되고 파편화된 단어들 속에서 그의 그리움과 사랑을 더 가시화된다.
그 중 제일 큰 울림이 왔던 것은 내 마음 너희에게 인사하네와 슈바르츠발트였다.
내 마음 너희에게 인사하네는 소년시절과 여전하게 강인한 형상을 한 나무와 그가 상기시켜주는 소년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 해준 시로 특히 마지막 연의 두 행이 공감갔다. 첫사랑, 혹은 첫번째로 느낀 강렬한 감정은 확실히 첫번째로 경험해본 것이라는 점에서 그 후에 비슷한 인상을 주는 사건이 일어나도 그때만큼의 울림과 색채를 보여주지 못한다. 이미 첫번째 시행착오를 통해 고통과 행복 모두를 느껴보았기 때문이고 그 두 감정은 시간이 지날 수록 어느정도 익숙해져버리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는 무뎌지고 한번 무뎌진 정신은 날붙이에 비해 다시 벼리기 힘들다. 그 후부터는 정말 헤세의 말처럼 아픈 메아리일 뿐이다.
슈바르츠발트는 그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슈바르츠발트(검은 숲)에 대해 쓴 시로 앞의 시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연이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정말 소년시절의 헤세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어떤 감성으로 삶을 바라보면 이런 문장들을 쓸 수 있을지 감탄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현재에 몰두하기 급급해 유년 시절의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그리움의 미학을 통해 그러지 말 것을 간곡하게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삶의 무게에 조금씩 압도당하는 현대인들에게 모두 읽어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연결된 소설이 아니라 흐름이 끊길 위험도 없고, 두께도 얇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은 상당히 낮다. 곳곳에 수록되어있는 정밀화들과 따뜻한 책의 색감은 말라버린 우리의 마음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평상 시 책을 읽을 때 음악감상은 지양하는 편이지만, 이 책만큼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와 함께 읽어보는 게 어떤 가 추천하고 싶다. 비창의 섬세한 감성과 헤세의 글은 조금 낯설지만 이질적이지 않게 잘 어우러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시절 이후 내가 노래한 것은
그렇게 달콤하고 그다지 독특하지 못했어,
그건 모두 첫사랑의 울림과 빛을
아프게 따라 한 메아리였을 뿐이네- P13
그 시절 소년이던 내 눈엔
먼 곳이 더 고귀하게, 더 폭신하게,
전나무숲을 화관처럼 두른 먼 산들이
더 행복하게 풍성하게 빛났으니까- P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