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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道

이 책은 작년에 출간된, 강신주 [장자와 노자]와 비교된다. 두 분 다 어찌 보면, 장자로부터 노자로 거슬러 간 격인데, 그 결론은 사뭇 상반된다.

강신주씨는 장자와 비교하여 노자는 국가주의적이며, 심지어 파시즘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기세춘 선생님의 견해는 '반문명, 반체제의 저항문서'란다. 동일한 대상을 놓고 전혀 상반된 해석이 존재하는 '기현상'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강신주씨나, 기세춘 선생 모두, 각기 다른 이유로 초간 노자를 제외시켜 놓고, 도덕경과 백서 노자를 함께(어떻게, 결합, 발췌, 절충?) 본 끝에 전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강신주씨의 경우는 장자 이후 전국 말에, 노자가 출현하여 노자가 장자를 부인했다는 입장에서, 춘추말 혹은 전국초에 성립했다고도 볼 수 있는 초간 노자의 존재 자체를 무시한 반면, 기세춘 선생의 경우는 초간 노자가 유가와 대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시 초간노자의 정체성을 의심하며, 초간 노자를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사실을 확인치 않은 오류에 기초한 것이다. 노자의 연대는 장자가 노자를 수 없이 인용해 [장자]라는 대서사시를 낳은 것처럼, 장자 이전이지 그 이후일 수가 없다. 또 기세춘 선생이 초간 노자가 유가와 대립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본 중국의 초간 변석은 엉터리일 뿐더러, 설사 그 변석에 따라, 극히 일부 문장에서 노자가 인의를 반대치 않았더라도, 이 외에 초간 노자의 많은 내용은 현재 도덕경에서도 유가와 대립한다고 볼 수 있는 내용, 즉 學을 반대하고 수양론이 없으며, 유가처럼 天命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더 나아가, 제왕의 권위를 절대화 하지 않아서, 결코 유가의 논리에 동조했다거나 서로 유사하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초간 9편에는 
道亘亡名, 僕, 唯{卜曰女}, 天地弗敢臣. 侯王女能獸之, 萬勿將自{ 宀貝 }이라, "道는 항구히 이름을 잃어, 종이고 비록 점괘를 전하는 여자, 한낱 시녀일 뿐라도, 하늘과 땅이 감히 신하 삼길 떨친다. 제후, 왕이 여자처럼 음전이 앉아 사냥해지는 것이니, 만가지 날림들이 장차 스스로 집안에 재물이라" 했던 것이다. 이는 전국시대 맹자가 하늘의 뜻을 거스른 왕을 몰아낼 수 있다고 한 역성혁명론의 입장보다 시기적으로도 앞선 것이면서, 내용적으로도 제후나 왕도 사냥해질 수 있는 것인데 비해, 종, 마부, 시녀라도 영원히 이름을 잃은 道인 자는 천지도 감히 부릴 수 없다 본 파격으로, 아무리 聖君이라도, 기껏 하늘 아래 만인지상의 위치에 제왕을 두었던 유가의 논리를 넘어섰던 것이다.   

만일 기세춘 선생이 이 문장을 초간에서 찾아 내실 수 있었다면, 결코 초간 노자가 노자가 아니라고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신주씨 역시, 초간의 이 문장의 내용을 알았다면, 결코 노자가 파시즘적 국가주의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도덕경]에 대해서는 강신주씨의 말도 맞고, 기세춘 선생의 말씀도 맞으나, 모두 부분적 사실을 지적한데 그친다는 것이다. 즉 노자는 춘추시대 원본 노자가, 전국초에 백서 갑으로 주석되었는데, 이 주석본을 근간으로, 1차 한고조 때 법가적으로 개작된 것이 백서 을 노자며, 한문제 때 2차 다시 이를 유가의 입맛에 맞게 개작한 것이, 현행 [도덕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행 [도덕경]에는 법가 또는 유가에 흡사한 내용을 얼마든 지 찾아 낼 수 있어, 강신주씨가 본 것처럼, 파시즘적 국가주의라고도 할 수 있고, 또 왕필이 유가와 노자를 통합해 노자의 저항 정신을 희석해 주석할 만한 내용이 충분히 있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기세춘 선생이 잘 못 보신 것은, 이러한 저항정신의 희석과 체제내화가, 왕필의 주석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본래의 노자를 [도덕경]으로 '위작'한 한나라 왕실의 치적(?!)이라는 것이다. 또 이는 보다 근원적으로, 제후, 왕이라도 사냥해 질 수 있다는 초간 노자를, 제후, 왕이 지켜지는 것이라고, '사냥할 수獸'를 '지킬 수守'로 바꾼 백서 갑 주석본 부터, 시발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즉 기세춘 선생은 왕필에게 노자 왜곡의 혐의를 두었지만, 진범은 따로 있었으니, 이미 권력자들의 발 빠름은 그 이전부터, 책 [노자]를 손 봐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한 범행 시간은, 시황제의 '분서갱유'를 전후로 한 것이었고, 왕필 주석 이전에 주석의 원문을 훼손할 기회와 여견은 충분했었다 볼 수 있다. 사실 왕필이 한 역활이라야, 벌써 두차례나 위작되며 너무나 훼손이 심한 나머지, 그 내용조차 알 수 없게 된 도덕경을 적어도 유가가 이해할 수 있게 해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일 고고학적 대 발견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천년간 왜곡되어 알려진 권력자들의 노자, 즉 제왕학적 [도덕경]을 오직 노자의 저서로 밖에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자의 진의가 세상에 빛을 내는 것은, 아마도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니, 현재의 정치, 사회, 문화적, 지형은 강신주씨나, 기세춘선생처럼, 본래 노자에 대해, 어떠한 악의나 편견이 없었던 분들이라도, 각기 다른 이유로, 새로운 '분서갱유'를 불사하고라도, 과거의 노자를 덮어 두고자 하는 상황적 필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이천여년 간 구축된 노자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이 그 만큼 깊다는 뜻일 것이다.

한편 마지막으로 꼭 지적해야 할 문제는 기세춘선생의 번역이, 앞서 강신주씨 처럼, 주제별 발췌에 따른 것이란 점이다. 물론 기세춘 선생님이나, 강신주씨는 모두 책 [노자]를 한 사람에 의한 일관된 저작이 아니라, 춘추전국시대를 떠돌던 여러가지 금언들을 긁어 모은 편집서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발췌 번역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일 테지만, 

문제는 이러한 입장에서는 노자에 대해 어떠한 통일된 이해와 올바른 번역도 기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노자라는 사람도 책도 없고, 시대에 따라 각자의 입장과 해석에 따라 편집한 각자의 노자만이 존재할 뿐이니 무엇을 진정한 노자라 확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강신주씨와, 기세춘 선생은 이러한 동일한 발췌 번역의 방법으로, 서로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해서, 이러한 발췌 번역의 결과가 얼마나 상반된 결론을 유도할 수 있고 그 합치점을 찾기 어려운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증이 되었을 뿐이니 말이다.

그런데, 기세춘 선생은 정말, 노자 재번역 운동을 주창하고 싶으신 것일까?
스스로의 완역을 부인케 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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