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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道

고 문서를 취급할 때는 정확한 연대 추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물론 고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해 도달한 상태라면 더 좋을 테지만 말이다.
백서 노자가 발견된 지는 거의 30여년에 이르지만, 백서 노자에 대한 이해는 참으로 조악한 것 같다. 아마도 이는 저자가 이해한 것 처럼, 백서 노자에서 통행본에 이르는 정확한 진위를 판별하지 못한 탓이다. 세간이 이해하기로, 백서 노자는 노자에 대한 법가 혹은 황로학식 변형인데, 도덕경, 즉 왕필 본은 이를 노자에 맞게 교정 한 것이라 여긴다면, 이는 큰 오해다.  왜냐하면 한고조의 넷째 아들인 문제는 한 고조때 수립된 백서 을 노자를 겨우 고본에 맞게 수정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 고조때 노자, 즉 백서 을은 어떤가? 정확한 사실을 확인 하자면 백서 갑과 백서 을그 그 한 무덤에서 발견된 것을 제외하고는 그 연원이 다르다. 즉 백서 갑은 전국시대 초반까지 즉 윤희가 함곡관으로 가는 노자를 졸라 오천여자 도덕경을 받았다는 기원전 384년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반면, 백서 을은, 한고조가 한나라 제위에 오른, 기원전 20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약 백서 갑과는 거의 이백여년의 차이가 나는데다, 그 사이에, 장자와 그 세살 터울의 선배인 맹자의 생애가 놓여 있다는 것이다. 또 중요한 변수는 진시황의 분서갱유인데, 이는 법가 이외의 전적이 사라졌다는 의미라기 보다, 민간에서 사라지고, 왕실에만 보존되어 있던 전적들을 가지고, 왕가의 입맛에 맞게 춘추전국시대의 제자 백서서가 조작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백서 갑, 을 중에서도 백서 을만, 황제사경이라는 황로학계 책들과 한 폭의 비단에서 같이 발견되어, 이것이 법가적 변형을 거친, 노자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 주고 있다. 당연히, 한고조의 네째 아들 문제에 의해 다시 정리된 도덕경, 즉 현 왕필, 하상공 노자 도덕경의 원본은, 백서 을에 친화적이면서, 백서 을이 터무니 없이 고서를 조작해 나간 흔적을 교묘히 고본에 맞추어 수정, 윤색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잘 알고 익히 보고 있는 도덕경이다. 만일 '사상을 검열' 해 나간다면, 현행 도덕경은, 노자라면 도저히 할수 없는 말이나, 혹은 문법에도 맞지 않는 모순된 말들을 담고 있다. 때문에, 현재 많은 주석가들이 그 진위의 의문을 제기 하였고, 청대 심원한 고증의 비판을 면할 수 없었으며, 고금 사서, 불경에 능통한 호적과 같은 고승 조차, '대부분, 알 듯 모를 듯한 허튼 소리'라 불평했던 것이다. 심지어 지금의 도덕경은 왕필인, 하상공, 주석가들에 의지하지 않고는 그 뜻을 제대로 알음치 못할 정도로 손상되어 있고, 본문에 틀린 구절이 주석에서 수정되기 조차 한다.    

때문에 장자가 인용하고, 한비자가 주석한 노자는 한고조 때 노자, 즉 백서 을 노자가 아니고, 
본문에서 노자가 오해했다는 맹자의 유가, 즉 자연적 인이란 개념은, 전국시대 초 노자 즉 기원전 384년의 노자, 다시 말해 기원전 372년에 태어난 맹자나 369년에 태어난 장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수립한 백서 노자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던 것일 수 있다. 즉, 오히려  맹자가 인을 풀이한 내용이야 말로, 노자의 인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 후대에 맹자에 의해 유가가 수정된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초간에 유교를 비판하지 않았다 본 관련 구 安을 '어찌 안'이라 보아도, 이는 유가와 같은 말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즉 초간이 설혹 '계집이 집안에 편안이 앉아 본래 편안하다는 안安'을  대게 의문사로 쓰일 때 이와 함께 쓰였던 乎를 붙이지 않고도(만일 이러한 부가적 조사가 붙지 않는다면, 安은 어찌 안으로 볼 지 혹은 편안할 안으로 볼 지 결정될 수 없다), '어찌'라는 의문사로 쓰이고도, "큰 도가 짓밟히고, 어찌 인과 의가 있는가?!"와 같이 쓰였다고 치자. 이러할 경우라도, 이는 유가처럼, 인의를 추구해서, 도를 구하자는 말은 아니란 것이다. 즉 이는 도에서 인의가 비롯된다는, 저 백서 38장과 같은 입장일 뿐이다. 만일 이런식으로 유가와 도가가 대립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면, 유가가 인의를 추구해서 도를 이루고자 하지 않았다거나, 도가가, 인의를 추구해서도 도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해야 옳다. 그러나 아다시피, 인, 의, 예, 지, 신 등의 오행을 추구했던 유가는 결코, 이 오행을 대신하여 도를 앞세울 수 없고, 도가 역시, 도의 앞에 인, 의, 예, 지, 신을 앞세울 수 없다. 이는 초간과 함께 발견된, 유가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바다.

이와 같이 유가와, 도가를 구분치 못하는 혼동과, 혼란이 고문서를 해독치 못하는, 철학자들에서 양산되고 있다는 것은 심히, 한심한 일이라고 까지 할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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