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노자,『비굴의 시대』 , 한겨레출판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보다도 한국 사회의 구조에 대하여 더 첨예한 분석을 내놓는 박노자의 신간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빚어지는 부조리함으로 가득 차 있다. 무소불위한 권력을 휘두르는 재벌들이나, 최소의 복지가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렇듯 권력과 자본 앞에서 수단화 되는 인간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때, 우리는 순간마다 슬퍼하고 분노한다. 그러고 나면 이 사회에서는 왜 인간들이 이렇게까지 비굴해져야 하는지가 궁금해지게 된다. 그러고 나면 물음은 다시 양갈래로 흩어진다. 이것이 과연 자본주의에 잠식 당한 인류 사회 보편의 행태일까, 아니면 이 대한민국이 유달리 옳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2. 김창진, 『협동과 연대의 인문학』,가을의 아침
대학생으로 오래 살아가면서 늘 경제 생활이 어려웠다. 넉넉한 경제적 조건을 가진 친구들도 있지만, 지방 출신의 많은 대학생들이 주거난에 치인다. 어쩌다 크게 병원 신세를 지는 날이면 몸 아픈 것보다는 병원비를 충당해야 할 일이 오히려 더 걱정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다가, 내가 걱정하던 의료와 청년 주거, 더 나아가 교육, 농산물 판매 등 다양한 분야의 협동조합들이 꽤 잘 굴러가고 있는 사례들을 시사인 연재물로 접한 이후 부쩍 우리나라에서 운영되는 여러 형태의 협동조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협동조합이야말로 이 사회의 변방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이자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추천사에 의하면 이 책은 단편적 사회 현상을 담는 것 이상으로, 협동조합의 지속성에 대한 담론이 들어 있는 책이라고.
3. 박순찬, 『세월의 기억』, 비아북
경향의 시사만화 장도리에는 "믿고 보는 장도리"라는 댓글이 달린다. 작년 한해 동안에도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지만, 역시 가장 크게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세월호 사건이다. 천재가 인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 이 사건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박순찬 화백은 이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이와 맥을 같이 하는 삼풍, 씨랜드, 대구지하철참사 등 각종 큰 사건 사고들에 대한 기록을 묶어 남겼다. 신문 지면에서 단편적으로 만나게 되는 그의 작품들에서와는 또 달리, 하나의 테마로 묶여 편집된 그의 기록에서 새로운 의미가 창조될 수 있을까?
4. 신명호 外, 『조선의 역사를 지켜온 왕실여성』, 글항아리
언제나 과거의 역사는, 그 중에서도 특히 궁중 서사는 남성 위주로 기록되고 복원되어 왔다. 하지만 기록의 중심에 서 있는 큰 서사의 이면에는 왕 하나에게 종속되어 살아가던 무수한 여성들의 가지 같은 서사들이 얽혀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종종 사극으로 재현되곤 한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영화 <상의원>에서도, 후궁들은 전부 왕의 승은을 입기 위해 예쁜 옷을 지어 입으며 그들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역할에 그친다. 이렇듯 오락물에 등장하는 궁중 여성들은 다소 단편적으로 다루어지고, 그들의 일상에도 고증되지 않은 내용들이 많이 섞이기 마련. 그러한 서사물들이 다소 가볍게 느껴지고, 그녀들의 삶에 대해 조금은 더 깊은 내용을 알고 싶어질 때 읽기 적합할 듯하다.
5. 수잔 젠킨,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 알마
뇌과학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뇌는 인간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차지하고 있는 부피에 비해, 차라리 한 인간 전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의 기능을 차지하고 있다. 현대 과학은 인간의 마음을 심장이 아닌 뇌에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수잰 코킨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억상실증 환자'를 다년간 연구해 온 뇌과학자다. 헨리 몰레이슨은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상실되어 언제나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으로 많은 심리학 서적에 소개되고 있는 사람. 그녀의 기록을 통해 그녀가 가장 밀접하게 관찰한 헨리 몰레이슨에 대한 전기적인 내용을 함께 접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