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d on 다큐멘터리 영화 <승리의 강>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의 쓰레기 매립장, 스퉁 민체이. 우리로 말하자면 지금은 없어진 '난지도' 정도 되는 곳일 것이다. 그 곳에서 있었던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곳, 절망만이 가득할 것 같은 곳에서 '미래를 꽃피운 기적같은' 이야기, 그 기적은 글과 문학에서 시작된다.
스물아홉의 상 리는 스퉁 민체이에서 남편 기 림, 어린 아들 니사이와 살고있다. 그런 곳에서 아이까지 키우며 살다니, 쯧쯧 절로 혀가 차질 일이지만 놀랍게도 막상 상 리 자신은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어렵게 사는 일과 불행하게 사는 일이 늘 똑같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이 세계를 비참하다거나 기쁨이라곤 전혀 없는 삭막한 곳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쓰레기 더미라는 지독한 배경과 역경 속에서도 지극히 정상적이고 감동적인 하루하루가 이어진다고 여기는 편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일로써 사는 일이 순탄해지지는 않는다. 고물을 잔뜩 주워 운이 좋다고 여겼던 날, 남편은 폭력배들에게 돈을 뺏기고 다친채 들어오고, 아이의 설사병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돈도 없고 쌀도 없고, 있는 거라곤 아픈 아이와 머리를 꿰맨 남편뿐인 나는 생각할 게 너무 많다."
그 날 상 리는 집세를 받으러 온 '렌트 콜렉터' 소피프 신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게된다. 그리고 늘 술에 취해 있고, 악착같이 집세를 거둬가는 그녀에게 일주일에 술 한 병을 주기로 하고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녀가 단순히 글을 읽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프놈펜 국립대학 문학부에서 9년 동안 학생을 가르쳤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쓰레기 더미 속에서 활자를 발견하고, 단어를 발견하고, 마침내 문장을 읽어내려가게 된 상 리.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소피프 신에게 '문학'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문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글을 읽고 문학을 하려는 목적 조차도 확실하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알아갈수록 더 목마르고 더 다급해지는 심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마침내 이솝 이야기의 일화 한 편으로 '문학' 수업이 시작되고, 그런 가운데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쓰레기장에서의 일상과 아픈 사건 사고들이 계속된다.
소피프가 본격적인 문학 수업에 앞서 상 리에게 들려준 말들은 독자로서, 문학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나 역시도 문학 강의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문학은 많은 장난감을 넣어 구운 케이크랑 비슷해. 그러니까 장난감을 모두 찾는다 해도 그것들을 찾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속 빈 강정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지. (중략) '그들은 문학에 대해 모든 걸 이해했지만 단 하나, 문학을 즐기는 법만큼은 알지 못했다.'"
이제 상 리는 거의 매일 문학 수업을 받는다. 그렇다고해서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맡긴 아이가 걱정되기도 하고, 이러한 공부가 정말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내 문제에 답을 줄 수 있다는 거죠?"
"그게 바로 자네가 배움을 통해 깨닫게 될 문제야. 우리가 읽는 모든 이야기의 대상과 주제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지."
이처럼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서사를 기본으로 하지만, '문학'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 많다. 문학부 교수였던 소피프의 강의는 쉽지만 핵심을 찌르는 명강의임이 분명하다.
이들의 수업은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간다. 모비딕을 읽고 선과 악의 문제를 논하고 (비록 축약본을 읽고 나누는 아직은 서툴고 투박한 형태의 토론이지만), 말과 글의 힘에 대해서, 선택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캄보디아판 신데렐라 이야기도 등장하고, '영웅'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쯤에서 주인공인 사 린의 삶이 변해야하는거 아닌가? 문학적 성장과 더불어 삶이 어떤 형태로든 성장해야 읽는 보람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삶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실화'기반의 소설이란 걸 다시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문학이 아닌, 그 무엇이라도, 그리 간단하고 드라마틱하게 사람과 삶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건 '동화적 희망' 같은게 아닐까.
그렇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문학적 담론과 쓰레기장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을 병치시키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는가 하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어쩌면 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이제 상 리는 글을 알기 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글을 알기 전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도 없다. 제목이 <렌트 콜렉터>인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더 많이 변한 사람은 상 리가 아닌 소피프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에게 정말 아름다운 수업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야기는 계속 되고, 상 리와 소피프와 이웃들 한 명 한 명의 개인사 뒤에는 어쩔수 없는 슬프고 참혹한 캄보디아 역사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책 뒤 쪽에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배경지와 인물들의 사진이 실려있다. 조금쯤 억눌려있던 감동이 사진 속 상 리와 니사이와 눈을 맞추는 순간 울컥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