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쟁과 정치를 중심으로 한 역사,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이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 교과서로는 정작 궁금한 것들을 알기가 힘들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 인간 개개인은 어떻게 살았는지, 그러한 크고작은 과거의 유산들이 오늘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과 어떻게 이어져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요즈음은 다양한 렌즈를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들이 많이 나와있어, 학창시절 암기과목 이상이 되지 못했던 역사, 특히 세계사를 재미있게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미술을 통해서, 사물을 통해서, 진화 심리학을 통해서 등등...
이번에 읽은 <매너의 문화사>는 인사, 건배와 같은 정말 사소한 우리의 행동들이 어떻게 시작되고 변화되어 왔는지를 재미있게 쓰고 있었다. 이러한 행동양식들이 특별히 '매너'라는 이름으로 반쯤 강요되어지고 있는 부분들도 흥미로웠다. 뭔가 본능적일 것만 같은 비언어적 소통 언어들이 사실은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적 행위, 나름의 문명화의 결과이고 이로써 어쩌면 본능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행위인 것도 같다. 동물적인 목적이나 생존의 목표에서 시작되었지만 어느새 이성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온 행동 규범이 또한 '매너'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작가가 책 앞 부분 '매너의 시작'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좋은 매너가 선한 마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 매너의 진짜 속성일지도 모르겠다. '성문에 암살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중세 기사들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레이디 퍼스트'인 것처럼 말이다.
책은 모두 9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몸가짐과 바디랭귀지, 인사법, 식사예절, 눈물과 웃음 등등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예절'에 대한 여러 책들이다. 매너가 있게 한 산파와도 같은 책인 1530년 에라스무스가 쓴 <어린이들을 위한 예절 핸드북>을 시작으로 이후 온갖 예법서들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이는 마치 오늘날 각종 자기계발서들이 출간되고 있는 것을 떠올리게 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소위 '예절'들은 왕가에서 시작해 귀족으로, 다시 부유한 시민계급이나 성직자들을 거쳐 점차 모두의 행동규범이 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매너라고 생각하는 행동 중 상당 부분이 중세 유럽의 궁정 귀족과 교육 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 그 당위성을 한 번쯤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이다. 어쨋거나 유럽의 문화가 세계가 공유하는 문화가 되고, 살아남은 다른 문화들은 지역적인 유산처럼 여겨지고 있으니 우리는 오늘도 중세 유럽 귀족에서 시작된 '매너'를 지키는 것으로써 문화인인 양 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대 이래 시대에 따라 '모범적이 행동거지'의 기준은 대체로 변화를 거듭해 왔지만, 시대와 지역을 포괄하는 것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로마제국에서는 유유자적한 걸음걸이가 자유 시민의 특징으로 제시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네 양반 걸음이 떠오르기도 했다. 비가 와도 휘적휘적 걸었던 양반네들 말이다. 2천 년 쯤 지나 쓰여진, 앞서 언급한 에라스무스의 예법서에서는 걸음걸이에 대해 이렇게 쓰고있다고 한다. "걸을 땐 너무 서두르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천천히 걷지도 말라. 빨리 걸으면 성급해보이고 천천히 걸으면 게으르거나 유약해 보인다.". 최근의 책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건강하려면 속보로 걸으라고 말이다. 변하지 않는 것 중 또 하나의 재미있는 예시는 미국 대통령의 큰 키이다. '심리학자인 그렉 머레이와 데이비드 슈미츠는 물리적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지도자를 선호하던 원시의 가치관이 현대 선거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해석'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신언서판'이라 했던 말을 생각해보면, 강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외모에 대한 지향이야말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른손을 들어보이거나 악수를 함으로써 손에 무기가 없음을 보이는 다양한 인사법들은 원래 안전장치이자 폭력방지책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사실 '국가'에 의해 폭력이 독점되기 이전의 삶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점철된 것이었으니, 자신이 적이 아님을 매번 증명하는 일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좋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서로를 칭찬하고 친절을 베푸는 문화도 서유럽 궁궐에서 의례적인 말로 동질감을 강조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18세기 런던과 파리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이런 인사치레는 오늘날 무해한 말들, small talk라 불린다.
식사예절에 대한 부분도 새롭고 흥미로웠는데, 유럽과 중국의 차이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중국에서 칼은 이니 오래전에 식탁위에서 사라지고, 모든 요리는 '커튼 뒤에서' 작업을 마치고 식탁으로 날라져 온다. 그러니 칼을 들고 식탁에 앉는 유럽인을 그들이 야만인이라 부른만도 한데, 이는 유럽의 상류층이 전쟁을 일삼은 기사들이었던 반면, 중국의 상류층은 지식이 많은 평화로운 기질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쓰고 있었다. 일찌기 武보다는 文이 앞섰던 동양의 문화적 특질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소위 '문명화'가 진행되면서 '일탈'에 대한 사회적 처벌도 강화되고 있다. 예전이라면 그저 부끄러워하거나 미풍양속을 어겼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 정도의 일도 오늘날은 '변태적인 행도'으로 분류되고 병리학적인 해석을 거쳐 정신병원으로 격리되게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부분은 보다 안정되고 안전한 공동체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평균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장치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20세기 중반까지도 남의 고통을 보며 기쁨을 느끼는 일이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것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는 적어도 직접적으로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런 짓은 비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작가는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여전히 이런 역할을 하며, 타인의 위험과 고통을 상업적 경쟁의 도구로 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쉽게 몇몇 프로그램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웃음은 그렇게 광기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길에서 우는 사람보다 혼자 웃고있는 사람이 더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여러가지 점에서 '웃음의 매너'는 함께 생각해 볼만한 문제인 것 같다.
맺음말에서 작가 스스로 쓰고 있듯이 "풍속 문화에 관한 역사는 항상 훌륭한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충분히 재미있었고, 당연하게 보이는 것에 대해 다시 보고 의심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인간의 폭력성과 어리석음이 점점 억제되는 쪽으로 변화되어 왔지만, 요즈음은 이러한 부정적인 본래적 특성들이 점차 인터넷 공간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세상이 점차 확장되어간다는 점에서 디지털 '매너'에 대해서도 더 많은 논의와 변화가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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