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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고 다윈과 비글호를 떠올렸다면 정답!?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다. 작품을 통해 촌철살인의 유머와 풍자를 선사하는, 그래서 미국에서는 블랙유머의 대가로 칭송받는다는 커트 보니것의 소설이다.
소설이지만 '다윈과 비글호'와 그리 먼 곳에 위치해 있지는 않다. 바로 고립과 진화를 소재로 삼고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자신다운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의 특징을 들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재미있고 또 재미있다'는 것이 될 것 같다. 어떤 추리물이나 스릴러보다도 더 흥미진진하고 게임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커트 보니것은 현재 우리의 모습과 이후 인류의 생존, 진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백만년 후의 인간이 1986년, 인류가 새로운 시작을 맞게되는 시점에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나 지켜보고 서술하는 방식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제1부 '이야기의 전모는 이러하다'에서는 세계가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해 있고, 알수없는 바이러스가 시작되고 있는 시점에 에콰도르 엘도라도 호텔에 모여든 사람들이 갈라파고스 섬에 고립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갈라파고스로 향하는 '세기의 유람선 여행'의 표를 지닌 이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채 이 곳에 모여 바이아데다윈호의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여행을 신청할 당시만 해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닥치리란 것도, 또 그 유람선이 항해하기로 되어 있는 때에 에콰도르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게 되리란 것도' 알지 못했다. 모인 이들 중 일부는 출발 전에 죽음을 맞고, 초대장 없는 몇 명이 우연히 탑승하면서 갈라파고스를 향해 떠난 이들은 이후 새로운 아담과 이브가 되어 인류의 멸망을 막고 고립된 환경에 맞추어 새로운 진화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제2부 '그리고 그 배는...'에서는 이들이 출항 후 온갖 어려움 끝에 섬에 도착하고 어떤 식으로 새로운 세대를 출현시키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 속에서 작가가 현 인류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너무 큰 뇌'이다. 너무 큰 뇌 때문에 오히려 생존에 불리하다는 점, 일이 점점 복잡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일이 발생하는 것도 결국 한번에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하나의 뇌 속에서 서로 상반된 생각이 공존하기 때문이라고 거듭거듭 언급한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들 자신의 문제를 시니컬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1986년 당시에는 그런 식으로 상황이 나빠지고는 했다. 너무나도 많은 거짓말이 오가고 있었던 탓에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를 믿지 않았다.
거대한 뇌가 일으키는 각종 성격 장애가 스스로를 괴롭히기보다는 다른 이들을 공격한다고 언급하는 부분은 정말 공감이 갔다. 기분 내키는대로 행동하고, 타인의 (감정적이거나 육체적인) 고통에 둔감한 이들이 어찌나 많은지, 우리 역시도 점차 그런 이들에게 둔감해져가고 있다는 생각조차 든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인간의 그런 나쁜 행실에 대해 쓰려니 백만 년 뒤인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백만 년이 지났지만 나는 인류를 대신해 사과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니까.
어쨋거나 사건들은 나름 매우 긴박하게 진행된다. '백만 년 뒤에 영향을 끼치게 될 여러 사건들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지구상의 작은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드라마틱한가. 초조하게 배의 출항을 기다리며 읽다가, 배가 출항하고나면 다시 초조하게 배가 육지에 닿기를 기다리며 읽다가, 배가 도착하고나면 다시 초조하게 다음 세대의 출산을 기다리게 된다. 아니면 백만년 후의 인류는 없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백만년 후의 인류는 어떻게 진화했을까. 아주 직접적인 묘사는 없지만 작가는 수시로 이들에 대해 언급한다. 뇌는 작아지고, 두 팔은 지느러미가 되었고, 서로가 서로를 체취로서 구별하고, 식인 상어 덕분에 더이상 노인 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고, 등등등
아마도 처음 생명체가 활동했던 바다로 다시 돌아간 모양이다. 물고기 비슷한 몸에 사람을 떠올릴만한 부분은 어디쯤에, 얼마나 남아있는걸까. 바다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다시 바다로 돌아간 인류의 변화를 '진화'라는 이름으로 부르는게 맞을지, 아니면 '퇴화'? 알쏭달쏭한 의문을 가지며 책읽기를 마쳤다.
이 소설의 본질과는 떨어져있는 얘기지만,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조상탓'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현재의 문제 중 과거에 뿌리를 두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모든 사태에 책임 혹은 공과를 물어 올라가다보면 결국 모든 책임은 최초의 단세포 생물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빅뱅에게 책임을 물어야할수도 있다. 모든 종류의 우연에 경의를 표하고,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신뢰를 보내며, 현재의 '나'에 대한 책임을 '나'로 환치시키는 일은 진정한 용기일거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