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주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걸 종종 느낀다. 막연히 '좋다'거나 '낯설고 새롭다'거나 '따뜻하다'거나, 뭔가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곳에서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곤 하니까 말이다.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안도 타다오'의 개봉 소식에 공간과 건축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다.
프롤로그부터 '공간'에 대한 작가의 각별한 애정이 잘 드러나는 이 책은 우리가 어떤 공간을
좋아 보이는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
건축도 책처럼 읽을 수 있다면...
오래된 역사적 건축물이나 멀리 떨어진 외국의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 가까운 곳에 있는, 오늘날의 건축물을 제시하면서 설명하고 있어서 조금 더 쉽고 친근하게 건축에 대해 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도록 구성한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글로 읽고, 사진으로 보고, 마음만 먹으면 직접 가서 확인하고 느껴볼 수 있다는 생각에 눈으로는 글을 읽으면서도 마음은 자꾸만 '그 곳'으로 향하기도 했다.
<여기가 좋은 이유>에서 소개하는 '여기'는 모두 스무 곳인데, 서울 (혹은 근교)에 있는 공간들, 거창한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카페나 호텔, 미술관 처럼 우리가 늘 이용하고 지나쳐가는 '장소'들이다.
성수동에 있는 카페 '어니언',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곧 가보게될 그 곳은 오래된 집을 카페로 바꾼 곳이라고 한다. 읽어나가면서 새롭게 짓는 일보다 있는 곳을 고치는 일이 더 까다롭고 창의적 사고를 필요로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숨길 것인지, 혹은 어떻게 새롭게 하면서 건축물 속의 시간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인지... 그런 고민들을 잘 풀어낸 이 공간은 오래된 집에서 느낌좋은 '카페'가 되었다.
요즘은 사실 '카공족'이니 '스터디 카페'니 하는 말들을 흔히 듣게 된다. 하지만 이 카페는 '커피와 공간과 담소에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마치 '움직이는 예술작품처럼' 느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고도 한다. 무엇을 위한 공간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궁리가 곳곳에 숨겨져 있는 공간인 것이다. 조명 하나
특별히 관심이 갔던 또다른 곳은 카페 겸 작은 미술관인 피크닉(piknic)이다. 이 곳은 언덕배기 작은 골목 안에 있는 곳인데, 나 역시도 언젠가 가보려고 찜해두고 있던 곳이었다. 사실 요즘은 SNS, 특히 인스타그램의 영향으로 사진 한 장에 끌려 외진 곳도 기꺼이 찾아다니는 시절이 되었다. 얼마전 문을 연 우리 집 앞 홍차집도 주말이면 많은 선남선녀들이 줄을 서 있곤 해서 많은 동네 사람들이 놀라곤 한다. 아무튼 골목안까지 사람들을 찾아오게 하는 피크닉의 매력에 대해 작가는 '큐레이션'의 힘이라고 이야기 한다. 뭐든게 넘쳐나는 요즈음이다보니 그야말로 뭘 좋아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피크닉은 아주 영리하게 다양한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큐레이션을 해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공간에 전시관도 만들고, 카페와 와인바, 멋진 문구 편집샵까지 모아두었으니 누구라도 안목있게 꾸며지고 선택된 공간에서 자신의 취향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그저 좋은 공간에서, 이러저러해서 좋은 공간이 된다면 그 애정의 정도와 깊이가 분명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이 곳을 '좋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 이들의 고민과 분투를 떠올리면서 말이다.